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 식약처, 독성 헤어스프레이 ‘면죄부’ 의혹
[탐사] 식약처, 독성 헤어스프레이 ‘면죄부’ 의혹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7.09.01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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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제품 쓴 J씨 고통호소하자 성분 바뀐 2015년 제품은 ‘이상無’
J씨 “3년 동안 생사 넘나드는 투병했다, 피해자 ‘집단소송’ 진행 예정
3년 동안 생사를 넘나들었던 투병생활에 대해서 설명하는 J씨. 왼손에 든 손수건으로 쉴새 없이 눈물을 닦았다. 눈물이 제어가 되지 않는 증상 때문이라고. 사진=이재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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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돼 파문을 일으켰던 살균보존제 ‘CMIT와 MIT’가 들어있는 헤어스프레이를 장기간 사용한 40대 여성이 생사를 넘나드는 투병생활을 하면서, 20여 가지 질병을 진단받았다며, 8월 말부터 피해자들을 모아 집단소송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J씨의 요청에 따라 전문가 회의를 열고, 해당업체도 점검했지만 문제성분을 사용하지 않도록 ‘제조기준이 바뀐 이후’의 제품만 점검한 뒤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과를 내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146명의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표기돼 있다.

J씨는 27일, 세종시에 있는 한 커피숍에서 기자와 만나 2014년 12월부터 시작된 악몽과 같은 투병생활과, 업체, 식품의약품안전처 등과 벌여온 실랑이에 대해 털어놓았다. J씨는 2014년 10월 말, 홈쇼핑을 통해 D사(인천광역시 소재)가 제조한 ‘B헤어스프레이’ 9개 들이 2박스(총 18개)를 구매했다.

J씨가 B헤어스프레이를 구매한 것은 홈쇼핑 판매자로 나선 유명 헤어디자이너 ‘아티스트 T(영문 약자)’의 명성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활동하다 서울 강남에 헤어숍을 낸 T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국내외 연예인들의 스타일리스로 알려져 있다.

J씨는 “방송을 보면서 아티스트 T가 직접 기획하고 제조한 제품인줄 알았다. 무(無) 파라벤, 무 동물성 오일, 무 광물성 오일 등을 강조하며 각종 천연성분이 들어있다고 해서 믿고 구매했다”고 말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B헤어스프레이는 2015년 1월~4월, L홈쇼핑의 뷰티 제품 판매실적에서 9위를 기록했다. 일부 언론은 모두 수백만 개가 팔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위해성분 함유 모르고 1년 동안 10통 사용

머리에 생겼던 붉은 혹.

두피에 뿌리면 양모에도 효과가 있다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다. 한 번 뿌리면 스타일을 고칠 수 없는 기존 제품과 달리, 빗질로도 수정이 가능해 제품 만족도가 높았다. 2014년 12월, 한 달 내내 콧물과 재채기, 두통 등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겨울철 환절기라서 감기에 걸렸나 보다’ 했다.

그러다가 비정상적인 하혈을 하게 되면서 산부인과 신세를 지게 됐고, 비특이성(원인을 알 수 없는) 근종 등으로 ‘자궁 적출’을 권유받게 되면서 상황이 심각함을 깨닫게 됐다. 하지만 이는 신호탄에 불과했다. 머리에 붉은 반점이 번지고 심지어는 혹이 생기기도 했다. 손바닥이 허물을 벗는가하면 손톱이 양파껍질처럼 겹겹이 떨어져나갔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눈에 튜브 삽입수술을 받기도 했다. J씨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쉴 새 없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감정으로 인해 눈물이 나는 것이 아니라 제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J씨는 “스프레이를 쓰기 전까지는 정상혈압이었는데 지금은 150이다가 250, 280까지 올라갈 때가 있다. 대동맥 꽈리가 터지기 직전까지 간 적이 있다. 그때 반신마비가 올 뻔했다”고 주장했다. 누워서 하루 종일 정신이 혼미할 때도 있다고 했다. J씨는 “지금은 중학생이 된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내가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을 보고 ‘○○야 왔니?’했다가, 나중에는 ‘너 언제 왔니?’라고 말하니 아들이 엄마를 무서워할 정도였다”고 하소연했다.

