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은퇴, 설레는 은퇴
불안한 은퇴, 설레는 은퇴
  • 윤상원 한국발명교육학회장(u1대 발명특허학과 교수)
  • 승인 2017.09.25 1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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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할아버지가 ㄱ자로 꺾인 허리가 버거운 듯, 깡마른 팔과 다리로 리어카를 힘겹게 끌고 있다. 박스와 신문지로 가득 채운 작은 수레는 위태롭기만 하다. 하루 몇천 원 벌이를 위해 새벽이슬 맞으며 오늘도 위험한 골목길을 헤집고 다닌다.’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폐지라도 주워야 하는 절박한 어르신 모습이다.

우리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누구는 어떻게든 불쌍한 할아버지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반대로 나는 늙으면 절대로 할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거야! 라고 다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나이 듦과 은퇴를 결코 피할 수 없다. 남보다 조금 빠르거나, 늦은 차이만 존재한다. 은퇴 이유도 뻔하다. 사업부진, 조업중단, 휴·폐업, 정년퇴직, 건강문제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정년퇴직은 축복받은 은퇴다. 사업 부진이나 폐업으로 퇴직하면 난감하다. 준비가 안 되면 완전 무방비 상태다. 조기 퇴직자에게는 폐지 줍는 할아버지 모습이 불안감으로 엄습할 것이다.

점차 정년이 연장되고 있다. 정작 우리 주변에는 40~50대에 중도 하차하는 퇴직자가 많다. 창업은 물론 재취업도 못 한 채 어정쩡한 시간을 보내는 중년 인재가 널렸다. 심각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절박함을 느끼지 못하는 예비 은퇴자의 ‘시각(視角)’이다. 은퇴는 여전히 남 일로만 여겨지네요! 은퇴준비는 돈 있고 시간 있는 사람만 하는 거 아닌가요? 잘 나가는 자식 있으니 무슨 노후 걱정을 하나요?

그러나 현실은 냉엄하다. 이젠, 평생직장 개념이 없어졌다. 직장 은퇴는 평균 53~54세다. 퇴직 시기는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면 무려 7~10년 이상 빠르다. 은퇴 후 30∼40년, 길게는 50년 동안 무엇을 하면 살 것인가? 돈 문제가 아니라 일 문제다. 은퇴 후 안락한 삶을 꿈꾸며 성실하게 살았던 중산층 노인들의 비참한 현실을 다룬 일본 NHK 다큐멘터리 ‘노후파산(老後破産)’이 주는 울림은 크다.

요즘 은퇴자를 샌드위치 세대라고 한다. 자녀를 교육하고 돌보느라, 자기 노후는 챙기지 못했다. 빈털터리로 노년을 맞이하게 됐다. 남은 인생은 속수무책이다.

자녀가 부모를 모실 수 있는 능력도 안 된다. 가족문화도 옛날과는 딴판이다. 자녀는 부모를 모시려고 하지 않는다. 부모 부양문제는 형제간·부부간 갈등 요인이 된 지 오래다. 병든 부모는 찬밥신세다. ‘100세를 의무적으로 살아야 하는 대한민국, 고령화가 가장 빠르면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대한민국, 가장 빨리 소멸할지도 모를 대한민국’이게 바로 우리에게 들이닥친 서글픈 현실이다.

더는 방관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추진하는 제도개선이나 일자리 창출도 한계가 있다. 개인적인 은퇴 준비가 최선책이다.

“은퇴 후 하루가 너무 길다. 죽기 전에 돈을 벌 수 있는 뭘 배워야 한다.” 먼저 경험해본 은퇴자의 한결같은 충고다. 그렇다. 설레는 은퇴는 ‘배움’ 으로부터 출발한다. 철저하게 공부하라는 뜻이다. 수험생이 하는 공부가 아니다. 정신건강과 경제활동에 도움을 얻기 위해서라도 공부습관을 가지라는 말이다. 벌이가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게 아니다. 학창 시절 가방끈으로는 평생을 버티기 어렵다. 공부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이다.

공부는 앞으로 남은 인생 준비와 삶을 위한 생존 도구이다. 평생 무언가를 배우고 준비하는 사람이 행복지수가 높다는 연구 결과는 차고 넘친다. 나이 들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돈을 벌면서, 인생 보람을 찾는 노력은 신나는 일 아닌가.

주변에는 은퇴 이후 인생 2막을 위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준비된 예비 은퇴자는 배움에 체면을 가리지 않는다. 분야도 천차만별이다.

‘젊어서부터 좋아하던 미술 강의로 인생 2막을 설계하는 은행 지점장님, 촬영과 편집기술을 배워 재취업에 도전하는 학교 선생님, 기능성 떡으로 창업을 준비하는 기업 이사님.’ 다양한 분야에서 지금이 전성기라고 생각하고 새로운 도전장을 내민 예비 은퇴자 모습에서, ‘설레는 은퇴’의 진정성을 본다.

이들은 끼와 열정, 배움에 대한 의지가 넘쳐난다. 인생 후반전의 선두주자인 셈이다. 준비된 은퇴자는 은퇴 이후가 비로소 진정한 삶의 시작이자, 나만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희망임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은퇴 후, 태풍 같은 시련이 닥쳐도 준비된 자에게는, 태풍도 스쳐 지나가는 꽃바람으로 느껴 질 뿐이다. ‘설레는 은퇴’로 가는 첩경은 오직 준비된 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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