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될 수 있지만 아무나 기자가 된다면…
누구나 될 수 있지만 아무나 기자가 된다면…
  • 이재표 기자, 한재학, 나지영 홍성신문 기자
  • 승인 2018.02.19 06: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가 되기 위해 中1 중퇴…19살에 풀뿌리신문 기자된 ‘나지영’
9년간의 대학생활, 1년간의 세계여행…짧았던, 기자생활 ‘한재학’
나지영 홍성신문 기자와 한재학 충북대 도시공학과 대학원 생. 사진=이재표 기자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누구나 자신만의 미디어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카메라나 중계차 등 고가의 장비 없이도 1인 생방송을 가능케 했다. 나 홀로 방송국이 고비용 저효율의 공중파마저 능가하기 시작했다. 2017년 7월 청주 수해 때 떠내려간 것은 이른바 기성언론의 자만과 허위였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언론의 난립과 낮아진 진입장벽이다. 누구나 언론사입네, 회사를 차릴 수 있고 아무나 기자로 채용해 글을 쓰게 한다. 1997년의 IMF 구제금융이 남긴 심각한 폐해 중 하나가 지역언론에 ‘저임금 구조’를 형성한 것이다. ‘한때는 언론고시’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지역신문 입사도 ‘좁은 문’을 통과해야 했는데, 월급이 쥐꼬리만 해지면서 3D업종이 됐다.

기자가 되는 게 목적인 시대는 흘러갔다.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기자는 아니라는 것을 기자가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사람들은 ‘기자+쓰레기’의 합성어인 ‘기레기’를 툭하면 내뱉는다. 생채기투성이인 삶은 아리고 쓰리다.

아무나 기자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청춘들이 있다. 이들이 기자가 되기 몸부림쳤던 시간들을 응시했던 적도 있다. 한 사람은 벌써 전직 기자가 됐고 한 사람은 입사 3개월 차 풋내기다. 이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했다. 옴니버스 기사를 쓰기로 작정하고 만난 것은 아니었다.

즐겁게 담소하다가 상호 인터뷰를 즉석에서 제안했다. 2018년 2월17일에, 세종경제뉴스 사무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 이재표 기자

 

한재학이 쓰다- ‘99년생 나지영’

나지영 씨는 1999년 6월11일 청주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1학년이 됐을 때 학교에서 앞으로 계획을 묻는 숙제를 받았다. 의례적인 숙제였다. 모두들 가볍게 제출했다. 그 나이 때 꿈과 바람은 계속 바뀌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나지영 씨는 섣불리 꿈을 그리는 과정의 빈칸을 채우지 못했다. 그러고 생각했다. 앞으로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무엇을 좋아하는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지영 씨는 어릴 때부터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신비로워 했고 궁금해 했다. 어떻게 저렇게 열심히 할 수 있는지 무엇 때문에 저렇게 열심히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학교 밖으로 나가 그 사람들의 삶을 보고 싶었고 묻고 싶었다. 그렇게 나지영 씨는 숙제가 아닌 진짜 계획을 종이에 적었다. 적고 선생님과 부모님께 보이며 학교 밖에서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모두 반대했다. 어른들은 하나같이 학교라는 안전장치를 활용하라고 말했다. 나지영씨의 생각은 달랐다. 그에게 학교는 안전장치가 아닌 성적으로 친구들을 차별하고 압박하는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된 3월에 시작한 나지영 씨의 숙제는 방학 직전인 6월에 끝났다. 중학교를 자퇴한 것이다. 그의 나이 14세였다.

자퇴와 동시에 어린이 기자단을 시작했다.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었으며 검정고시 준비를 병행했다. 시간은 많았지만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복지관과 법원뿐이었다. 오전에는 법원에 가서 공개재판을 방청했다. 첫 사건은 살인사건이었다. 그가 생각했던 살인 사건 재판과 그가 실제로 접한 살인 사건 재판은 달랐다. 나지영 씨는 그 과정에서 생략되어 있는 많은 것들을 사람들에게 글로 전하고 싶었다. 그렇게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이듬해인 15세 4월 중등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후 고등학교 진학준비와 고등검정고시를 병행하면서 글을 썼다. 진학준비를 하면서 그해 7월에 있는 고등검정고시를 봤다. 합격했다. 그 다음해에는 한양사이버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그의 나이 16세였다.

대학은 온라인 강좌로 이루어졌고 특강이 있을 때마다 학교를 갔다. 대학을 다니면서 ‘청주마실’ 신문에 학생기자로 글을 썼다. 취재원들은 마을에 거주하는 어르신들, 시각장애인, 가출청소년이었다.