J씨는 지금까지 3년 동안 400회 통원치료를 받았고 20회 입원을 했다. 또 10여 차례 수술까지 받느라 약 2억원을 썼다고 주장하고 있다.

 

○1년 사용 뒤 146명 숨지게 한 가습기살균제 성분 확인

손톱이 깨져 양파껍질처럼 벗겨지기도 했다.

‘혹시 헤어스프레이 때문에?’라는데 생각이 미친 것은 제품을 사용하고 나서 1년쯤 지나서였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들에 시달리며 병원을 다니면서도 홈쇼핑 광고에서 천연성분을 강조했기 때문에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J씨는 “2015년 추석 무렵, 제조사인 D사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120번 정도 전화를 했던 것 같다. 그제야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신고전화를 하게 됐고, 곧바로 D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고 했다.

J씨는 D사 직원 P대리와 통화내용 일부를 녹취한 상태다. 그 내용은 “식약처에서 전달사항을 저희에게 전하셨지만 소비자 안전성 관련해서 그런 거나 행정적으로 조치 오는 것들 저희가 다 할 거고요. 그거 말씀은 들으셨죠?”다. 하지만 D사가 자신들이 감당할 책임에 대해 전향적 태도를 보인 것은 이게 마지막이었다. D사는 든 생산물책임보험은 단체보험으로 가입한 최고보상액 3000만원이 전부였다.

J씨가 B헤어스프레이의 ‘전(全)성분’을 살펴보게 된 것은 그 즈음이다. J씨는 깨알 같은 글씨 속에서 ‘CMIT와 MIT’라는 성분을 발견했고 이 성분이 1,2차 피해자 조사에서 무려 146명을 숨지게 만든 것으로 확인된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물질이란 것도 알게 됐다. J씨는 이때까지 1년 동안 10개의 헤어스프레이를 사용한 상황이었다.

CMIT(메칠 크로로 이소치아졸리논)와 MIT(메칠 이소치아 졸리논) 성분은 미국환경청(EPA)에서 산업용 살충제로 등록한 물질이지만 국내에서는 유독물이나 취급제한 물질로 규정되지 않아서 가습기 살균제에 들어갔던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은 입과 폐를 통해서 흡입하면 감기증세를 보이다가 폐가 굳어 사망에 이르게 되고, 피부에 고농도 사용 시에는 붉은 반점과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식약처 전문가회의 “스프레이와 인과관계 없어 보여”

혈압이 280까지 오른 적도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식약처의 반응이었다. J씨는 독성학 등에 대한 자료와 외국논문 등을 검토하고 화장품법 등에 대해 조사했다.

J씨는 “화장품법 시행규칙 14조 2,3항 등에 ‘국민보건에 위해를 끼칠 수 있는 화장품에 대해서는 즉각 회수하거나 회수하는데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나와 있어 당연히 회수대상일줄 알았다. 그런데 식약처에서는 ‘기준을 강화하기 이전에 제조해 유통되는 제품은 강제회수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CMIT와 MIT에 대한 우리나라의 관리기준은 2015년 8월11일에 바뀌었다. 8월11일 이전까지는 화장품 전 유형에 대해 0.0015% 이내로 CMIT, MIT를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날부터 기준이 강화돼 샴푸와 린스 등 씻어내는 제품에 대해서만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날 이전에 제조한 제품들은 제조기준을 지켰기 때문에 강제회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J씨는 “당시에 인터넷 쇼핑몰과 중고거래사이트 등을 통해서 B헤어스프레이를 구입해 봤다. 종이갑에는 문제의 성분이 없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그런데 안에 있는 제품에는 여전히 해당성분이 들어간 예전제품이 들어있었다. 이를 들고 가 식약처 직원에게 보여주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결정적으로 식약처는 2016년 12월6일, ‘J씨가 겪고 있는 여러 질환과 해당 제품과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결과를 공식 통보한다. 이는 2016년 11월25일, J씨의 요청으로 식약처에서 열린 ‘화장품 안전성정보 전문가 자문회의’의 결과에 따른 통보였다.

