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빠의사-국뽕스님?…우리도 말 좀 합시다!
환빠의사-국뽕스님?…우리도 말 좀 합시다!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7.10.22 2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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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민석 효성병원 과장 “강단사학에는 민족이 없습니다”
한지원 한국사 주지 “한민족역사대학원대학 건립 추진”
5개월 전의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도종환(청주 흥덕) 의원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내정했다. 시인이자 전직 국어교사의 인사청문회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회자될 것인가. 뜻밖에도 도종환 장관 후보자를 곤경에 빠뜨렸던 것은 ‘유사사학을 지지하지 않느냐’는 공격이었다.

의원 시절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재야사학계의 주장에 따라 ‘동북아역사지도 사업’과 ‘하버드대 한국고대사 프로젝트’를 무산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도 후보자는 “동북아역사지도사업에 8년 간 44억원이 들어갔는데, 중국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역사왜곡에 충실히 대응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었고 그것을 지적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도 후보자는 또 “정치가 역사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하고서야 공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표어처럼 역사는 역사학 전공자들의 전유물일까?

하민석 효성병원 응급실 진료과장과 지원스님. 사진=이재표 기자

◇약은 약사에게 역사는 강단사학자에게?

도대체 ‘유사사학’이란 무엇일까. ‘유사(類似)’가 비슷하다는 뜻이니 사학과 비슷한 사학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속뜻은 비슷해도 진짜는 아닌 가짜사학, 즉 ‘사이비’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가짜사학이 있다면 진짜사학도 있을 터다.

유사사학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집단은 대학 강단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강단(講壇)사학자’들이다. 대학에서 석사도 받고 박사도 받은 이들이 ‘학위도 없이 책 몇 권 읽고 소설 같은 역사를 지어내는 재야 사학’이라는 취지에서 유사사학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다.

반면 유사사학자들은 자신들의 사학을 ‘민족사학’이라고 주장한다. 민족사학자들에게 강단사학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의해 양성된 친일사학, 식민사학에 불과하며 청산의 대상일 뿐이다.

문제는 도종환 장관이 청문회를 통과한 후에도 이 논란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은 6월26일자 1167호에서 ‘사이비 역사의 역습’이라는 표지이야기로 유사사학에 대해 다뤘다. ‘돌 맞기를 각오하고 할 말은 하겠다’는 취지였는데,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거꾸로 ‘유사사학’에 대해 짱돌을 던지는 기획이었다.

길윤형 한겨레21 편집장은 ‘국뽕 삼각연대’라는 표현을 썼다. ‘국뽕’은 국수주의를 이용해 국민들의 정신을 마비시키는 것이라는데, 나치즘과 뿌리를 같이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소설가 이문영은 한겨레21에서 “유사사학 계보에서 빠질 수 없는 이유립, 문정창 등이 일제에 부역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근대사학과 강단사학의 거두인 이병도의 친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논란의 책 <한(환)단고기>도 위서가 확실하고, 이 책이 대중적으로 출간된 시점도 전두환 정권이 ‘민족과 국가’라는 개념으로 국민의 의식을 지배하려한 시점과 일치한다는 것이 한겨레21의 주장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한(환)단고기’를 맹신하는 부류를 일컫는 ‘환빠’다.
 

◇대학은 100% 강단사학자만 양성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물론 곰이 여자로 변해 아들을 낳지는 않았겠지만 단군은 실존인물일까, 가상의 인물일까. 고조선이라는 나라는 국가의 틀을 갖추었던 것일까?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이병도는 정통사학자고 중국 랴오둥에 있었다고 주장한 정인보나 신채호 같은 이들은 사이비사학자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대사는 어차피 1차 사료와 고고학적 증거가 불충분한 만큼, 함부로 단정하기 보다는 유연한 사고와 열린 토론과 오랜 검증이 필요한 분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 자르듯이 서로를 잘라내니 평행선을 달리는 것이다. 누가 더 할 말이 많을까? 발언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유사사학(민족사학) 진영일 것이다.

주변에서 유사사학자들을 찾아보았다. 어렵지 않게 두 사람을 찾아낼 수 있었다. 대표적인 민족사학단체인 ‘미래로가는바른역사협의회(미사협, 회장 허성관 전 행정자치부‧해양수산부 장관)’ 고문인 한지원스님(청주 옥산 한국사 주지, 전 청주불교방송 사장)과 하민석 청주 효성병원 응급실 진료과장이었다. 이들은 평소 자신의 SNS 등을 통해 고대사와 관련한 자신들의 견해를 아낌없이(?) 펼쳐왔다.

추석연휴가 시작될 무렵 이 두 사람을 한 자리에 불러냈다. 청주라는 공간에서 같은 사관(史觀)으로 활동 중임에도 두 사람은 초면이었다. 당연히 두 사람은 역사 전공자가 아니다.

“아니, 두 분은 그렇다지만 왜, 대한민국 강단에는 민족사학자가 없는 겁니까?” 우문이었다. 곧 하민석 과장의 현답이 돌아왔다.

