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대출신, 태권도 사범의 '거침없이 하이킥'
국대출신, 태권도 사범의 '거침없이 하이킥'
  • 박상철 기자
  • 승인 2018.02.14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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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5학년부터 시작한 태권도...겨루기보다 태권도 알리는 시범단 매력에 반해
국가대표 시범단 활약, 다수 대회 휩쓸어...이제는 시범단 후학양성 힘쓰고파
2013 러시아 스포츠어코드 월드컴벳게임대회에 참석해 멋진 발차기를 선보이고 있는 정지수 사범

비교 불가능한 화려한 발차기와 쉴 새 없이 몰아치며 통쾌하게 격파되는 격파시범, 절도 있고 아름다운 품새 등을 감상할 수 있는 국가대표 태권도 시범단의 ‘넌버벌 퍼포먼스’.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한 태권도 창작공연으로써 대사 없이 그들의 몸짓에 집중하다보면 어느새 태권도 매력에 흠뻑 빠져든다.

태권도 보급과 매년 세계 각국에서 순회시범을 통해 한국 문화를 알리는 민간 외교관 역할 담당하고 있는 국가대표 태권도 시범단에 2년 간 몸담은 이가 있다. 올해 나이 27세. 아직은 혈기 왕성한 나이지만 이제는 왼쪽가슴 태극마크보다는 후학양성이라는 책임감을 어깨에 지고 구슬땀을 흘리는 정지수 사범을 만나보자.

울산에서 태어나 자린 정 사범은 6살부터 태권도를 시작했다. 여느 친구들보다 마르고 약한 체형에 내성적인 성격까지. 이 모든 것들을 고치기 위해 취미로 시작한 태권도가 지금 그에게 분신이나 다름없다.

정지수 사범이 중3 당시 태권도 시범의 매력에 빠지는 계기가 된 멕시코에 열린 도장연합대회

취미로 시작한 운동에 점점 매력은 느낀 그는 초5학년부터는 대회에도 출전하며 본격적으로 태권도 인으로 성장해갔다. 첫 대회에 대해 그는 “생생히 기억난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연습한 것들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고 결과 역시도 좋지 않았다”며 그날을 회상했다.

이후 매년 대회에 참석하며 경험을 쌓아갔다. 그러던 초 6학년 때 출전한 대회에서 밴턴급 초등부분에서 1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거둔다.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어요. 이런 맛에 운동을 한다는 걸 느꼈어요. 특히 아버지가 직접 대회장까지 와 주셔서 감동은 배가 됐어요”라고 당시 벅찬 감동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에게 뜻밖에 걸림돌이 생겼다. 운동만 하던 탓에 공부는 뒷전. 그를 지켜보던 부모님은 아들 걱정이 앞섰다. 염려했던 신체는 건강해졌고 성격도 많이 활발해졌다. 이제는 일반 학생들처럼 공부를 하라는 부모님의 권유는 차마 뿌리칠 수 없었다.

2014년 우즈 (아시아 선수권대회 시범을 펼치는 모습

일반 학생들처럼 공부에 집중했지만 근질근질한 발은 주체할 수 없었다. 수시로 태권도 학원을 다니며 운동을 즐기던 어느 날. 당시 그의 나이 중3. 도장연합대회 차 멕시코 대회에 참여하게 될 기회가 주어졌다. 그 대회가 그를 지금이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만들었다.

주로 태권도에서 겨루기만 해왔던 그에게 당시 대회에서 접한 태권도 시범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누군가와 겨루는 것이 아니라 화려한 기술을 알리고 태권도의 진정한 모습을 표현하는 시범의 매력에 빠져 그날부터 영상과 미디어를 통해 독학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잘못된 자세나 세세한 기술 교정을 받을 수 없었지만 매일 매일 도장을 찾아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그렇게 그는 태권도 선수들에게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고 소문난 우석대 태권도학과에 진학하게 됐다.

정지수 사범이 우석대 소속으로 세계태권도한마당 1위를 한 뒤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태권도학과에 진학해서도 그는 시범을 택했다. 이후 ‘우석대시범단’ 소속으로 수많은 시범대회에 출전을 통해 기술과 경험을 몸소 배웠다. 그러길 1년. 충주에서 열린 전국대회에 참여해 첫 시범으로 전국 2위를 수상했다. 이때부터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우연히 그의 눈을 스쳐 지나간 한 포스터. 국가대표 태권도 시범단 모집 포스터였다.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꿈구는 국가대표. 망설일 필요 없이 바로 세계태권도연맹이 주최하는 오디션에 참가했다. 결과는 한 번에 합격. 이후 2013~2014년 2년간 국선위양은 물론 태권도를 알리기 위해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에 물었다. 국가대표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인지. 그는 “제가 국가대표로 활약할 당시 올림픽에서 태권도가 정식 종목에서 빠질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어요. 당시 시범단은 스위스, 멕시코, 러시아 등 세계 21개국을 돌며 태권도 홍보에 박차를 가했고, 그 덕에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잔류할 수 있게 됐다”며 뿌듯해 했다.

제1야전군사령부소속으로 2016세계태권도한마당에 참여한 정 사범

이후에도 국가대표로서 많은 대회에 참석해 좋은 성적을 거뒀다. 매년 열리는 세계대회인 ‘세계태권도한마당’에서 내리 2년 3등과 1등을 거머쥐며 자타공인 시범단에서 실력있는 인물로 입지를 다져나갔다. 당시 시범단으로 우승을 해도 군 면제가 되지 않았던 탓에 2015년 4월 국가대표를 잠시 포기하고 군입대를 하게 됐다.

입대한 군에서도 군 태권도 시범단으로 활약하며, 국가대표 당시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녹슬지 않은 실력으로 군에서 참여한 대회에서 상을 휩쓸 정도 였다. 그렇게 화려한 전역을 한 그에게 큰 의식 변화가 찾아왔다. “이제는 제가 잘해서 상을 받기보다 제가 가르친 사람이 상을 받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태권도 시범 지도자의 길을 택하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현재 그의 나이 27살. 하지만 태권도 경력은 20년이 훌쩍 넘는다. 그리고 2년간의 국가대표 생활로 얻는 다양한 경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금은 태권도 시험학원에서 사범 생활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태권도 경력만 20년을 자랑하는 정 사범의 중3 당시 대회후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

“화려한 발차기를 보고 누군가의 박수를 받는다는 건 어디서도 쉽게 느낄 수 없는 경험이에요. 관중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힘차게 도약해 공기를 가르는 힘찬 발차기의 매력을 이제는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어요”

이제는 태권도장의 사각 매트가 너무 편해 잠이 올 정도라 말하는 정 사범. 흙이나 아스팔트로 포장된 땅보다 매트 위에 있는 시간이 더 많고 더 행복하다가 말하는 그가 이제는 교육자로 어떠한 미래를 펼칠 지 한 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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