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불의, 암과 싸우는 이용마 기자의 당부
세상의 불의, 암과 싸우는 이용마 기자의 당부
  • 박진희
  • 승인 2017.11.10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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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이용마, 창비

<CEO의 서재>

MBC 파업이 두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거리로 나온 노조의 절박한 투쟁 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용마 기자. 몇 달 전 지인을 통해 이용마기자의 안부를 전해 들었다. 그가 복막암 판정을 받고 투병중인데 너무 야위어서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복막암. 나는 그 말이 너무나 생소해서 그게 어디에 생기는 암이냐고 몇 번이나 되물었었다. 이름조차 낯선 병을 진단받았을 때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동글동글하고 강단 있어 보이는 이용마 기자의 야윈 모습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복수가 차오르고 고통에 허덕이는 그의 모습을 떠올릴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영화 <공범자들> 영상 속에서 여전히 건강하고 힘찬 그의 모습을 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병이 왜 생기는지 정확하게 설명할 순 없겠지만 너무 힘들게 세상과 부딪혀서 이런 일이 생긴 것 같았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나는 같은 환자의 입장에서 그를 응원했고,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그가 전하는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병마가 그를 괴롭히지 않길 진심으로 기도했었다.

나와 같은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전해졌던 것일까. 아픔을 이겨내며 쓴 글이 세상에 나왔다. 이용마 기자는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앞으로의 인생행로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는 뼛속까지 기자인걸까. 여느 아버지의 훈계나 당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야기들을 전해준다.

나의 꿈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너희들이 앞으로 무엇을 하든 우리는 공동체를 떠나 살 수 없다. 그 공동체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나의 인생도 의미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는 이용마 기자의 투병소식과 함께 출생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겪은 일과 그 속에 담겨있는 세상의 불합리한 문제점을 담고 있는 책이다. 요즘은 잘 묻지도 않는 호적이나 본적 같은 개인사에도 지역주의 감정은 스며들어 있었고,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는 입시 제도와 그에 따른 교육제도의 문제도 이야기한다.

그는 대학시절 시위를 하며 우리 사회의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많은 학자와 역사 속 인물들의 말을 공부하며 마침내 꿈을 꾸게 된다. 그의 꿈은 우리 사회를 더욱 자유롭고 평등하게 만드는 것, 그러면서도 인간미가 넘치는 사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마침내 기자의 길에 들어섰지만 기자의 길도 쉽지만은 않았다. 학연의 이유로, 정부나 기업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불합리한 일을 겪기도 했다. 기획했던 보도가 전혀 방송되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리고 결국 정권에 입맛에 맞지 않는 언론인들을 쫓아내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그런 불합리에 맞서 그는 무려 2000일이나 싸워왔다.

누구나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상식이 상식대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을 원한다. 그러나 그런 세상을 불평만 할 줄 알지 어디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런 불합리한 불평등이 해고와 같은 큰 사건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매일 출근하기 위해 이용하는 지하철역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자녀가 태어나 출생신고를 하는 서류에서도 알게 모르게 우리는 불합리한 세상을 마주할 수 있다.

우리는 정의가 바로 세워진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작은 불평등이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것을 먼저 의식해야 할 것이다. 이용마 기자는 자신의 삶 속에서 드러난 불합리한 일들을 보여주었지만 정작 그가 말하고 싶었던 건 나의 삶에 스며들어있는 아주 작은 불평등을 끄집어내자는 것이 아니었을까.

책 제목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는 많은 걸 버리고 세상과 부딪혀왔던 이용마 기자가 우리에게 남기는 마지막 부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는 누구나 겪을 수 있던 일들이고, 모두가 의식하고 노력해야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아픈 몸을 돌보며 끝까지 해내고 싶었던 꿈,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기자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 내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그의 꿈이자 결국 우리 사회의 꿈인 정의가 넘쳐나는 세상을 위해 이제는 우리가 나서야 할 때이다.

청주 꿈꾸는책방에서 디자인 팀장으로 근무한다. 남편인 정도선 점장과 매번 “이 책을 진열해야 해!” “아니야 이 책을 진열해야 해!”라고 티격태격하면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남편과 함께 세계여행의 기록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 거야>를 썼고 아름다운 청주에 녹아들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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