[기자수첩] 간호사의 날개를 꺾을 셈인가
[기자수첩] 간호사의 날개를 꺾을 셈인가
  • 이주현 기자
  • 승인 2016.12.23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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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경제뉴스 이주현기자] 병원만큼 어려운 조직도 없다. 최근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국가인권위원회, 대한간호협회 등이 병원의 부조리를 없애기 위해 마련한 병원업종 일・가정 양립 활성화 토론회를 보도자료를 통해 접하고 든 생각이다. 토론회에서는 병원 근로환경을 여성 친화적으로 개선하고 출산・육아 휴직으로 인한 인력난을 해소하는 방안 등이 다뤄졌다.

- 이주현 기자

비인권적인 관행 ‘임신순번제’… 인력부족 탓?
 대표적인 병원의 부조리로 임신순번제가 꼽힌다. 임신순번제는 말 그대로 임신하는 순서를 정한 것인데, 간호사들에게 출산 휴가나 육아휴가가 한 번에 몰려 인력 공백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관행이다. 최근 언론에서도 자주 조명해 일반 시민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장의 모습은 어떨까.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전국 12개 병원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 여성 전공의 71.4%와 간호사 및 조무사 39.5%가 임신순번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어기면 병동 생활에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2013년 보건의료노조가 보건의료산업 노동자 2만2233명을 대상으로 근무환경을 물은 설문조사에서도 간호 인력의 18%가 임신순번제를 경험했고, 이로 인해 원치 않는 피임을 한다는 답변도 13.7%였다. 실제는 통계보다도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 언론에서는 순번을 어겨 임신한 사실을 숨기고 야간 근무하다 유산한 간호사도 있다고 보도해 논란이 됐다.

 얼마나 비인권적인 관행인가. 누가 봐도 ‘인권 침해’다. 이 같은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인력 부족’ 때문이라는 주장이 많다. 본 기자가 페이스북에서 운영하는 ‘의료계 소식통’이란 페이지를 통해 간호사 및 의료계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임신순번제의 실제를 물은 결과, 다수가 ‘인력 부족’을 꼽았다.

 서울 모병원에 근무하는 A씨는 “태움이나 임신순번제 모두 인력 부족이 원인”이라며 “경영진 입장에서 보면 간호수가가 없는 상황에서 간호사를 많이 채용하는 것은 부담이다. 의사가 벌어온 돈을 간호사와 나누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결국 가장 큰 시스템인 정보의 변화가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양질의 간호사는 필요하지만 1970년대 재정된 건강보험을 기준으로 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다면 악습도 끊을 수 없고 간호인력 유출도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순천 모병원에 근무하는 B씨도 “인력부족에 저임금인 중소병원은 바뀔 기미가 없고 월급 빼고 다 오르는 물가 현실에 미동조차 없다”며 “아쉬운 사람이 그저 일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간호사 C씨는 “인력난을 해결해달라”며 “신혼인데 신랑 얼굴 볼 시간이 출근 전, 식사시간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병원에 간호사가 없다
 
2년 전 충북도내 의료기관들이 겪고 있는 간호 인력 부족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당시 충북에 적을 둔 간호사는 모두 2991명. 이 중 1708명(57%)는 청주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조무사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전체 조무사 4361명 중 2186명(50%)이 청주에 몰려있었다. 도시일수록 임금이나 근무환경, 정주여건 등이 좋아 간호 인력이 몰리는 것이어서 이를 개인에 국한해 탓할 순 없다.

 실제 시골 병원의 모습을 보면 5~10년 경력자들은 없고 신입이나 40~50대 간호 인력이 많은 기형적인 인력 구조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직이라든가 출산 및 육아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 등의 이유로 병원을 떠나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농촌 근무 간호사들의 벽지수당을 늘리거나 공중보건의 등 군 복무를 대체할 수 있는 공중보건간호사 제도를 도입하는 등 정부차원의 법적 강구가 절실하다는 얘기도 있다.

 법정 간호 인력을 맞추지 못하는 병원들의 현실도 큰 문제였다. 청주만 보더라도 간호 등급이 1등급은 고사하고 2등급인 병원이 없다. 그나마 3등급의 경우 충북대학교병원(상급병원 기준)과 청주의료원, 청주성모병원 등 3곳뿐이다. 간호등급제는 병원 간호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위해 간호사 1인당 병상 수를 기준으로 1~7등급을 정한 뒤 높으면 가산점을 부과하고 낮으면 입원료를 삭감하는 제도다. 종합병원 기준 일반 병상 2.5개당 1명의 간호사가 있으면 1등급, 병상 3개당 간호사 1명이면 2등급, 병상 3.5개당 1명이면 3등급이다. 최하 등급인 7등급의 경우 간호사 1명이 병상을 6개 맡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입원료 보험급여지급 시 최소 2%에서 최대 5% 감산을 받게 된다.

 사실 다른 병원들도 간호 등급 등을 높이기 위해 간호사 상시 채용을 내걸고 있지만, 근무환경 등을 이유로 간호 인력 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청주지역 한 병원의 경우 홈페이지를 통해 1년 내내 간호사 상시 채용공고를 게재하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 들어야
 
‘현장에 답이 있다.’ 기자 초년병 시절 숱하게 들었던 말이다. 이는 병원도, 보건당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많은 간호사 및 의료계 종사자들이 인력 부족으로 부조리 관행이 발생하고 있다면 1차적으로 병원 내부에서 치부를 도려내는 용기를 보여야 한다. 보건당국도 현직 종사자들, 즉 전문가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현실에 맞는 대안이 절실하다.

 간호대학 시절 나이팅게일 선서를 읊으며 ‘참된 간호’를 실천하겠다는 간호사들의 날개를 꺾고 싶지 않다. 적어도 순수한 그 마음을 지켜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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