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언제까지 아등바등 살 것인가
[데스크칼럼]언제까지 아등바등 살 것인가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7.02.24 17: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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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플러효과’란 소리나 물결 같이 파동을 일으키는 물체가 움직일 때 그 진동수가 다르게 느껴지는 현상을 말한다. 기차가 멈춰있을 때는 진동수에는 변화가 없지만, 기차가 달리기 시작하면 앞에 있는 사람은 짧고 빠른 진동수를, 뒤에 있는 사람은 길고 느린 진동수를 느낀다. 플랫폼에 서서 맹렬한 속도로 역을 통과하는 열차를 지켜본 경험이 있다면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기적소리는 크고 높게 들이닥치고, 지나친 기적소리는 낮고 길게 멀어져간다. 거리가 같더라도 그렇게 느낀다는 얘기다.

5년 후의 삶은 나아질 거라고 믿는가. 장밋빛 청사진이 머릿속에 그려져 저절로 콧노래가 나오는가. 그렇다면 지난 5년 전과 비교해 당신의 삶은 나아졌는가. 혹시 다가올 희망찬 미래는 가깝다고 느끼고 지나간 고난의 과거는 멀다고 막연히 믿고 있는 건 아닐까? 시간에도 도플러효과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긍정적으로 생각할수록 삶이 개선될 가능성은 높다. 사람은 가망이 없는 일에는 아무것도 투자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도, 돈도, 노력도 투자하지 않는데 생산적인 결과가 나올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의 도플러효과에 속아서 막연한 미래의 희망 때문에 소중한 현재의 행복을 유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제부턴가 아등바등 앞만 보고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 회의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아프리카의 ‘스프링벅(영양의 일종)’처럼 앞서 달리는 놈을 쫓아 무리가 한 곳만을 향해 달리다가 마침내 벼랑 끝에 선 형국이다. 대한민국이 그렇다.

2017년 4월에 실시되는 국가공무원 9급 공채 시험 응시원서를 접수한 결과, 4910명 선발에 역대 최대인 22만8368명이 지원해 무려 46.5: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대학생들은 물론이고 30~40대가 될 때까지 공무원시험에 매달리는 이른바 ‘공시족’이 생겨날 정도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안정적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대학생들 중에는 전공과 상관없이 1학년 때부터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이들도 많다. 합격하면 다행이지만, 불합격했을 경우 시험을 준비하며 습득한 지식은 개인의 경쟁력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16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2015년 우리나라에서는 106만명이 개인사업자로 창업하고 73만명이 폐업했다. 하루 3000명이 창업하고 2000명이 문을 닫은 셈이다. 자영업자 다섯 명 중 한 명은 한 달에 100만원도 벌지 못하고 있다. 조기퇴직과 취업난 등으로 생계형 창업으로 내몰리면서 가뜩이나 침체된 소비로 자영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일단 자영업자가 너무 많다. 자영업 종사자 비율 25%는 OECD 평균 보다 배 이상 많은 것이다.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치킨집·분식집·피자집이다 보니 제 살을 깎는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역설적이게도 불황일수록 경쟁은 더 과열된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말 발표한 ‘자영업체의 폐업 요인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금리가 0.1%포인트 오를 때마다 ‘음식·숙박업’은 1년 내 폐업 위험도가 무려 10.6%씩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공무원시험의 과열현상을 보든, 처절한 자영업의 현실을 보든 우리는 벼랑이 기다리는 좁은 ‘병목(甁-,bottleneck)’을 향해서 쏜살 같이 질주하고 있다.

잠깐 멈춰 서서 우리가 서있는 자리를 돌아보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방향이 더 중요하다고도 말한다. ‘힐링(healing)’은 여유 있는 자들의 호사가 아니라 상처 입은 자들의 치유가 돼야하는 시대다. 정치가 안정돼 있고, 경제가 호황인 시대를 ‘태평성대’라고 부른다. 오히려 태평성대라면 자성(自省)도 없을 것이다.

대통령을 둘러싼 국정농단과 장기불황에 경제가 밑바닥까지 추락할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폐허 위에 새로운 정치권력을 세우는 일에 국민들의 관심이 뜨겁다는 것이다. 우리가 청산해야할 것은 스프링벅의 리더십이다. 국민을 좁은 병목으로 이끌지 않고 넓은 초원으로 이끌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얼마가 됐든 ‘기본소득’이 있다면 아등바등 살기 위해서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즐기면서도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와야 한다. 5월 대선이든, 12월 대선이든 후보들의 입을 지켜보겠다.

 


이재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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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잡는게 매 2017-02-24 17:45:57
닭장속 닭한마리의 아등바등이 실로 불상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