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보면 쇼트트랙이 떠오른다
선거를 보면 쇼트트랙이 떠오른다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8.04.18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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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링은 재미있고 썰매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평창올림픽을 통해 알게 됐다. 그동안 동계스포츠에서는 김연아 선수가 홀로 우뚝했던 피겨와 한국선수들의 독무대였던 쇼트트랙 정도가 우리의 자존심을 세워준 종목이었다. 이번 평창에서 설상·빙상·슬라이딩을 가리지 않고 17개의 메달이 나온 것은 기념하고 자축할 일이다.

쇼트트랙에서는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따내 세계 최강임을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평가는 ‘아쉽지만 잘 싸웠다’였다. 부딪히고 미끄러지거나 실격으로 놓친 메달이 적잖았기 때문이다. 여자 1000m 결승에서는 금·은을 다투던 한국 선수끼리 충돌했다.

쇼트트랙은 400m의 트랙을 질주하며 속도를 재는 스피드스케이팅 달리, 111m 남짓한 트랙에서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위로 우승자를 가린다. △상대를 견제하는 팀플레이 △순간적인 기회포착 △폭발적인 스퍼트 등은 사실 한국 사람들이 거의 모든 영역에서 가진 우성(優性)이다.

문제는 재미요소인 아슬아슬함이 오히려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너무 자주 부딪히고 어이없게 넘어지며, 방해를 당한 것 같은데 거꾸로 실격되는 경우도 많다는 얘기다. 조마조마함이 허망함으로 끝나거나 분노로 귀결되면서 차라리 분초(分秒)를 재는 스피드스케이팅이 시원하고 깔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즘 선거판을 보면서 쇼트트랙이 떠오른다. 선거는 4년마다 돌아오지만 예비후보 등록시점부터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된다. 얼마나 득표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1등으로 결승점을 통과하느냐만 의미가 있다. △팀(黨)플레이 △순간적인 기회포착 △폭발적인 스퍼트가 중요하다.

이것만이 아니다. ‘부딪히고 미끄러지고 실격당하는’ 일이 잦다는 점에서 쇼트트랙과 선거는 판박이다. 선거에 나서는 정치인이 실격당하는 일은 선거가 거듭될수록 급증하는 추세다. 부적격자들의 출마가 점점 더 늘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그만큼 선거법의 그물이 촘촘해졌고 유권자들의 시선도 엄격해졌다.

이번 선거에는 ‘미투(#Me too)’라고 하는 엄정한 잣대가 하나 더 추가됐다. 서울시장, 충남지사에 출사표를 던졌던 정봉주, 박수현이 미투 앞에 무릎을 꿇었다. 충북에서도 13년 전, 32년 전의 과거가 소환돼 도마 위에 올랐다. 미투의 본질은 권력과 위계에 의한 성적인 폭력을 정의의 힘으로 단죄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투는 법적인 공소시효와는 무관하다’는 것에 사회적으로 합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투의 본질과는 다른 폭로 역시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된다. 미투 폭로로 드러난 팩트(fact)에 대한 사실관계 여부에 대해 참견하려는 게 아니다. 나아가 비록 권력과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 아니라 단순히 완력에 의한 성폭력이라도 피해자가 입은 상처는 반드시 치유돼야 하며,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가 용서의 출발점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우리는 이번 6·13선거를 끝내놓고 ‘미투로 달라진 세상’에 대해 조금 더 차분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할 것 같다. 미투는 순간적인 유행이 아니라 미투가 필요 없는 세상이 올 때까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선거에 나서려는 자는 스스로에게 준엄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이어 정당은 유권자가 믿고 찍을 수 있게 ‘공천(公薦)’해야 한다. 언론도 사명감을 갖고 검증해야 한다. 당과 언론이 걸러주지 않으면 유권자들은 논란이 된 정치인의 말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로 투표해야 하니 말이다.

아슬아슬한 선거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본다. 진짜 미투는 후보자등록이 끝난 다음에 터져 나올 거라는 흉흉한 소문이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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