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공론 연명의료결정법, 전면 재검토해야"
"탁상공론 연명의료결정법, 전면 재검토해야"
  • 박상철 기자
  • 승인 2018.02.13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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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시행 고작 일주일, 의료계 현장의 목소리 충분히 담지 못해 문제점 드러나

당하는 죽음이 아닌 평안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지난 2월 4일부터 시행됐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호전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환자가 사망에 임박할 경우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어, 임공호흡기 착용 등의 연명 치료를 중단해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하지만 시행 일주일이 지난 지금. 이를 두고서 의료계에서는 이 법의 현실성과 실효성에 대해서 우려를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충북에서는 유일한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기관인 충북대병원 한정호 내과교수(대외협력실장)를 만나 실제 의료현장에서 느끼는 ‘연명의료결정법’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한정호 충북대병원 내과 교수

한 교수는 “의료 현장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전형적인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게다가 제대로 준비와 홍보도 되지 않은 상태서 법이 시행돼 현장과 불협화음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고 입을 뗐다.

그러면서 “환자가 작성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이하 의향서)와 담당의사가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계획서)가 등록되는 연명의료시스템에 문제가 많다. 응급 환자가 발생하면 의료진은 이 시스템에 접속해 환자가 연명의료를 원하는지, 원치 않는지 등을 확인해야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복잡한 절차에 한숨을 내쉬었다.

급박한 상황에 의료진이 연명의료 시스템을 확인하지 않고 의향서나 계획서 작성한 환자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한 의료진은 형사처벌 대상이 돼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이 같은 이유로 신규 계획서를 받지 않겠다는 의료기관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어 한 교수 “더 큰 문제는 심장이 멎는 등 생사를 오가는 환자를 두고 시스템에 접속하기 위해 병원 공인인증서, 의사 공인인증서로 접속한 뒤 환자 주민번호 뒷자리까지 입력해야 한다. 접속에만 20~30분이 걸려 일 분 일 초가 중요한 위급 환자를 방치하는 꼴이 된다”고 비판했다.

실제 이런 문제로 서울대병원은 정보처리시스템 사용에 어려움이 따르자 이용을 포기하고 우편 접수로 대신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허술한 시스템으로는 임종기 환자 관련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의향서나 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은 한 사람이 살아생전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밝힌 임종기 환자인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는 가족 2명 이상이 평소 환자가 연명의료에 관해 충분한 기간 동안 일관된 의사표시를 했다는 전술을 담당의사외 전문의가 확인하면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둘 중 한명이 반대하면 환자 가족 전체 직계존비속에 해당되는 사람 모두의 동의가 필요하다. 직계존비속 가족 모두가 가족관계증서를 통해 가족임을 증명하고 동의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무한 연명치료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게다가 “만일 해외에 있는 가족의 동의를 구할 경우 동의한다는 녹취로도 가능하지만 그 녹취가 그 사람 본인이 작성한 것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야말로 허점투성이다.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법의 원천적인 문제에 대해 한 교수는 “애초 말기 암환자에만 적용 되던 법이 시간이 지나면서 임종기 환자까지로 범위가 확대된 것 자체가 잘못됐다. 의료진이 임종기 환자를 판단은 상당히 어렵다. 임종이 임박한 상태가 일주일 혹은 몇 시간 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또 “의사 2명의 판단에 결정된다고는 하나 함께 동의하는 것도 어렵고 임종 시간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 부분은 추후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고 말했다.

끝으로 연명의료결정법의 문제 해결 방법에 대한 한 교수는 “우선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미 관련법이 잘 정착된 미국, 일본, 유럽처럼 의사와 환자가 보호자가 임종기라 판단되면 외국은 보호자와 의사가 당시 상황에 현장에서 최상의 판단 내리는 것처럼 우리도 그런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었다.

이어 “이 법의 취지는 좋고 정말 필요한 법이다. 불필요한 오랜 연장 치료를 할 필요 없어 의료진도 정신적이나 신체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고, 환자는 필요 없는 고통 덜 수 있고, 가족은 고가의 의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등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좀 더 현실에 맞는 법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시행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5~6년 전부터 논의가 돼 올해 첫 발을 내딛은 ‘연명의료결정법’, 시범운영 기간 중 조용히 있다가 법 시행이 되자 이곳저곳에서 문제점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보다 능동적인 보건행정을 펼쳐 의료현장의 목소리가 많이 반영되지 못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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