 

○식약처 헛다리 짚고, 하나마나한 소리만

식약처의 업체 점검 J씨는 2014년 제품을 썼다는데, 식약처는 문제 성분이 빠진 2015~16년 제품을 조사했다며 문제 없다고.

세종경제뉴스는 J씨로부터 식약처가 보냈다는 자문결과 회신을 받아서 분석해 보았다. 문제는 소비자의 처지에서 검토한 내용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회신의 골자는 ▲첫째, ‘CMIT, MIT 위해성’인데 씻어내는 제품에 최대 0.0015%로 한정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내용이다. 이는 ‘헤어스프레이’가 뿌린 후 씻어내는 제품이 아니므로 연관조차 없는 얘기다. 오히려 스프레이는 두피를 통해 피부로 흡수되는 것과 함께 미세한 분말이 호흡기를 통해서도 흡수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둘째는 ‘2015년 8월11일부터 화장품 전 유형에서, 씻어내는 제품에 한해 허용범위를 제한했다’는 내용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J씨가 9개 들이 2박스를 구매한 것은 2014년 10월이기 때문에 이 역시 하나마나한 소리에 불과하다.

▲셋째는 ‘2016년 11월8일, D사를 점검한 결과 CMIT, MIT 사용기준을 위반사항이 없다’는 내용이다. 식약처의 점검이 ‘의도적으로 헛다리를 짚은 게 아닌가’ 의심이 가는 부분이다. 식약처는 D사가 2015년 8월11일 이후에 문제성분을 빼도록 처방을 변경했고, 제조기준 강화시점인 2015년 7월28일자 불검출 시험성적서를 보유하고 있으며, 식약처가 기준변경 이후에 제조한 제품 (사용기한 2018년 4월25일)을 수거해 검사한 결과 CMIT, MIT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컨대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하니 ‘최근 제품에는  해당 성분이 없다’고 대답한 셈이다. 기가 막혀 말문을 막히게 하는 대답이다.

▲넷째는 ‘제출한 병원 소견서만으로는 판단에 어려움이 있으니 명확한 근거자료 및 민원인과 유사한 반응이 발생한 사례 등에 대한 추가적인 자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입증책임은 소비자에게 있다는 얘기다.

J씨는 “D업체 간부인지, 대표가 그날 자문회의에 들어와서 참관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또 참석한 전문가들의 명패가 없어서 식약처에 여러 차례 정보공개를 요청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반해 정 씨를 진찰한 한 대학병원은 정 씨 질병이 해당 제품과 인과관계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 병원 직업환경의학과 I교수는 “제품 사용과 관련이 있는 부위에 집중적으로 발생됐다는 것과, 제품 속에 들어가 있는 살균제와 같은 유해한 물질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업체는 공갈미수, 업무방해 혐의로 J씨 고소

식약처의 처분에 따르겠다던 D업체는 민·형사 소송으로 대응하고 있다. D사는 먼저 J씨를 ‘공갈미수’와 ‘업무방행’ 혐의로 대전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2017년 3월31일, 검찰은 두 혐의에 대해 모두 무혐의로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D사 측의 주장은 2016년 10월18일, D사 P대리에게 전화를 걸어 B헤어스프레이 사용으로 자궁내막증, 폐 손상, 편도염 등이 심해져 수술을 받는 등 피해를 입었으니 일단 두피치료비 명목으로 300만원을 요구했으나 돈을 주지 않아 미수에 그쳤고, 10월26일에는 허위의 사실을 SNS에 올려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검찰의 판단은 피의자가 돈을 요구했다는 고소인의 주장에 증거가 없고, 제품사용으로 인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피해자가 열거한 증세로 병원치료를 받아왔으며, 구입 당시인 2014년 제품에는 CMIT, MIT 성분이 제품에 표기돼 있어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사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갈미수는 혐의가 없다는 얘기다.

