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맨’ 출신 경영인의 코스닥 상장 도전기
‘상사맨’ 출신 경영인의 코스닥 상장 도전기
  • 이주현 기자
  • 승인 2017.07.28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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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의 동행(同行) - ⑭최두철 한영선재(주) 대표
편집자 주=지난 1994년 창립한 (사)중소기업융합충북연합회는 현재 16개 교류회, 총 350여 개 회원사로 구성돼 있다. 이(異)업종간 자주적이며 자유로운 교류활동을 통해 역량을 강화한다는 게 특징이다. 회원사간 업종이 다르다 보니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세종경제뉴스는 (사)중소기업융합충북연합회 회원사를 집중 조명한다. 열네 번째 주인공은 중원융합교류회 소속 최두철 한영선재 대표다.

 지난해 연매출 702억 원을 달성한 최두철(64) 한영선재(주) 대표는 ‘상사맨’ 출신이다. 상사맨이 우리나라에서 갖는 의미는 크다. 경제성장이 활발하게 이뤄진 1980년대를 이끌던 한국 수출의 선봉장들이 아니던가. ‘넘어지면 일어나고,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상사맨 정신으로 그는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제는 당당히 코스닥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최 대표의 지난 삶은 어땠을까.

최두철 한영선재 대표. / 사진=이주현 기자

대구 출신인 그는 상사에서 일을 배웠다. 당시는 손만 대면 경제가 성장하는 게 눈에 보이는 시기여서 보람도 있었고, 여러모로 재밌었다. 1980년 중반쯤 우연히 제조업에 발을 담그게 됐다. 1995년까지 그곳에서 일했다. 현장과 사무 일이 손에 익을 때였다.

1996년부터는 자그마하게 내 사업을 시작했다. 무역을 주로 했다. 당시 전국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침체돼 있었지만 그의 사업은 꽤나 순탄했다. 사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몇 년 뒤 지인에게 회사를 매각하고, 2000년 1월 27일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에서 한영선재 간판을 내걸게 된다. 창립 당시에는 냉간압조용강선(CHQWIRE)을 생산했다. 2002년에는 경기도 화성공장에 스틸바(STEEL BAR) 공장을 옮겼고, 1년 뒤 안산공장을 신축하며 설비를 증설했다.

최 대표는 성실하게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품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을 제일로 여겼다. 전공이 무역이라는 페널티를 극복하기 위해 금속공학 서적을 300권 이상 읽었다고 했다. 까먹으면 또 읽고, 쓰고 외웠다. 이 대목에서도 상사맨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다. 거대해진 회사를 담을 새 그릇이 필요했다. 안산에 공장을 신축하고 싶었지만 땅값이 너무 비쌌다. 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충주가 보였다. 당시 충주 제2산업단지는 미분양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협력사인 한국볼트공업도 충주로 이전한다는 계획을 밝힌 데다, 비교적 분양가도 저렴해 마다할 필요가 없었다. 충주시는 최 대표의 이 같은 결정에 두 손 들고 기뻐했다. 충주지역에 기계 산업 활성화를 통한 지역경제 기여와 고용 창출 효과가 기대된다는 시의 보도 자료가 쏟아졌다.

최 대표로선 기적 같은 일이 또 벌어졌다. 안산공장에 있던 직원 32명 중 31명이 그를 따라 충주로 온 것이다. 안산에서 충주까지는 120km쯤 되기 때문에 거주지를 옮기지 않고는 근무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그는 직원들의 애사심에 감동했다. 뭐든 도와주고 싶었다. 고심 끝에 전 직원에게 전세자금을 최대 3000만 원까지 대주기로 결정했다. 당시 충주지역 25평 아파트 전세가 2000만 원쯤 했으니 전폭적인 지원을 한 셈이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안산에 있는 집을 무리해서 팔지 말라고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직원에 대한 최고의 배려였다.

충주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큰 파도가 최 대표를 덮쳤지만, 독보적인 기술력과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위험을 최소화했다. 2008년에는 충주산업단지 관리공단 초대 이사장에 선임됐다. 당시 충주산업단지에는 입주계약을 한 90개 업체 중 전기, 전자, 금속기계, 식료품 등 관련 78개 업체가 공장을 가동하고 있었다.

최두철 한영선재 대표. / 사진=이주현 기자

2011년부터는 일본 혼다와 도요타 등에 볼트를 수출했다. 한 달에 300톤 정도 보냈다. 돈으로 환산하면 40만 불 정도 된다. 볼트는 자동차 바퀴에 들어가는 중요한 부품이다 보니 어지간한 기술력이 아니고서는 수출이 힘들었다. 그런 힘든 일을 최 대표는 8개월 만에 이뤄냈다.

2015년에는 세계 최초로 비인계 피막 원천기술을 확보하게 된다. 이는 피막 작업에 드는 시간을 혁신적으로 줄여 생산성을 향상하고, 친환경을 도모할 수 있는 고강도 하드웨어 제품에 대한 비인계 피막 처리 국내 특허권이다. 소성 가공에 적합한 윤활 피막을 만들고 침인 현상을 제거해 열처리 시 발생한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 대표는 기업인으로서 살아온 날들을 이렇게 정리했다. “나 혼자 잘 살려고 사업한 거 아닙니다. 내 이웃, 직원들, 거래처들과 함께 잘 살려고 부단히 노력했어요. 저기 걸려 있는 액자 보이지요? ‘재밌게 잘살자’. 이게 사훈이자 내 경영철학입니다. 아직까지는 잘 지키고 있는 것 같아요.”

인터뷰 내내 “사는 게 재밌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20대 청년의 열정이 느껴졌다. 세월을 지낸 육체는 어쩔 수 없지만, 정신만은 젊은 시절 그때 그대로였다. 내년에는 800억 원, 내 후년에는 1000억 원의 매출을 목표한다는 그의 말에서 코스닥 상장이 머지않았음을 실감했다.

(사)중소기업융합충북연합회 교류회 가입 문의는 043-230-6877.

이메일은 eupkorea0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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