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아! 아즈미(あずみ) 교수님!
[기자수첩] 아! 아즈미(あずみ) 교수님!
  • 이주현 기자
  • 승인 2017.08.09 0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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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투자자 박철상 씨에 대한 단상
아즈미 교수는 대략 이렇게 생겼다.

8월 8일 새벽 1시 40분. 읽던 책을 덮어두고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내 곁에 아즈미(あずみ) 교수님이 계셨다면….’ 아쉽지만, 아즈미 교수는 만화 회계학 입문서인 ‘회계학 콘서트’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이다.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다소 괴짜처럼 보이는 그는 생긴 것과 달리 제법 묵직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내용의 큰 줄거리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갑자기 회사를 물려받은 주인공 유키를 돕는 것이다. 정상적인 회사를 경영해도 될까 말까인데, 다 쓰러져 가는 회사를 승계받았으니 주인공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이 회사는 빚만 잔뜩 있는 데다, 직원들 월급이 몇 개월 째 밀려있다. 심지어 은행의 융자 중단 통보도 받았다.

경영 초짜인 주인공이 뭘 알겠나. 유키는 매번 회계 전문가인 아즈미 교수에게 근사한 식사를 대접하며 경영 컨설팅을 부탁한다.(식사를 대접받는 건 아즈미 교수의 요구사항이었다.) 그때마다 아즈미 교수는 여유를 부린다. 좌불안석인 유키를 앉혀놓고는 음식을 먹고 비싼 와인을 음미한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아즈미 교수는 명쾌한 답을 내놓는다. 이해하기 쉽도록 충분히 사례를 들면서. 경영 컨설팅이 끝나면 유키는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이렇게 말한다. “아즈미 교수님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내용은 꼭 실천해보겠습니다.”

(서론이 길었다.)이 대목이 나를 생각에 잠기게 했다. 매번 조언이 필요할 때마다 정답에 가까운 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니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 인생을 쉽게 살려는 잔꾀라기보다 요즘 세상이 너무 각박하다 보니 든 상상이다.

이런 생각을 하던 날, 청년 투자자 박철상(33) 씨가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그는 종잣돈 1500만 원으로 시작해 400억 원의 자산을 모아 ‘청년 버핏’이라고 불린 인물이었다. 게다가 주식으로 번 돈의 일부를 대학교나 사회단체 등에 기부하면서 투자자들과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었다.

그런데 이게 거짓이란다. 유명 주식투자가인 신준경 스탁포인트 이사가 강도 높게 자산 인증을 요구하면서 박철상 씨가 실토한 것이다.

박철상 씨는 8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2003년 1000만∼2000만원으로 투자를 시작해 현재 투자원금은 5억 원 수준”이라며 “기부한 금액을 포함하면 14억 원 정도를 번 것이 맞다”고 밝혀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후 신준경 씨는 자신의 뉴스피드에 이런 글을 올렸다. “그 청년은 본질은 나쁜 사람은 아니며 그냥 약간의 허언증에 사회가 영웅으로 만들면서 본인도 심취해버린 것으로 보인다. 더는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남긴 것처럼 어쩌면 박철상 씨는 이런 상황에 심취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만약 그에게 조언해줄 수 있고 답을 줄 수 있는 아즈미 교수님 같은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오늘의 일이 발생했을까.

그를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언젠가 한 번 나도 역사책, 소설책, 철학책만 읽고 수백억 원대의 자산가가 될 수 있다는 상상을 했던 사람으로서 측은지심이 들었다. 그가 결국 이렇게 무너진 것을 보니 마음 한편이 아리다.

나는 이날 새벽, 덮어 두었던 회계학 콘서트를 다시 집어 들었다. 아즈미 교수는 오늘의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키에게 명쾌한 답을 알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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