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마차를 탄 파에톤의 추락
태양마차를 탄 파에톤의 추락
  • 박한규
  • 승인 2017.12.29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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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거대한 운석의 추락에서 신화가 비롯됐을 터

<별 보는 어른아이>

쌍둥이자리 유성우.

2017년 12월14일 밤, 하늘에서는 우주쇼가 펼쳐졌다. 바로 쌍둥이자리 유성우가 주인공이다. 유성우는 한꺼번에 많은 유성(별똥별)들이 비처럼 쏟아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유성은 혜성이 우주 공간을 지나가며 흘린 부스러기들이 지구 중력에 끌려 들어오면서 대기 중에서 불타면서 빛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유성은 크기가 작기 때문에 공기와 마찰을 일으키며 불타 없어지지만, 큰 유성은 불에 타도 없어지지 않고 땅에 떨어지게 되는데 이를 운석이라고 한다. 유성우를 찍은 사진을 보면 한 점을 중심으로 퍼지듯 떨어지는데 이 중심점을 ‘복사점’이라고 한다. 유성우의 이름은 복사점이 자리한 별자리 이름을 따다 붙인다. 쌍둥이자리 유성우란 복사점이 쌍둥이자리에 있다는 뜻이다.

유성우는 혜성의 공전궤도를 지구가 지나면서 생기게 되므로 유성우마다 모(母)혜성이 있기 마련인데, 쌍둥이자리 유성우의 모혜성은 소행성 3200 파에톤(Phaeton)이다. 아폴로 소행성 그룹에 속하며 태양에 가장 가까운 공전궤도를 그리는 소행성이다. 매년 12월 중순이 되면 3200 파에톤이 지나면서 우주에 떨어뜨린 부스러기들이 환상적인 우주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파에톤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파에톤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양신 헬리오스(Helios)와 바다요정 클리메네(Clymene)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자신을 놀리는 친구들에게 태양신의 아들임을 증명하기 위해 파에톤은 아버지를 만나 태양마차를 하루만 빌려 줄 것을 간청한다.

3200 phaeton. 사진=염범석 천체사진가

그러나 운전에 서툰 파에톤의 태양마차는 궤도를 잃고 땅에서 너무 가까운 높이를 오르락내리락하게 된다. 이 때문에 리비아는 사막으로 변하고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피부가 까맣게 타고 만다. 하늘에서 파에톤을 지켜보던 제우스는 지상의 참사를 더는 외면하지 못하고 번개를 던져 파에톤을 에리다누스 강물로 떨어뜨리게 된다. 훗날, 아르고호(Argo boat) 선원들이 에리다누스 강을 거슬러 올라갈 때 까지도 파에톤이 떨어진 자리에서 불꽃연기가 피어올랐다고 한다.

지난 글에서도 보았듯이 신화가 신화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파에톤 역시 그러하다. 그리스 시인들이나 만지작거렸을 이야기를 대 철학자 플라톤이 저서 “Timaeos”에서 언급했다. “태양신의 아들 파에톤은…하늘을 가로지르는 물체로…불꽃을 뿜으며 땅에서 부서지는 것……이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라 진실이며…” 라고. 다른 책 “Phaedrus”에서는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지만 후대에 인상 깊게 전달할 목적으로 짜임새 있는 이야기(신화)로 만들게 된 것이라고 부연하고 있다.

하늘을 가로지르며 불꽃을 일으키는 물체는 바로 유성을 말하고, 땅에 떨어져 부서진다는 말은 운석이 떨어지는 걸 가리킨다. 즉, 파에톤은 대기 중에서 불타지 않고 땅에 떨어졌고 훗날 아르고호 선원들도 볼 수 있었을 정도의 후유증을 남기는 거대한 운석이었던 것이다.

떨어지는 파에톤은 “…머리를 땅으로 하고 머리카락과 옷자락은 베일처럼 늘어뜨리고…”라고 묘사되었다. 큰 별똥별이 떨어질 때는 밝은 머리 부분이 먼저 아래로 향하게 되고 꼬리는 밝고 기인 유성흔을 남기게 되는데 마치 베일처럼 넓게 퍼지는 모양이다. 마치 파에톤의 추락을 떠올리게 된다.

떨어지는 파에톤 조각상.

기원전 4세기 그리스 탐험가 Pytheas가 오지 탐험 중 분화구(크레이터)를 발견했는데, 원주민들이 ‘태양이 떨어져 죽은 무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908년 시베리아 퉁구스카 운석이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제2의 태양’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퉁구스카 운석의 충격은 히로시마 원자폭탄과 맞먹는 에너지로 1,000km 떨어진 곳에서도 폭발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참고로 파에톤(Phaeton)은 ‘빛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파에톤 신화를 생각해 보건대, 우리나라의 ‘대별왕 소별왕’, ‘태양을 쏜 예’ 신화에 나오는 활로 태양을 떨어뜨리는 이야기도 어쩌면 유성과 운석에 대한 기록일지도 모른다.

신화와 역사가 잘 버무려졌다면 이제 과학이라는 양념을 쳐야 할 때다. 파에톤이 태양의 아들이라고 불릴 만큼 거대한 운석이었다면 크레이터가 남아있을 것이다. 황당하지만 당연하게도 파에톤 크레이터를 찾기 위해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선 과학자들이 있었다.

파에톤에 관한 역사와 신화를 통해 얻은 단서들을 간추려 보면, 파에톤은 아침에 마차를 타고 출발했고(해가 뜨는 방향 즉, 동쪽이나 동남쪽에서 날아왔고), 번개를 맞아 부서졌으며(공중 폭발했으며), 땅에 떨어질 때 대지의 여신이 놀라 일어나 거대한 파도가 일어났고(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했고), 검은 연기가 하루 종일 하늘을 덮어 해가 보이지 않았고(고온으로 인하여 주위 물질들이 기화되고), 물이 끓어올랐다(분화구에는 온천처럼 물이 끓게 된다). 이 정도의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거대 운석이 만든 크레이터를 조사한 결과, 후보에 오른 몇몇을 소개한다.

우선 트로이 전쟁이 있었던 기원전 12세기에 일식이 있었는데, 일식과 함께 엔케(Enke) 혜성의 유성이 떨어졌다고도 하고, 독일 남부 바바리아 지방의 Chiemgau 크레이터 또는 핀란드 에스토니아 지방의 사레마(Saameraa) 섬에 떨어진 Kaali 크레이터가 파에톤의 흔적이라고도 한다. 이들 크레이터들은 분화구 지름만 해도 100m~600m나 되는 크기로 퉁구스카 운석 충돌 이상의 재앙을 가져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운석이 떨어진 지역에는 태양이 떨어져 죽었다는 신화가 어김없이 남아있다. 이들 크레이터 발생 시기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데다 파에톤 운석이 언제 떨어졌는지에 대한 자료마저 부족하기 때문에 어느 크레이터가 파에톤이 떨어진 자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역사와 신화가 과학으로 부활하여 새 생명을 잉태하는 순간은 분명 짜릿한 경험일 듯하다.

청주가 고향인 박한규는 흉부외과 전문의다. 지금은 부산의 한 마을 공동체 주민으로 살면서 공동육아로 40대를 보내고 있다.박한규 원장은 키만큼 커다란 망원경으로 별보기를 좋아하는 어른아이다. 또 신화와 역사 그리고 과학을 넘나들며 엿보는 재미에 빠진 일탈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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