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어의 이시필, 음식으로 전하다
숙종 어의 이시필, 음식으로 전하다
  • 김정희 원장
  • 승인 2018.03.30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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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음식에서 종의 요리, 외국음식까지…꼼꼼한 기록

<맛있는 역사이야기>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1720년 7월, 45년이 넘게 재위했던 숙종이 죽음을 맞이하고 장희빈의 아들 경종이 즉위한다.

숙종은 환국정치의 창시자로 집권당파가 바뀔 때마다 보복성 숙청으로 피바람이 몰아쳤다. 강력한 왕권으로 조선의 반세기를 호령했던 그는 살아서 신하들에게 존호까지 받게 되었다. 신하들에게 그는 두려운 왕이었고 충성심을 보이기 위한 갖가지 노력들이 펼쳐졌다.

숙종과 경종 때의 어의 이시필(李時弼, 1657~1724)은 내의원 도제조인 이이명을 보좌하여 숙종의 병을 치료하고 음식을 올리는 일을 담당했던 인물로 『소문사설(謏聞事說)』을 저술한다. 중국 사행과 중국서적 열람 등 왕의 병을 치료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얻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소문사설, ‘들은 것은 적지만 그래도 아는 대로 말한다’라는 뜻의 제목처럼 다양한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식치방(食治方)편에는 음식을 다스리는 법, 28종의 음식을 만드는 법을 담고 있다. 주목할 것은 궁중에서 일하는 숙수나 양반가의 노비에게 배운 음식도 있고, 중국을 다녀오면서 직접 맛본 음식이나 전해들은 일본 음식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식치방은 다른 한문 조리서처럼 중국의 조리서를 인용하여 전재한 것이 아니고, 당시의 솜씨있는 여러 조리사의 비법을 적어 놓았다. 이를테면, 숙수 박이돌(朴二乭)이 만든 우병(芋餠), 돌이와 학득(學得) 등이 만든 황자계혼돈(黃雌鷄餛飩), 민계순의 종 차순이 만든 부어증 (鮒魚蒸), 모로계잡탕(母露鷄雜湯) 등 특이한 조리법을 소개하였다.

『소문사설』은 환관(宦官)의 집에서 만들고 있던 식혜(食醯)와 지방 명산물인 순창고추장·송도식혜 등을 소개하였고 실제로 경험한 외국 조리법까지 소개하였다. 예를 들면, 계단탕(鷄蛋湯)은 직접 북경에서 먹어본 것에 대하여 기술하였고, 일본의 생선묵과 비슷한 요리로 가마보곶(可麻甫串) 만드는 법을 적어놓았다.

식치방은 단순한 음식의 조리법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당시의 생활사를 담고 있으며, 현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음식이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음이다.

창덕궁 주변 한옥담장 사이의 좁은 골목길을 걷다 발견한 아담한 전시장. 2011년 청주공예비엔날레에 참여했던 김명례 작가의 작업실이다. 그녀는 적고 있다.

"인생의 여정에서 한고비 한고비가 있다고 한다. 꽃이 피고 지고, 또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지듯이... 삶에서 꽃이 만개하는 날들이 계속되어짐을 알고 있다. 오늘 그것이 일상에서 어떤 형태로 오는지 어떤 언어로 나에게 말하는지 나는 오늘도 나의 만개를 상상해본다."

자유로우면서도 단아한 그녀의 그릇에 1720년 환국의 역사를 품고 있는 음식이 담긴다. 평화롭다.

Po-Ching Fang(方柏欽; 대만의 도예가)의 작품에 가마보곶을 올리며 왕의 사랑을 받고 싶었던 이시필의 떨림이 전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의 공예에 담긴 1720년의 숙종을 위한 음식. 이제 그 음식은 단순한 왕의 음식이 아니라 과거와 소통하는, 그리고 공예가 담고 있는 작가의 철학을 풀어주는 어떤 언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음식역사문화창의학교 진지박물관 대표다.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했으며, 고(古)조리서를 바탕으로 궁중음식 등 전통음식을 재현하고 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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