사이버대학을 졸업하고 충북대학교 사회학과 3학년으로 편입했다. 편입 전에 어떤 과정과 성취를 위해 공부했다면 이 시기에는 공부 본연의 재미를 느꼈다. 공강 때와 주말에는 중부매일에 대학생 기자로 지역사회 현안과 이슈 기사를 썼다. 방학 때는 몸이 아파 장기 입원한 친구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며 봉사활동을 했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보내다 졸업반 12월에 19살의 나이로 충남의 홍성군의 지역신문인 홍성신문 기자가 됐다. 그는 지금 3개월차 기자다. 1989년에 창간한 홍성신문은 우리나라 풀뿌리지역신문의 효시 격이다. 그는 마을공동체에 대한 관심 때문에 홍성신문을 찾아갔으며, 자취생활을 하며, 자신의 승용차로 홍성을 누비면서 취재하고 글을 쓴다.

그는 홍성신문에서 법원, 검찰청, 교육청을 드나든다. 그는 앞으로 현장르포를 쓰고 싶다고 한다. 또한 사건을 다각도로 취재 해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싶다고 한다. 열아홉 살에 기자로 사회에 발 디딘 나지영 씨의 삶은 다른 스무 살과는 조금 다르다. 앞으로 그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된다.
 

나지영이 쓰다- 나를 찾아가는 청년 한재학

‘방향이 맞다면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는 신념 아래,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청년이 있다. 한재학 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나답게 살기’를 실천하고 있는 청년 중 한명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듯 보이는 ‘나답게 살기’, 하지만 현실이라는 족쇄에 끌려 다니는 청년세대에게 ‘나답게 살기’란 이상적인 얘기일지도 모른다. 그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인 그는 어떻게 자신의 인생의 해답을 찾아나갔을까? 그가 살아온 삶의 과정에 잠시 동행해보기로 했다.

“제 인생의 방향을 잡고 전진한 시기는 20대였어요. 정치외교학과 3학년을 마친 뒤, 1년간 세계여행을 했죠. 열악한 환경에 일하는 일용직을 선택해 일하며 1년간 돈을 모았고, 모은 돈으로 개발도상국 10개국을 여행했어요. 개발도상국을 여행한 이유는 개도국에서 삶을 영위해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 현장을 보기 위해서였어요. 저에겐 소중한 경험이었죠.”

“여행을 마친 후에는 다시 한국에 돌아와 기자직을 본격적으로 준비했어요. 하지만 취업은 순탄치 않았죠. 나중에는 홀로 서울로 올라가 낮에는 언론고시 스터디를 하고 밤에는 고깃집에서 일하며 언론사 입사를 준비했어요”

9년 간 대학을 다닌 그의 20대는 치열했다. 그의 치열함은 결코 ‘남들과 같아지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는 사회가 정한 기준에 맞춘 삶이 아닌 ‘한재학의 삶’을 살았다. 그것이 그가 살아나가는 방법이었다. 물론, 그 역시 고민의 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방송기자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한 인터넷 언론에서 석 달 간 기자생활을 하다가 꿈을 접었다.

“기자직을 그만둔 후, 개인적으로 고민이 많았던 시기가 있었어요. 심리상담도 받고,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도 했죠. 공무원 준비는 부모님의 권유였어요. 하지만 결국에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그만두고 다시 제가 좋아하는 일로 돌아갔죠.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좋은 정치인의 기준’을 세워 그 기준에 부합하는 10명의 현역 지방의원에게 연락을 걸어 만남을 요청했어요.”

그의 노력은 실제 한 의원과의 만남으로까지 이어졌고, 그는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것이 ‘자생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원하는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전문성’이었다. 그래서 그는 도시공학과에 진학하여 차별화된 전문분야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여행을 하다 보니 한 나라의 중심인 도시가 곧 그 나라의 경쟁력이더라고요. 그러다가 문득 지역정치인 중에 도시공학을 공부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하는 물음을 갖게 되었고 실제로 찾아봤어요. 아이러니하게도 도시가 경쟁력이라고 외치는 정치인들은 많았지만 정작 도시공학의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사람은 없더라고요. 그 현실이 대학원을 도시공학과에 진학한 이유였어요”

대학원 졸업을 앞둔 그는 졸업 후 정당 정책보좌관에 지원하여 차근차근 역량을 키워나갈 예정이다. 인간의 기본권이 보장받는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 목표라는 그. 그의 꿈과 신념이 지역정치권의 희망의 불씨가 되어 지역사회를 밝히길 기대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