“학교에서 민족사학을 가르쳐야 민족사학자가 나오죠? 학위는 그들이 주는 거잖아요. 청주에서 민족사학에 관심이 있는 20여명이 함께 모이며 요청이 있는 중고등학교에 가서 특강을 합니다. 깊은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래서 사학과에 가는 아이도 있습니다. 올해도 한 친구가 제주대 사학과에 갔어요. 입학 전까지도 자주 연락을 했죠. 그런데 4월이 되니까 연락을 끊더라고요. 이게 현실입니다.”
 

◇식민사관에 동해물과 백두산이 없다?

우리 고대국가를 세운 세력들이 한반도 정착민이 아닐 것이라는 가설은 대개의 강단사학자들도 인정한다. 바이칼 부근에 있는 부랴트공화국과 우리의 샤머니즘이 유사하고 남방의 농경언어도 우리말과 공통점이 많다.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의 왕비 허황옥은 인도 아유타에서 왔다고 한다. 그렇다고 고대 한국이 드넓은 대륙을 지배했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인 게 아닐까?

국가란 군대와 조세 등 통치가 미쳐야하는데 그 옛날에 그런 지배력이 가능했겠냐는 것이다. 실제로 판타지에 가까운 고대사를 주장하는 재야사학자들이 있으며, 이들이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에서 ‘국뽕’ 수준의 주장을 펼쳤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들의 선조가 그렇게 광활한 고토를 가졌다며 그걸 다 빼앗기고 한반도 갇힌 후손들은 자괴감에 빠져야 한다. 공교롭게도 전두환 정권이 비슷한 취지로 벌인 역사문화운동의 이름은 ‘국풍(國風)’이었다. 하민석 과장은 ‘땅덩어리는 껍데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고대 한국의 영토가 광활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그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요. 땅덩어리는 포장지고 그걸 뜯으면 우리 선조들의 정신세계가 나옵니다. 10대에 한(환)단고기를 읽고 우리민족의 뿌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최근에는 1주일에 한 번씩, 2년 동안 같이 한단고기를 읽고 연구하는 모임도 가졌습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애국가가 시작되는데 동해 대신 일본해가 부각되고, 백두산도 빼앗길 판입니다.”

지원스님이 말을 이었다.

“민족사학을 유사사학으로 매도하고 군부독재, 반공이데올로기에 연결시키려고 하는데, 국정교과서 만들고 상해임시정부를 부정하고 광복절 대신 건국절 만들려고 하는 세력들의 뿌리가 친일사학 아닌가요? 나는 촛불집회 때 광화문에서 동국대 장계황(행정대학원, 영토학자) 교수를 만나면서 민족사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어요. 일본은 해양영토를 넓히기 위해 독도를 넘보고, 중국은 북한이 붕괴되는 상황을 고려해 동북공정을 펼치고 있는데 친일사학자들은 도통 관심이 없으니….”
 

한민족역사대학원대학 설립의 주체들. 왼쪽 세 번째부터 한지원, 심백강, 이덕일 공동추진위원장.

◇서기 6000년 전에도 청동기문명 존재

메소포타미아 남쪽 수메르문명도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국뽕’이란 말도 나온 것이다. 그렇게 치자면 지원스님과 하민석 과장은 국뽕이 아닌 게 분명하다. 이들의 주장은 인류문명의 시원은 바이칼에 있고 거기에서 한반도 쪽으로 이동해 온 사람들이 세운 나라가 있으니 환웅의 ‘신시배달국’이라는 것이다. 신시배달은 고조선 이전의 나라다.

이후 곰을 토템으로 하는 부족과의 결합이 고조선 건국의 ‘단군신화’를 낳은 것이고 ‘단군’은 사람의 아니라 통치자의 관직이라는 얘기다. 하민석 과장은 강단사학자들이 발굴을 통한 실증사학을 주장하는데 일본사학이야 말로 가짜 유물을 묻고, 광개토대왕 비문을 고친 사이비라고 주장했다.

“만리장성 동쪽에서 중국의 황하문명보다 훨씬 앞선 ‘홍산문명’이 발굴됐잖아요. 기존 사학을 기준으로 하면 신석기시대에요. 그런데 발달한 청동기문명입니다. 동이족 양식인 적석총과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됐죠. 기원 6000년 전에도 청동기문명이 있었다는 얘깁니다.”

지원스님은 강단사학의 조직적인 세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대학원대학(석‧박사 과정만 둔 대학)이 필요하다고 했다. 미사협은 지원스님과 이덕일 한가람역사연구소장,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을 공동추진위원장을 맡겨 ‘한민족역사대학원대학’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극우재단인 사사카와 재단이 한국 역사학자들을 대학원 시절부터 후원하고 뉴라이트 역사운동에도 돈을 댔습니다. (가칭)한민족역사대학원대학은 역사와 영토, 문화 등 다양한 부문에서 우리의 얼을 살리고 바른 역사를 정립함으로써 사대주의를 배척하고 식민사관을 뿌리 뽑아 바른 역사를 미래 세대에게 넘겨주기 위해 만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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