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를 청문회에서 볼라
3대를 청문회에서 볼라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6.12.2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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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들은 정말 팔을 비틀렸을까? 대통령이 총수들을 직접 대면하거나,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청와대 수석의 전화를 받고 돈을 냈으니 자발적인 갹출은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감방에 있던 재벌총수가 사면이 되고 면세점 사업권에 대한 특혜의혹도 제기됐다. 국민연금은 삼성 주주총회에서 788억원의 손실을 감수하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거수기 역할을 했다. 주식평가 손실액은 무려 2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래도 대기업들이 거래한 증거는 없단다. 검찰 수사결과만 보면 말이다. 특검의 수사결과는 어떻게 다를지 지켜볼 일이다.


어찌 됐든 재벌들은 일사불란하다. 평소에는 베일에 가려있던 재벌총수 아홉 명이 12월6일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일제히 증인으로 출석했다. 뉴스화면에서 흘깃흘깃 스쳐가는 모습으로나 볼 수 있던 총수들이 하루 종일 증인석에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은 해외토픽감이었다. 공사다망할 총수들이 100% 출석률을 보였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다. 핵심증인인 최순실은 물론이고 대통령의 옷을 갈아입히고 몸매를 관리하는 ‘인형놀이’에 동원됐던 행정관들마저도 동행명령에 응하지 않는 상황과 비교하면 재벌총수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청문회의 초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었다. 이 부회장은 가장 나이가 어린데도 불구하고 증인석 중앙에 앉았고, 질문도 이 부회장에게 집중됐다. 이 부회장은 어눌한듯하면서도 넙죽넙죽 답변했다. 대가성 여부에 대해서는 철저히 ‘아니다’라고 맞섰다. 답변이 애매한 문제에 대해서는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안 납니다’, ‘제가 부족합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를 기계적으로 반복했다.


‘전국경제인연합에서 탈퇴하라’거나 삼성 내부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해체하라’는 돌발성질문에 대해서도 넙죽넙죽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심지어는 의원들로부터 ‘능력이 없어 보이는데 물러날 생각이 없냐’는 질문을 듣고도 ‘나보다 훌륭한 분이 있다면 그러겠다’고 했다. 이재용이 어리바리하다느니, 재벌총수도 별 것 아니라느니 말들이 많았다. 이재용의 내공에 대해서는 알 도리가 없지만, 이 부회장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삼성의 브레인들이 모여 열흘 간 준비한 결과다.


돈은 이미 뜯긴 것이고, 거래가 없었다는 것만 주장하면 되는 청문회였다. 1961년 삼성창업주 이병철이 만든 전경련은 거대재벌들에게 이미 불필요한 조직이다. 재계를 대변하는 조직이 아니라 압박하는 조직이 됐기 때문이다. 전경련은 삼성 등 네 개 회사가 자금의 71%를 대 움직인다. 재벌들은 벌써부터 머리수만 채워주는 회원사들과 따로 놀고 싶었을 것이다.


삼성 미래전략실(미전실)의 뿌리는 1959년의 비서실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건희 회장의 구조조정본부(구조본)가 그 전신이다. 이 게슈타포 같은 조직들이 삼성의 성공신화를 만들었지만 구시대적 산물이기도 하다. 이 부회장은 미전실을 축소하거나 이름을 바꿀 것이다. 여기까지다.

‘훌륭한 분이 있다면 물러나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않을 게 분명하다. ‘훌륭하다’는 기준이 인격이나 능력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재벌의 공식은 ‘가업(家業)승계’다. 28년 전에도재벌총수 여섯 명이 일해재단 청문회에 나란히 출석했다. 28년 세월은 한 세대에 해당된다.

실제로 1988년 청문회의 주역이었던 정주영 현대회장의 아들인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이번 청문회에 출석했다. 한 세대가 더 흘러 이들의 3세들을 또 청문회에서 볼까 두렵다. 기업은 곧 가업인 대한민국에서는 이렇게 고약한 데자뷰가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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