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태양을 찾아서 오하이오에 가다①
검은 태양을 찾아서 오하이오에 가다①
  • 박한규
  • 승인 2017.09.23 0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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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사막언덕에서 숨 막히는 개기일식 관찰

특집연재_ 별 보는 어른아이

코로나와 다이아몬드링. 일러스트=박한규

처음부터 개기일식이 나를 사로잡은 것은 아니었다. 천문인들이 죽기 전 꼭 봐야 할 천문현상으로 세 가지를 손꼽는다. 개기일식, 오로라, 유성우. 2012년 11월,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봐야 한다는 쓸데없는 강박과 함께 대체 어떤 것이기에 하는 궁금증이 더해지고 대부분의 풍문이 그렇듯 과장이 덧씌워졌으리라는 의구심까지 곁들여서 일식여행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일식(日蝕)과 일식(日食: 일본 음식)을 구분하지 못했던 아내와 여섯 살 아들은 호주라는 말에 무작정 따라 나섰다. 안타깝게도 케언즈의 개기일식 순간은 구름으로 직접 관측은 못했지만 캄캄해지는 하늘과 대낮에 별을 보는 신이한 경험이 가족 모두를 전율케 했다. 검은 태양의 안타까운 시간이 흐른 뒤, 아내에게 뜨거운 침묵이 지나갔다.

이때부터 아내는 일식추적자(eclipse chaser)가 되었다. 그 뒤로 4번의 개기일식 기회를 이런저런 사정으로 놓치게 되어 나와 아내는 개기일식에 대한 목마름이 점점 커져가고 있을 즈음, 2017년 8월21일 미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개기일식 관측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오하이오 샌드힐스(Sandhills) 사막에서 관측장비 셋팅. 일러스트=박한규

1년 전부터 관측 장소를 정하고 그곳의 연평균 강우량과 구름을 검색하고 숙소와 교통편을 알아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숙소는 이미 만원이었고 남은 곳의 가격도 천정부지였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캠핑카 여행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관측 장소도 와이오밍주 캐스퍼(Casper)에서 오하이오주 아이다호폴스(Idaho Falls)로 변경하였고 지인 15인을 모아 세 대의 캠핑카 개기일식 관측팀을 꾸렸다.

10시간을 날아 LA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유타주 솔트레이크에서 모든 일행이 합류했다. 캠핑카를 몰아 아이다호폴스를 거쳐 최종 목적지 샌드힐스 리조트까지 단숨에 몰아치며 달려갔다. 샌드힐스(Sandhills)는 이름처럼 사막언덕에 자리 잡은 리조트로 일식 관측에 더할 나위 없는 지형이었다.

도착 즉시 망원경을 설치한 뒤 카메라 테스트를 마무리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점검하고 밤에도 극축을 맞추는 등 한 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몇 분을 제외하면 모두가 개기일식 초보자인지라 관측을 어떻게 하는지, 촬영을 어떻게 하는지, 사진과 동영상은 어떻게 찍는지 제대로 알 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벽 4시가 넘어서야 테스트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하루가 너무도 짧았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일식이 시작하는 첫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또 다시 분주하게 움직였다. 일식 안경을 챙기고, 맨눈으로 관측만 하는 사람은 사막으로 들어가고 망원경과 카메라 장비를 지켜야 하는 사람은 리조트 안뜰에서 멀리 탁 트인 사막에서의 일식 풍경을 부러워하면서…. 몇 차례 하얗고 노란, 둥근 태양을 쳐다보길 거듭하는 가운데 드디어 태양의 왼쪽 아래 귀퉁이가 손톱만큼 까맣게 벌레 먹기 시작했다. 순간 뒷목이 쩌릿하고 갈비뼈가 부풀어 오른다. 뻐근한 숨결을 느낀다.

개기일식 8단계. 촬영=박한규 보는 순서 왼쪽부터 3단으로1 2 3/4 5/6 7 8

부분일식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태양은 반달에서 오목한 달 모양에 가까워진다.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햇빛들이 잎사귀 그림자들 사이에서 초승달 모양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종이에 볼펜으로 구멍을 몇 개 뚫어 비치니 그림자들도 초승달처럼 예쁘다.

집에서 종이에 여러 모양의 구멍을 뚫어 땅에 비추어 보면 까만 종이 그림자에 종이를 뚫은 구멍으로 비치는 둥근 모양의 빛덩이들이 나타난다. 너무나 당연히 여겼지만, 이 빛구멍이 둥근 이유는 태양이 둥글기 때문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종이판에 볼펜으로 구멍을 뚫으면 초승달 모양의 해 그림자가 생긴다

남아있는 태양빛이 점점 줄어들어 초승달에 가까워지자 주위가 어두워진다. 뜨거운 햇살로 맨살이 따갑던 사막에 서늘한 바람이 분다. 잠시 무섭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일식이 물리법칙에 근거한 자연현상임을 몰랐던 옛 사람들이 가졌을 공포감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케언즈에서는 새들이 날아올랐는데 사막이라 그런지 새들은 보이지 않았다. 태양빛이 점으로 수렴되는 순간의 섬뜩함을 잊지 못한다. 목구멍에서 ‘끄으으~’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태양이 사라지자 빛이 찾아왔다. 검은 태양 주위로 코로나가 찬란하게 뻗어 나왔다. 태양이 사라져야 보이는 빛(코로나)은 오로라의 신비함을 연상시킨다. 추운 겨울밤의 오로라가 따뜻했다면 사막 하늘의 검은 태양 주위로 터져 나오는 빛은 차갑다. 오로라가 부드럽게 일렁인다면 코로나는 얇은 살얼음 같다. 개기일식의 한가운데로 접어들자 화가 난 코로나는 발정 난 듯 세차게 뻗어나가서 제 근원인 검은 태양조차 삼킬 듯하다.

일식 안경을 벗었다. 검은 태양의 오른쪽 상단이 서서히 밝아지는가 싶더니 빛덩이를 토해낸다. 다이아몬드 링(Diamond ring). 개기일식의 꽃이다. 내 귀에 들리던 내 함성소리에 놀라던 자신을 알아채고도 함성을 멈추지 못했다. 다이아몬드 빛덩이가 점점 커지고 커져 이내 맨눈으로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다시 태양이다. 한숨이 나왔다. 알 수 없는 절정의 순간에서 쑥 빠져나온 느낌이다. 안도감일까? 허탈함일까? 이후로 이어지는 부분일식은 매력이 한풀 꺾인 기분이다. 마음에 여유가 찾아왔다. 사막 위에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고 손을 흔드는 아내와 아들의 모습이 반갑다. 한 시간여를 더 달려 일식은 끝이 났다.

다시 비행기로 12시간을 날아 집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아이패드를 꺼내들고 다이아몬드 링을 그리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빼곡한 일정 때문에 짬이 나지 않아서 그리지 못했던 이미지를 꺼내 옮기니 그 날의 흥분이 되살아난다. 씻고 세 식구가 함께 침대에 누워 끝없는 잠에 빠져 들었다. 꿈속에서도 나는 다시 검은 태양을 찾아서 비행기에 오르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청주가 고향인 박한규는 흉부외과 전문의로, 현재 경남 창원시 진해에 있는 늘푸른요양병원 병원장이다.박한규 원장은 키만큼 커다란 망원경으로 별보기를 좋아하는 어른아이다. 또 신화와 역사 그리고 과학을 넘나들며 엿보는 재미에 빠진 일탈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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