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유…이제는 말할 수 있다
외유…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이재표 편집국장
  • 승인 2017.07.27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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샨샨마츠리의 우산춤. 사진=돗토리시

1997년이 아니면 1998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BBS불교방송 기자였던 나는 청주시의회 의원들의 의원연수에 동행했다. 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이 외국을 나갈 때면 기자 한두 명이 따라붙던 시절이었다. 출입처 기자들이 순번을 정해 나갔다. 기자들의 여행경비는 전체 예산 속에 숨어있었다.

연수국가는 일본, 도시는 돗토리였다. 청주시와 자매도시인 돗토리시의 ‘샨샨마츠리’ 기간에 맞춰 일본을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원래 내 순번은 다음 차수로 유럽 몇 나라를 가는 것이었으나 타사 선배기자가 순서를 바꾸자고 해서 일본행이 결정됐다. 그런 시절이었다.

오사카 간사이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들어갔다. 들렀던 도시들은 대충 기억이 나는데 일본 지리에 취약한지라 기억나는 여정은 뒤죽박죽이다. 오사카에서는 오사카성에 갔다. 일본의 고도인 교토에서는 금각사, 청수사 같은 절에 들렀다.

나가사키에 있는 원폭공원에도 갔다. 마침 8‧15를 일본에서 보내게 됐고 재일교포들의 광복절 기념식에도 참석했다. 나가사키에 간 것은 ‘하우스텐보스’에서 놀기 위해서였다. 하우스텐보스는 네덜란드를 주제로 한 거대한 테마파크다. 곳곳에 풍차가 돌아가고 운하 위로 배가 떠다녔다. 일본은 1641년에 네덜란드에게 나가사키를 열었고, 그걸 기념해 만든 곳이었다. 당시 세 살배기의 아빠였던 나는 아들을 데리고 다시 오리라 다짐도 했었다.

구마모토에서는 아소화산과 벳부온천에 들렀다. 유황냄새가 진동하는 온천물에서 삶은 달걀을 건져 팔았다. 대중탕에서 단체 목욕도 했다. 순서는 헷갈리지만 대충 이같은 노정으로 돗토리에 갔던 것 같다.

돗토리에서 일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샨샨마츠리를 구경했다. 샨샨마츠리는 반짝거리는 형형색색의 종이들로 장식한 우산을 들고 줄을 맞춰 거리를 행진하는 것이 축제의 하이라이트다. 우산살에 방울을 매달고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우산을 돌린다. 무늬가 또 다른 무늬를 만들고 찰찰 소리가 난다. 돗토리 바닷가에 있는 거대한 모래언덕도 구경했다.

돗토리에서 달랐던 것은 처음으로 일본사람들과 어울렸다는 것이다. 공무원, 의회 관계자들과 같이 사진도 찍고 오찬, 만찬도 했다. 그게 소위 국외연수의 빡빡한 관광일정 속에서 그나마 ‘기관방문’이라고 구분돼 있는 일정이었다. 그나마 돗토리는 청주와 오랜 결연관계에 있는 도시다 보니 그런 교류라도 가능했던 것 같다.

낯선 유럽의 도시에서 관공서를 방문하는 경우, 그건 가이드의 안내로 관청 시설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는 ‘관청관광’에 불과하다고 한다. 한국 지방의원들의 그런 방문이 잦다 보니 아예 투어비를 요구하는 관청도 있단다.

국외연수 기간 중 의원들과는 사귀지 못했다. 틈만 나면 “역시 일제 코끼리밥통이 좋다느니” 하면서 가전제품 쇼핑하러 다니는 이도 있었고 “나는 돈과 권력을 다 가졌다”면서 으스대는 이도 있었다.

대신 시중을 들러 따라온 공무원들과 더 통했다. 지금도 국외연수에는 공무원들이 따라 붙는다. 대개는 젊은 공무원들이다. 수행원처럼 따라 다니며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잔심부름도 해야 하니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신참 공무원들의 몫이 되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연수 뒤 보고서를 대신 쓰는 것도 이들의 막중한 임무다.

20년 전의 사례지만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단다. 의원들의 국외연수를 꾸준히 따라다닌 공무원들의 말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했지만 차마 못 다한 얘기도 있다.

‘국외연수 무용론’이 결론은 아니다. 해마다 정해진 예산에 맞춰 보상여행 떠나듯이 가지 말라는 얘기다. 예산에 맞추다 보니 아예 여행사 패키지 상품에 끼어서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좋은 사례를 소개한다. 윤송현 전 청주시의회 의원은 ‘거점형 국외연수’를 주도했다. 2010년~2013년까지 해마다 호주 시드니의 재활용시설, 영국 런던의 대중교통,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여성친화시설, 스웨덴의 사회복지에 대해 공부했다. 한 곳에 머물면서 민박에서 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배낭연수였다.

이쯤 되면 국외연수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사회적기업이 필요할 것도 같다. 수해 중 외유성 연수를 떠났다가 사실상 소환이 되고도 아직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의원들을 보며 든 생각이다. 부디 유랑자가 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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