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쟁이들의 낭만, 메시에 마라톤
별쟁이들의 낭만, 메시에 마라톤
  • 박한규
  • 승인 2018.03.24 0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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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 메시에가 만든 110개 목록을 밤 새워 관찰
메시에 마라톤을 하고 있는 필자와 동료들을 스케치한 작품. 그림=조강욱
3월17~18일, 산청 별아띠 천문대 마당에서 열린 경남 메시에 마라톤. 사람 키만 한 망원경들이 사열하고 있다. 전쟁 같은 밤을 치른 뒤 고요한 승전 소식을 기다리는 듯하다.

얼마 전 아인슈타인 이후 최고의 천체물리학자로 칭송받던 스티븐 호킹 박사가 지상세계를 떠나 별이 되었다. 루게릭병을 앓고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76년을 살면서 우주를 탐구한 슬픈 낭만적 천재였다. 우주를 탐하는 자들은 닿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탐한 대가를 작든 크든 나름대로 치르며 살 수 밖에 없다.

별을 보기 위해서는 비를 피해야 함은 물론이고 구름도 없고 달빛도 없는 어두운 밤을 택하고서도 되도록 도시를 두어 시간은 족히 벗어난 뒤라야 관측이 가능하다. 여기에다 밤을 새고 출근을 해야 하니 넉넉하게 말해도 자기 가학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별쟁이들은 관측지에서 만나 초면에 열심히 인사를 해도 상대를 제대로 알 도리가 없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그저 목소리나 이름으로 상대를 가늠할 따름이다. 슬픈 낭만적 취미라 하겠다.

이런 별쟁이들에게도 1년에 한번 흥겨운 잔치가 열린다. 매년 3월 중순에서 4월 초에 열리는 ‘메시에 마라톤’이다. 이날은 대회 참가자나 구경꾼의 경계도 따로 없다. 밤새 110개의 천체를 관측하고 기록하면서 노는 마당인 것이다. 올해도 3월17~18일, 1박 2일로 전국에서 메시에 마라톤이 동시에 열렸다.

봄철 대표적인 별자리에 대해 글을 쓸 요량이었으나 메시에 마라톤을 소개하고 알리고 싶어 부득이 사자자리 이야기는 다음을 기약해야 하겠다.

메시에 마라톤은 1970년대 미국에서 몇몇 천문인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룻밤 사이에 관측 대상 110개를 처음으로 모두 정복한 것은 1985년 봄의 일이다. 초저녁 해가 떨어지면서부터 다음날 아침 동이 틀 때까지 꼬박 하룻밤을 새가며 전쟁처럼 관측을 이어가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와 끈기, 체력을 필요로 한다.

마치 마라톤과 비슷하기 때문에 ‘메시에 마라톤’이라고 칭하는 듯하다. 하룻밤 사이에 메시에를 정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고무된 아마추어 천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회를 개최하며 별쟁이들만의 잔치를 펼친 이래로 지금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M13. 헤라클레스 자리에 있는 구상성단이다. 타란툴라 거미를 닮았다. 관측한 망원경과 배율 및 날씨, 방위에 대한 기록이 적혀 있다. 그림=박한규

메시에(Charles Messier)는 18세기 프랑스 천문학자였다. 18세기 천문학자들은 새로운 혜성을 찾아 탐구하는 것을 큰 명예로 여겼다. 아직 천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밤하늘에 뿌옇게 빛나는 성단, 성운, 은하, 초신성 잔해들은 혜성 사냥꾼들에게 혜성과 혼돈을 초래할 뿐 이름도 정체도 불분명한 의미 없는 천체에 지나지 않았다.

메시에 자신도 유명한 혜성 사냥꾼으로서 혼란을 야기하는 천체들의 지도를 만들어 혜성 관측을 용이하게 하고자 했다. 몇몇의 천문학자들이 가세하면서 혜성과 헛갈리는 110개의 천체 목록을 작성하여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에는 목록의 창안자 메시에를 기리기 위해 알파벳 M을 숫자 앞에 붙여 M1~M110 이라 부르고 있다.

망원경을 비롯한 관측기구가 부실하던 시대에 발견된 천체들이기에 비교적 밝은 대상들이다. 아마추어 천문인들이 관측, 탐구하기에 안성맞춤이라 하겠다. 메시에 대상을 모두 정복한 다음에는 허셜 400, Caldwell 목록, NGC, IC 같은 비교적 어두운 대상들이 기다리고 있다. 초보는 찾기에 급급하고 고수는 찬찬히 뜯어보고 째려보고 크게 보고 작게 보며 밤을 새도 부족함이 없으니, 초보에서부터 고수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즐거이 관측할 수 있는 대상이 바로 110개의 메시에 목록인 것이다.

메시에가 프랑스 사람이었기 때문에 대체로 북반구에서 관찰 가능한 천체가 많이 포함되었고, 혜성과 헛갈리는 천체를 선별하려는 목적이었기에 고루 퍼져 있지 않고 구역에 따라 많고 적음이 일정하지 않다.

메시에 목록 천체는 사방이 트인 개활지에서 3월 중순에서 4월 초순 사이, 달빛이 없는 초승이나 그믐 언저리에 한해서 110개 모두를 관측할 수 있다. 한 달이 채 안 되는 기간이다 보니 달이 밝은 시기를 빼면 보름이 빠듯하다. 게다가 현대인의 생활패턴을 고려할 때, 많아야 주말 두 번의 기회 밖에 얻을 수 없다.

재미있는 것은 맑은 하늘 보다는 구름이 적당히 끼었을 때가 더 재미있다는 것이다. 요즘 망원경은 아마추어라도 메시에가 이용하던 망원경보다 훌륭하기 때문에 맑은 날은 110개 모두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구름이 끼었을 때가 오히려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시키는 듯하다. 필자도 두어 번 참가해서 50개를 채우지 못한 대회의 기억이 있다. 한 개 차이로 2등을 했지만 구름 사이를 비집고(일명 구멍치기) 찾는 재미를 무엇과 견줄 수 있겠는가?

별쟁이들의 낭만, 메시에 마라톤 언저리를 서성이는 밤. 메시에와 스티븐 호킹의 별을 찾아 망원경을 하늘에 드리운다.

청주가 고향인 박한규는 흉부외과 전문의다. 지금은 부산의 한 마을 공동체 주민으로 살면서 공동육아로 40대를 보내고 있다.박한규 원장은 키만큼 커다란 망원경으로 별보기를 좋아하는 어른아이다. 또 신화와 역사 그리고 과학을 넘나들며 엿보는 재미에 빠진 일탈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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