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 이유있는 성장 배경은 '도전'
셀트리온, 이유있는 성장 배경은 '도전'
  • 박상철 기자
  • 승인 2017.11.23 1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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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엄청나다. 시가총액 26조 9000억원. 코스피 시장 7위 규모. 이 화려한 성적표의 주인공은 서정진 회장이 이끄는 셀트리온이다. 1991년 설립돼 2005년 코스닥시장에 상장됐으며 단백질 의약품의 연구·개발 및 제조를 주요 사업으로 하는 기업으로 코스닥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입지전적 인물로 꼽히는 서 회장은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다. 1983년 삼성전기에 입사해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한국생산성본부, 대우그룹 등을 거쳐 2002년 바이오시밀러 전문기업인 셀트리온을 창업했다. 공학도 출신으로 제약에는 문외한이었던 그는 바이오산업의 가능성 하나만을 보고 창업을 결심했고, 세계 최초로 항체바이오시밀러라는 신시장을 개척해냈다.

이렇게 잘나가는 기업 셀트리온의 성장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서 회장의 열정과 도전정신이라고 모두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창업 초기 서 회장은 장례·상조 사업에 관심을 가졌다. 직접 관에 들어가서 누워보기도 하는 등 열정은 넘쳤지만 사업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야채 수입 사업도 시작했지만 수입 과정에서 야채가 모두 상해버리는 바람에 사업을 접었다.

서 회장은 포기도 좌절도 하지 않았다. 우연히 생명공학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세계적인 생명공학 회사 ‘제넨텍’이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무작정 날아갔다. 뭐라도 직접 보고 듣고 물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던 그는 197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바루크 블럼버그 박사와 토마스 메리건 스탠퍼드대 에이즈연구소장을 만났다. 서 회장은 이들로부터 ‘바이오시밀러’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

당시 국제 제약 시장 규모가 1000조. 한국 제약시장 규모는 고작 8조. 서 회장은 무릎을 탁 쳤다. ‘바로 이거다’ 부랴부랴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생명공학 회사로 방향을 잡고 2002년 넥솔을 중심으로 ‘셀트리온 신화’의 서막이 올랐다.

최근 한 포럼 강연에서 서 회장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새로운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입니다. 가장 큰 위기는 아무 변화도 없는 거죠. 가장 중요한 건 도전, 나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겁니다”라며 도전을 강조했다.

현재 대한민국 취업준비생 10명 중 4명이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많은 이들은 공무원을 '정년과 저녁이 보장되는 삶'으로 받아들인다. 최고의 직장으로 친다는 말이다. 이런 인식의 변화는 구세대는 비정규직, 희망퇴직을 겪었고 젊은 세대는 청년실업의 공포를 맛본 것에 기인한 것이다. 청년의 희망이 창업이나 과학자 등 도전적인 직업이 아니라 '공무원이 꿈'인 나라라는 것은 참으로 슬픈 현실이다.

빌 게이츠는 19세 때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했고 스티브 잡스는 21세 때 세계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 '애플'을 만들었다. 마크 저커버그는 대학교 2학년이던 19세 때 페이스북을 생각해냈다.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는 20세에 왕이 돼 그리스, 페리스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청년의 도전 정신 없이는 한국의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청년들이 메마른 도전 정신를 일깨우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 청년들이 마음 놓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 실패가 부끄럽지 않는 나라, 청년들이 마음껏 도전을 펼칠 수 있는 나라가 조성돼야 한다.

연탄가게 아들로 중학생 때까지 시골 동네에서 연탄배달을 했고 대학교 때는 택시 기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을 이어온 서 회장. 그의 뜨거운 열정과 도전 정신이야말로 지금 자리에 설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월급쟁이에서 자수성가 사업가로 주식 부호 3위에 오른 서정진 회장은 같은 입지전적인 인물이 우리 지역에서 또 한번 나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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