업무방해에 대해서는 페이스북에 글과 사진을 올린 것은 사실이지만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유서형식의 개인적 일기를 페이스북에 쓴 것이고, 친구로 등록된 사람만 볼 수 있을뿐 전파한 사실은 없다. D사의 홈페이지 등에도 글을 올리지 않은 것으로 봐서 업무방해의 고의는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D사는 또 J씨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낼 수 없도록 ‘손해배상채무 부존재확인 청구의 소’를 냈다. 원고인 D사는 동일한 방법으로 같은 제품을 쓴 다른 소비자의 이상증세에 대한 사례가 전혀 없고 포장용기의 주의사항과 달리 두피에 직접 닿아 발생한 피해라면 제품의 하자가 아니라 사용상의 부주의로 인한 것이라는 청구취지를 밝혔고, 법원은 D사의 손을 들어줬다.

J씨는 “민사는 재판에만 참석했을뿐 법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즉각 항소했고 변호사를 선임해 2심을 준비중”이라고 설명했다.

 

○J씨 “업체 상대 집단소송, 식약처도 이해 안 돼”

J씨와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댓글과 메일이 답지하고 있다. .J씨는 곧 집단소송을 시작할 계획이다.

J씨의 사연은 8월17일, JTBC뉴스를 통해 보도됐다. 하지만 방송뉴스의 특성 상 1분 남짓한 시간에 3년에 걸친 복잡한 전후관계를 담아내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해 식약처가 있는 청주 오송에 본사를 둔 ‘세종경제뉴스’에 2차 제보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J씨는 D사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JTBC 보도 직후 댓글과 이메일 등으로 유사한 피해사례가 답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J씨는 “초기에 감기를 앓았다거나 홍반, 손톱 깨짐 등 비슷한 증세를 보였다는 내용들이다. 거의 대부분이 원인을 몰랐던 경우다. 이메일 30통 등 200건 정도가 들어왔는데, 일단 100명 정도를 골라서 소송을 준비하겠다. 인터넷 도메인을 사서 피해자 홈페이지를 만들겠다. 피해자 규모가 순식간에 불어날 것으로 본다”고 법적대응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J씨는 “업체 대표의 진정한 사과를 받는 게 가장 큰 목표였는데 일이 커졌다. 더 이상의 피해자를 막고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겠다”고 덧붙였다.

J씨는 “업체도 업체지만 식약처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거듭 밝혔다. 식약처 관계자가 ‘업체는 부도 처리됐다’고 밝혔는데, 등본을 확인한 결과 법인이 살아있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J씨는 인천에 있는 공장에도 가봤다고 했다. J씨는 “D사의 주소는 그대로인데, 다른 곳에 주소를 둔 유아용 세정제품 회사가 들어와 있었다. 신고된 장소가 아닌 곳에서 제품을 만드는 것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라며 “일의 앞뒤를 가려야겠지만 밝혀야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고 말을 맺었다.

※알림_

세종경제뉴스는 보도를 앞두고 업체이름과 제품명, 제품사진 등을 공개할 것을 검토했으나 27일 현재, D사의 홈페이지는 ‘사이트기간 만료’라는 공지와 함께 검색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문제의 제품을 홈쇼핑 등에서 검색하면 모두 ‘품절’이 표시됩니다. 따라서 이니셜을 사용했지만 B헤어스프레이의 유통이 확인되면 즉시 업체명과 제품사진 등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다만 개인 등이 중고거래사이트를 이용해 거래를 할 수도 있으니 이에 대해서는 주의를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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