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여인들의 한(恨), 몸짓으로 달래다
옛 여인들의 한(恨), 몸짓으로 달래다
  • 박상철 기자
  • 승인 2018.01.10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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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H무용단’, ‘모란한국무용연구회’ 두 단체 이끄는 성민주 무용가
굴곡진 역사의 중심에선 여인들의 한(恨) 무용으로 시민에게 전달
성민주 무용가

드라마 ‘황진이’에서 마치 한 마리의 나비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한복을 입고 춤을 추는 여인들. 영화 ‘왕의 남자’에서 갖가지 가면을 쓰고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신명나는 춤을 추던 공길과 장생. 이처럼 한국의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과거 속박 받던 여인들의 한을 몸으로 표현하는 이가 있다.

성민주 무용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초등학교 3학년 오전 체조시간 다른 학생들보다 동작이 크고 유연했던 그를 담임 선생님은 눈여겨봤다. 선생님은 학교를 방문한 그의 부모님께 ‘한국무용을 가르쳐보는 게 어떻겠냐?’ 권유했고 그렇게 성 무용가는 무용에 첫 발을 내딛게 됐다.

무대에 울려 퍼지는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몸짓이 무용이 된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고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어린 소녀가 꿈은 순탄치 않았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학업에 집중하라는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힌 것이다. 포기하기 싫었다. 아니 더 하고 싶은 오기가 생겼다. 그때부터 매일 부모님께 편지를 써 설득에 나섰다.

성 무용가의 진심어린 마음이 통했다. 우여곡절 끝에 부모님은 그가 무용을 할 수 있게 허락해주셨다. 단 청주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청주에서 활동해야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었다. 흔쾌히 받아들였다. 어디든 무용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당시는 가슴 벅찼다.

작품 그리움을 그리다에서 화려한 안무를 펼치는 성민주 무용가

부푼 꿈을 안고 청주대 무용학과에 진학했다. 무용가가 되기 위해 연습실 마치 집인 마냥 떠나지 않았다. 연습실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꿈을 위해 대학 4년간 그의 이마의 땀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렇게 그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당당히 청주시립무용단에 1기로 입단 하게 됐다.

본격적인 무용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사회초년생으로 일본 돗토리 시에 시립국악단과 함께 첫 공연을 펼쳤다. 그날의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말하는 성 무용가. 단원들과 함께 음악에 몸을 맡기고 몸짓으로 관객과 소통했다. 당시 공연장에 울려 퍼진 박수소리는 생생히 기억나 아직도 그의 심장을 뛰게 한다.

바쁜 활동에 눈 깜짝할 새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는 생각했다. ‘조금 더 넓은 곳에서 더 많은 안무와 더불어 제작 또한 배우고 싶다’고. 망설이지 않았다. 시립무용단을 관두는 초강수를 두고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작품 '그리움을 그리다' 공연 모습

서울에서 4년간의 시간은 그를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게 해준 밑거름이 된 시간이라고 회상했다. 무용극을 주로 했던 그는 당시 너무도 많은 것을 배웠다. 김천홍 선생님으로부터 국가문화재 제39호 처용무도 전수받을 정도로 배움의 끈도 놓지 않았고 열정도 가득 찼다.

많은 것을 배운 성 무용가는 부모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고향 청주로 다시 내려와 청주대 무용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학위까지 취득하며 한국무용에 대한 열정을 이어나갔다. 대학원 재학 시절 자신이 기획한 무용을 하고 싶어 그는 창작 무용을 전문으로 하는 단체 ‘CDH무용단’과 전통 춤을 계승하는 목적으로 ‘모란한국무용연구회’를 만들었다.

10년째 두 단체 대표로 이끌고 있는 그에게는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보통 60분 공연을 위해 1년의 준비 기간을 거친다고 한다. 음악, 미술, 의상, 소품, 대본, 안무까지 전반적인 것들을 성 대표 혼자 기획해야하기에 심적·육체적으로 힘든 경우가 많다며 지난 시간을 되돌아봤다.

'그리움을 그리다' 공연 후 단원들과 기념 사진을 찍는 모습

“최근 들어 내가 왜 무용가가 됐는지 가만히 생각해 봤어요. 대중 예술이 아닌 순수 미술이라 일반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거든요. 하지만 저희 공연은 종합예술이다 보니 재밌고 화려하고 한번 본 사람들은 큰 감동을 받았다고들 말해요.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아질 거라 보고 무용으로 감동을 전할 수 있는 공연을 계속 제작하고 싶어요”라며 밝게 웃었다.

그러면서 “2016년 ‘저-달빛’이라는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명성황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데 기존 작품과는 달리 명성황후를 죽인 자를 찾아나서는 복수극으로 우리나라 독립운동까지도 이어지는 이야기로 큰 사랑을 받았어요. 여기에 제 목표가 있어요. 굴곡진 역사의 중심에선 여인들의 한 많은 이야기를 계속해 다루고 싶어요. 그들이 풀지 못한 한을 무용으로 일반 시민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게 제 임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며 앞으로 계획을 전했다.

쉬운 길이 아닌 다소 힘들 길을 택한 성 무용가. 그 힘들었던 시간이 앞으로 전통 무용을 지키고 발전시키는데 자양분이 될 것이라며 오늘도 연습실 거울 앞에 선다.

'그리움을 그리다' 공연이 진행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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