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책빵…청주 금천동 ‘꿈꾸는 책방’
내 영혼의 책빵…청주 금천동 ‘꿈꾸는 책방’
  • 정도선
  • 승인 2017.10.13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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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서재 쓰는 정도선 점장의 우리 책방 자랑
참고서를 치우고 더 붐비기 시작한 꿈꾸는 책방

청주 꿈꾸는책방은 ‘동네책방’이라 불리는 보통의 서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 한 귀퉁이의 아기자기한 매장, 온갖 책들이 고만고만하게 자리 잡고 있는 60평 규모의 지극히 평범한 책방입니다. 시대의 흐름에 이끌려 책이 있는 공간을 줄이고 커피를 마시거나 작은 커뮤니티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하고, 인문학 수업이나 강연, 작은 음악회 등 복합문화공간으로써의 기능도 해보려 노력하는, 어떻게든 급변하는 시대와 서점의 생태계 속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대한민국의 여느 서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서점입니다.

조금이나마 다른 서점들과 차별성이 있다면 참고서가 없다는 것과 대부분의 진열이 분야별(소설, 에세이, 인문, 사회 등) 진열이 아닌 주제별 진열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올해 5월, 저희는 서점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던 참고서를 과감히 철수하는 실험을 하였습니다. 이유는 참고서가 물론 책방운영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도움이 되는 만큼 모든 역량을 참고서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따라갈수록 개인적으로 진짜 서점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좋은 책을 선별하고 진열하는 작업에는 소홀히 되었기 때문이죠. 저희는 정답이 있는 참고서보다는 삶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고 일러줄 수 있는 책을 더 진열하고 싶었습니다. 무한경쟁을 앞세우는 책 보다는 토론하고 공존하며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책을 진열하고 싶었습니다.

이리하면 당장은 매출의 하락으로 서점운영이 힘들겠지만, 천천히 독서의 재미를 알아가고 서점의 묘미를 알아가는 독자들이 늘어남으로써 장기적으론 책방운영에 더 더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5개월이 지난 지금, 애초에 우려와는 다르게 기적같이 참고서의 매출을 극복하고 성장세에 접어들었습니다. 예상보다 극복한 시기가 너무나 빨라 저희들도 어리둥절한 상황입니다. 그만큼 이런 서점의 역할을 갈급 하는 분들이 많았나 봅니다.

진열방법을 달리한 것도 주요했습니다. 현재 책방은 대부분의 서가가 주제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컨대 그림책 코너는 6가지 주제로 분류를 나누어 진열을 했습니다. <가족> <일상생활, 자립> <친구, 상상, 놀이> <성격과 감정> <마음과 성장> <전통과 문화> 신기하게도 모든 그림책들이 저 주제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출판사별로 진열하는 방식보다 훨씬 친절한 분류법에 책을 잘 모르는 친구들도 자기가 원하는 책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참고서 치우고 오히려 매출 늘어

주제가 돋보이는 인테리어.

<2017 대한민국을 읽다> 이 주제별 코너는 저희가 구글 트렌드를 분석해 대한민국 사람들이 현재 어떤 삶을 지향하고 있는지, 대한민국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14가지 주제를 뽑아내 거기에 맞는 책을 선별, 진열했습니다. 주제 안에는 <고령화사회> <저성장 양극화> <휘게라이프> <젠트리피케이션> <미니멀라이프> <초연결 사회> <페미니즘> <미세먼지> <문재인피플> 등등이 있습니다. 이 서가 하나만 봐도 대한민국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으며, 이렇듯 우리가 사는 사회를 읽고, 앞으로의 사회를 읽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책방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롭게 사회적 현상이나 흐름들이 나타나면 계속해서 업데이트 됩니다.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이 주제별 코너는 개인적으로 살아가면서 꼭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들, 보다 나은 나를 위해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모두가 예외 없이 관심 가져야 할 주제 14가지를 뽑아 진열한 코너입니다. 주제 안에는 <사랑에 대하여> <나이듦에 대하여> <고통에 대하여> <악에 대하여> <죽음에 대하여> <청춘에 대하여> <고독에 대하여> <관계에 대하여> <정의에 대하여> 등등이 있습니다.

이 코너의 특징은 진열하는 사람의 개인적 성향에 따라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책들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입니다. 예컨대 <악에 대하여> 코너는 무엇을 악으로 규정하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자본주의가 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본주의에 관련된 책을 진열하면 되는 것이고, 종교가 악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종교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책들을 진열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랑에 대하여> 라는 코너도 보편적인 사랑도 있지만 치정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사랑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이 코너는 실제로 전국의 여러 서점으로 수출(?) 되었는데, 직접 다녀보시며 진열의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를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이것 말고도 한살림, 아이쿱 자연드림과 나란히 있는 서점 환경에 맞춰 서로의 고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의 책들, 그리고 스토리형 진열 예컨대, #1 ‘있잖아, 노력하면 뭐든 다 될 줄 알았어’ (자기계발, 노력을 강권하는 메시지를 담은 책을 진열) #2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더군’ (노력만으로는 신분상승을 꿈꿀 수 없는 사회의 시스템을 지적한 책을 진열) #3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내 삶을 찾아야겠어 (좌절하지 않고 그 시스템 안에서도 자기주도적 삶을 실천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을 진열) #4 ‘물론, 주위에 대한 관심은 열어두고서 말야’ (자기주도적 삶을 살더라도 주위에 대한 관심, 예컨대 세월호나 이주노동자 등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진열) 이런 방식의 진열도 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주제별 진열이 있으니 나머지는 서점으로 직접오셔서 보시길 바랍니다.

언제든 커피도 마시고 토론도 할 수 있는 공간.

불친절했던 예전의 진열방식에서 벗어나려 부단히 애쓰고 있습니다. 서점이라는 바다에서 나에게 꼭 맞는 책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독서의 묘미와 서점이라는 공간의 묘미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희들의 최종 목표입니다. 물론 이런 노력에는 품이 많이 들어갑니다. 무엇보다 책을 읽고 선별하고 눈에 잘 띄게 진열하는 과정은 대단히 고독하고 에너지 소비가 많은 작업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작업들을 게을리 하지 않는 까닭은, 저는 이것만이 서점이 살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개개인의 독자에게 맞는 좋은 책을 선별해 독서에 흥미를 붙이게 하는 것. 그리하여 독서 저변을 넓히는 것. 이것이 동네서점의 진짜 역할 아닐까요?

서점노동자다. 8년 간 전국곳곳 많은 서점들을 돌아다니며 일했다. 현재는 청주 꿈꾸는책방 점장을 맡고 있다. 팔기 아까운 책은 진열하지 않고 숨겨버리는 악덕(?)서점인이기도 하다. 아내 박진희와 함께 7개월간의 세계여행 기록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 거야>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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