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기에 필요한 적정기술의 모든 것
시골살기에 필요한 적정기술의 모든 것
  • 정도선
  • 승인 2017.09.23 0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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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돈보다 기술』김성원, 소나무

CEO의 서재

30대 초반, 서울에서의 삶은 몹시 팍팍하고 불행했다. 직장과 집만 오가는 생활, 늘 무언가에 쫓기듯 불안한 마음, 어쩌다 자투리 시간이라도 생기면 무언가를 배우고 공부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 그러지 않으면 영영 뒤쳐질 거라는 주위의 암묵적 강요.

꾸역꾸역 이 모든 감정들을 안고 달래고 어루만지며 버텨오던 어느 날, ‘왜 이렇게 살아야하나’라는, 마음 깊숙이 꽁꽁 싸매 넣어놨던 내 원초적 감정들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더 이상은 서울의 삶을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몸이 아픈 아내에게도 서울에서의 삶 보단 자연과 가까이 할 수 있는 시골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우리는 바로 귀촌을 결심하게 되었다.

경남 산청, 경호강이 굽이굽이 흐르고 지리산이 감싸 안은 천혜의 자연을 가진 곳. 연고라곤 전혀 없는 그곳에 무작정 찾아가 집을 얻고 직장까지 얻게 되었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고 순조로웠다.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집, 그 앞으로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개울가에는 가재와 다슬기가 천지였다.

시시각각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을 느끼고 감동받고 치유되었던 우리의 삶. 허나 그것들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그 자연과 시골의 정서를 느낄 줄만 알지 우리가 일궈갈 능력은 전혀 없었던 것이었다. 배달도 되지 않을 만큼 외졌던 시골에서는 도시의 편리한 삶만 경험해봤던 우리들이 감당하지 못할 문제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예컨대 황토집의 틀어지고 벌어지는 벽을 수선할 기술도 없었고 허물어진 담을 보수할 능력도 없었다. 도시가스가 아닌 기름보일러는 기름 값을 충당할 형편도 되지 않았을 뿐더러, 산으로 둘러싸여있는 동네의 골바람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시에서의 시간보다 몇 배는 긴 것 같은 시골에서의 시간을 온전히 사용할 방법을 몰랐다. 새벽부터 분주하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가꾸고 다듬고, 베고, 만드는 원주민들 속에서 한량같이 책이나 읽고 시나 읊으며 유유자적하기는 부담스러웠다.

다행히 좋은 이웃들을 만나 도움도 받고 전문가들의 도움도 받아 그때그때 해결해나갔지만 뭔가 근본적으로 잘 못 되었음을 느꼈다. 그렇다. 우리는 시골에서 살기엔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한계를 느낀 우리는 나중을 기약하고 귀촌한지 불과 2년 만에 그곳을 떠나 다시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물론 그간 시골에서 보낸 시간들이 무익하지는 않았다. 우리의 삶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었고, 거기서 만든 추억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값지고 소중하다. 허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우리의 귀촌은 실패였다.

 

청주에서 새 삶을 꾸리고 있는 지금, <시골, 돈보다 기술>을 보면서 귀촌하기 전에 만약 이 책을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든다. 이 책은 30대 초까지 빈민, 노동 관련 단체에서 일해 온 작가가 장흥으로 귀농해 적정기술, 전통기술, 생활기술 등 시골에서 필요한 모든 기술들을 섭렵하고 만든 책이다.

독거노인이 사는 집 문짝 고쳐주기, 비새는 지붕 땜질하기, 이웃 농사 거들기, 야외 탁자 만들기, 빗자루 만들기 등 사소할 수도 있는 기술부터 흙집 만들기, 구들장, 햇빛 온풍기, 화덕, 압착기, 난로 만들기 등등의 고급기술까지, 전구 갈아 끼우는 것도 힘든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삽화를 곁들여 설명한다.

시골에 살려 한다면 또 시골에서 잘 살고 싶다면, 다른 무엇보다 생활기술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저자. 얼핏 보면 이 책은 단지 기술과 도구의 목록과 설명이 아닐까 싶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기술 공동체였던 시골’의 회복을 꿈꾸는 저자의 속마음을 여실히 알 수 있다.

그가 이토록 손을 쓰고 만드는 일의 가치에 몰두하는 까닭은 비단 창조의 기쁨과 개인적 만족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는 이를 통해 사람들이 그저 소비하기만 하는 자신의 손과 삶을, 삶을 풍성하게 일구던 재주들이 사라진 풍경을, 한번쯤 돌아보길 희망한다. 나아가 이를 화두로 연대하길 꿈꾼다.

클릭 한 번이면 태평양 건너에서도 집 앞까지 원하는 것들을 뚝딱 배달해주는 세상에서 이런 기술들이 무슨 필요냐 하시는 분들도 있을 수 있겠다. 허나 앞서 밝힌바와 같이 이 책을 읽어야 이유에는 ‘정말 잘 살고 싶다면’ 이라는 전제가 붙는다.

문명의 발달로 인해 점점 손은 둔해져가고 이웃과는 담을 쌓게 되는 현대사회에서 충분히 귀감이 될 만한 책. 특히 귀촌, 귀농을 앞두고 있는 분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책을 읽고 나면 어느덧 대장간이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 일고, 또 어느덧 기술자가 되어 있을 지도. 그리고 이 책이 가장 크게 당신의 마음을 어루만지게 되는 건 다름이 아니라, 이웃과의 어울림을 갈망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서점노동자다. 8년 간 전국곳곳 많은 서점들을 돌아다니며 일했다. 현재는 청주 꿈꾸는책방 점장을 맡고 있다. 팔기 아까운 책은 진열하지 않고 숨겨버리는 악덕(?)서점인이기도 하다. 아내 박진희와 함께 7개월간의 세계여행 기록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 거야>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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