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없는 일터…선엔지니어링의 비밀
정년 없는 일터…선엔지니어링의 비밀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7.07.27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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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탑산업훈장 받은 오선교 회장 “체력만 되면 일하는 거지”
42년 역사에 41년 근속 직원…최고령은 ‘79세’ 소방기술사

요즘은 꼭 그렇지 않지만 전문직들은 예전에 이름 석 자를 걸고 사업했다. ○○○내과, 이런 식으로 변호사, 회계사, 건축사 사무소를 냈다. 청주시 인구가 20만, 30만이던 시절에 이렇게 이름을 걸고 사업을 했던 이들은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된다. 1990년 청주시 인구는 47만7000명에 불과했다.

지금은 ㈜선엔지니어링 종합건축사사무소지만 나이가 50줄에 든 청주사람이라면 대부분 ‘오선교’라는 이름을 기억한다. 오선교 건축사 사무소는 1975년에 문을 열었으니 반백년 역사를 바라본다. 청주시 북문로 2가 116-57번지, 그러니까 청주시청 사거리 한성저축은행 자리다. 건축사 자격증을 갓 딴 오선교와 보조기술자 1명이 전부였을 뿐 회계경리도 없었다.

1991년에는 ㈜선건축사사무소로 법인을 개편했으며 이후 전국 규모의 설계, 감리회사로 성장시켰다. 1999년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2016년도 건설사업관리자 건설사업관리(CM)능력 평가결과에 따르면 ㈜선엔지니어링 종합건축사사무소는 2016년 70억5700만원을 기록해 전국 20위에 올랐다.

청주에 2개의 사옥이 있고 1999년 12월에 문을 연 서울사무소와 전국에 산재한 감리현장 60여 곳에 515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놀라운 것은 정년이 없는 회사라는 것이다. 42년 역사에 41년 근무한 직원도 있다.

“장영환 씨라고 41년 근무한 직원이 있어요. 이 양반도 나처럼 건축사가 됐지. 지금 예순넷이니까 20대 초반에 들어와 평생을 일했네. 우리 회사는 정년이 없거든. 체력만 잘 관리하면 계속 일하는 거지. 제일 연장자는 1939년생이에요. 우리나이로 일흔아홉이겠네. 소방기술사로 일하는데 체력관리를 잘해서 일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어요.”

건축사무소로 출발했지만 1994년 건축전문감리회사로 등록했고, 종합감리회사, 소방설계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 왔다. 그러다 보니 건축사들 외에도 전기, 통신, 소방, 조경에 이르기까지 건축설계와 감리에 필요한 전문인력들을 두루 갖추게 된 것이다. 2002년에는 종합건설업도 등록했다.

회사를 키우기에 바빴지만 사회활동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오선교 회장은 건설감리공제조합을 설립해 초대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또 2008∼2010년 한국건설감리협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한·중감리협회와 교류 등 대외경쟁력 향상에도 기여했다. 2010년부터 나기정 전 청주시장에 이어 청주미래도시연구원장도 맡고 있다.

오 회장은 ‘부의 환원’에도 앞장서 왔다. 그는 사회복지공모금회에 1억원 이상을 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다. 2014년 12월, 4000만원을 낸 것을 시작으로 3년 동안 1억원 기부 약속을 지켰다. 전국에서 668번, 충북에서는 21번 회원이 됐다. 충북대에는 학교발전기금 2억4000만원을 후원했다. 개인과 법인기부금을 포함해 기부총액이 14억원에 이른다.

“나는 충북대가 아니라 청주대를 나왔어요. 충북대에 기부를 많이 한 건 우리 직원 중에 충북대 건축과 출신이 한 70명은 되니까 고맙다고 내는 거지. 나는 고향이 충남 보령인데 아버님이 나 한 살 때 돌아가셔서 대학은 꿈도 못 꾸고 5년제 대전공업전문학교를 다녔어요. 1970년 한전 대전지사에 건축직으로 취직했죠. 지금은 분사했지만 발전소 짓는 게 많았거든. 그때 청주대에 건축과가 막 생겨서 2학년으로 편입을 한 거지. 학교에 다니기에 좋게 1971년 한전 충북지사로 발령을 내달라고 해서 청주로 온 거요.”

그렇게 청주사람이 돼서 청주를 설계했다. 처음에야 개인주택이나 작은 상가건물들을 설계했지만 나중에는 청주의 곳곳에 랜드마크가 될 만한 건물들을 도면 위에 그렸다.

통합 청주시가 출범하면서 지금은 청원구청이 된 옛 상당구청을 비롯해 현재 남일면에 공사 중인 상당구청 새 청사도 선엔지니어링의 작품이다. 옛 교동초등학교 자리에 들어선 충북교육과학연구원, 가경동의 충청북도선거관리위원회, 오송종합사회복지관 등이 모두 오선교 회장이 자랑하는 역작들이다.

오선교 회장은 지난 5월31일 서울에서 열리는 ‘2017 건설기술인의 날’ 기념식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금탑산업훈장은 국가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 5등급 중 1등급에 해당하는 훈장이다. 5개의 등급은 각각 금탑, 은탑, 동탑, 철탑, 석탑이다. 오 회장은 건설기술용역 업무의 개발과 건설감리제도 개선 등 건설산업 발전과 국민복리 증진에 노력한 점을 인정받았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새마을훈장을 받았어요. 7년 전에는 대통령 표창도 받았고. 그런데 금탑훈장을 받은 감회는 조금 다르더라고요. 사회로부터 내가 일해 온 분야에 대한 공적을 평가받은 거니까. 먼저 내가 살아온 궤적을 돌아보게 하더라고요. 살아온 시간들에 대해 감사하게 되고 이제는 내가 뭘 하겠다고 나서기보다는 후진들을 잘 물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선교 회장은 농부로 살아가는 계획을 설계 중이다. 2016년부터 청주시 문암동에서 지인의 도움을 받아 1000평 농사를 시작했다. 농막을 지어놓고 옥수수, 고구마 등을 심었다. 충청북도농업기술원에서 3개월 과정의 귀농교육도 받고 있다. 매주 월‧화, 하루 4시간 교육을 받는데 열일을 제쳐두고 수강 중이다.

“딸기나 블루베리, 오이농사 이런 것도 배우고 특수작물이나 약초 같은 거, 두루두루 다 배워요. 이론으로도 배우고 옥산, 북이, 심지어는 충남 공주에 있는 체험농장에 가서 직접 농사도 지어보고…. 요즘에는 솔직히 공(골프) 치는 것보다 농사짓는 게 더 재미있어요.”

삶을 ‘회향(回向)’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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