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랏이여, 나에게 휴양을 달랏!
달랏이여, 나에게 휴양을 달랏!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8.02.23 1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중 18~23도, 베트남 최고의 휴양도시 달랏 <북극한파 피한기>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테라코타호텔. 사진=이재표 기자

추위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세상에 듣도 보도 못했던 북극한파가 몰아쳤던 2018년 정월, 대한민국은 추위와 싸우느라 힘겨웠다. 아파트라고는 없던 시절, 겨울에도 마당에서 세수하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 머리카락에 고드름이 달리고 문고리에 쩍쩍 손이 달라붙는 추위를 경험했던 이 땅의 장년층 이상도 “세상에 이런 추위는 없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투옌렘 호숫가에 있는 테라코타 호텔 별채.

따뜻한 남쪽나라로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던 1월31일, 청주국제공항에서 베트남 달랏으로 가는 비엣젯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청주 ‘로얄관광’이 개설한 동계시즌 청주-달랏 전세기 마지막 편이었다. 제비가 강남 가는 길을 따라 5시간여를 비행해 베트남 달랏공항에 내렸다.

*테라코타호텔 옆 투옌람 호수에서 윤동주의 시를 읽었다. 사진=이재표 기자

말이 났으니 말이지 추위뿐만 아니라 더위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다고, 추위를 피해서 찾아간 베트남에서 더위를 먹고 헉헉거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랑비앙산 정상. 화분 속에서 잠든 개. 개부럽!

하지만 달랏에서는 추위도 더위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달랏은 북위 11도로 적도에 가깝지만 해발 1500m안팎의 랑비앙(람비엔) 고원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사계절 구분 없이 연중기온은 18~23도다. 또 숲과 호수가 많아 늘 쾌적하다.

*해발 1950m 랑비앙산으로 올라가는 지프. 사진=이재표 기자

달랏이란 도시를 조성한 이들은 프랑스 사람들이다. 온대에서 온 식민지배자들에게 베트남의 무더위는 힘겨웠으리라. 이들은 20세기 초, 자신들의 휴양지로 달랏을 개발했다. 그래서 언덕 위에는 프랑스식 빌라가 즐비하다. 시내 한복판에는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둘레 약 5km의 스언흐엉 호수가 있다.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달랏역.

달랏-무이네 일정 중 달랏에서 머문 곳은 ‘테라코타호텔 앤 리조트달랏’이다. 테라코타는 달랏 시내에서 차량으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투옌람 호수를 끼고 있다. 넓은 대지에 2,3층 규모로 지어진 호텔은 보는 것만으로도 평화롭다. 아침이나 저녁나절 호텔과 호수 주변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을 느낄 수 있을 만큼 풍광이 아름답다.

*달랏역의 클래식기차는 손님이 차면 17km 왕복코스를 운행한다.

이번 여행길에는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1955년 정음사판 영인본 등 시집 몇 권과 함께했다. 아침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새벽 투옌람 호수를 산책하다가 평평한 돌 위의 물기를 닦고 윤동주의 ‘자화상’을 읽는 시간은 경건했다. 호수를 따라 걷다 보면 호숫가에 별채들이 눈에 들어온다. 내 생에 다시 이곳에 올 날이 있을지 모르지만 다음에 올 때는 저 별채에 묵어보리라, 결심한다.

다탄라 폭포로 이동하는 무동력 모노레일. 속도가 엄청나다.

낮에는 달랏의 지붕이라는 랑비앙산에 오른다. 정상은 2167m지만 베트남전에서 사용했다고 해도 믿을 만큼 낡은 군용 지프를 타고 1950m 랑비앙 휴게소까지 오른다. 휴게소 대형화분 위에 늙은 개가 오수를 즐긴다. 사람들이 몰려와도 꿈쩍 않는 개가 갑(甲)이다.

*깨진 도자기 조각으로 장식한 린푸억 사원. 사진=이재표 기자

혼자서 운전하는 무동력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가는 다탄라 폭포와, 베트남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의 여름별장을 걷노라면 햇볕과 바람, 온도만으로도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실감난다.

바오다이 여름별장으로 가는 길.

달랏에 가서 빼놓지 말아야할 것 중에 하나가 ‘클래식 기차’를 타는 것이다. 달랏이 워낙 고원지대이다 보니 사이공(현 호치민)에서 달랏까지 기찻길을 놓는 것도 고난이도의 공사였다. 1903년부터 1938년까지 거금과 공을 들여 만든 달랏역과 철도노선은 전쟁이 치열했던 1972년 운행이 중단되고 말았다.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의 여름별장. 사진=이재표 기자

지금은 국가유적이 된 달랏역에는 그 옛날 기차들이 서있어서 ‘사진 찍기’ 명소로 제격이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다. 손님이 차면 기적을 울리며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기차가 갈 수 있는 거리는 왕복 17km, 그 회기역에 ‘도자기절’이라고 부르는 린푸억(靈福)사원이 있다. 왜 도자기절인가 했더니 건물이나 탑의 표면을 빤할 틈 없이 도자기 조각을 붙여 장식한 것에 혀가 내둘러진다.

달랏야시장. 밤참, 주전부리를 먹으러 나온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저녁에는 한국식당 ‘가을’에 들렀다. 건물외관이며 내부 장식이 오래된 프랑스풍 건물인데, 이 식당에 대해서는 주의보를 내려야겠다. ‘집밥’이 생각날 만큼 맛이 있어서 여기가 한국인가, 베트남인가 싶으니 말이다.

야시장에서 꼬치구이와 맥주.

밤에 한가한 베트남 남자의 일상을 사는데는 단돈 5000원이면 충분하다. 중심가 스언흐엉 호수 옆 야시장에는 먹을거리, 볼거리가 진진하다. 꼬마의자가 놓인 좌판 주점에 앉아 꼬치와 베트남 맥주를 시킨다. 30cm 길쭉한 꼬치가 한 개에 500원, 맥주는 700원이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바람이 한국에서 가져온 피곤과 맥주 네 캔에 달아오르는 얼굴을 간질인다.

달랏이여, 나에게 휴양을 달랏!

청주공항에서 이륙 준비 중인 달랏행 비엣젯.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