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에 나오는 ‘오로라 기록은 진짜’
삼국사기에 나오는 ‘오로라 기록은 진짜’
  • 박한규
  • 승인 2018.04.21 0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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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입자가 대기의 하층부를 뚫지 못하는 ‘붉은 오로라’
고려에서 조선까지 700회 이상 관측, 2003년에도 촬영
인디언 티피와 오두막 위 하늘로 오로라가 뻗어가고 있다. 사진=박한규

“오로라 보고 싶다”

아내의 뜬금없는 말 한마디에 우리 세 식구는 무작정 비행기표를 끊었다. 오로라 경험이 이미 한 차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행기표를 끊던 때의 떨림이 기사를 쓰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남아있는 것에 살짝 놀라고 있다. 오로라 여행을 다녀온 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기에 기억 저 너머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북위 62도, 체감 기온 영하 35도. 모든 것이 하얗게 얼어붙은 동토의 밤, 오로라만이 정적을 깨고 바람에 일렁이는 커튼 자락처럼 검은 하늘에 일렁인다.

‘별덕후’가 아닐 지라도 오로라는 모든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에 있을 것이다. 오로라가 천문현상인지 기상현상인지 아니면 무지개의 한 종류인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비행기표를 끊을 용기만 있으면 된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는 북유럽이나 알라스카 아니면 캐나다 같은 고위도 지역에 가야한다. 북위 60~80도 사이에 형성되는 오로라 고리(aurora oval) 지역에 가야 오로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로라는 태양풍과 함께 밀려온 높은 에너지의 입자들이 지자기 극지방을 중심으로 끌려 들어오면서 50~400km 상공의 대기 입자들과 부딪히며 발생하는 빛이다.

태양 입자들의 에너지가 낮은 경우에는 대기 하층부까지 뚫지 못하고 상층부 대기 입자들과 충돌하며 붉은 빛을 내지만, 태양 활동이 활발하여 태양 입자들의 에너지가 큰 경우에는 하층 대기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비교적 낮은 곳의 입자들과 부딪히며 초록빛을 내게 된다. 오로라는 태양 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흑점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밤에 불빛 같은 붉은 기운(赤氣)이 서북쪽, 동북쪽, 서쪽으로 퍼져서 뻗쳤다가 새벽에 사라졌다”

2003년 10월 30일, 해양과학기술원 원영인 박사가 보현산 천문대에서 촬영한 적색 오로라. 조선시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관측한 유일한 오로라 기록이다.

증보문헌비고 상위고에 나타난 기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로라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2003년 10월 해양과학기술원 원영인 박사가 보현산 천문대에서 오로라를 촬영하는데 성공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로라가 보이다니? 조작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삼국시대 이래로 고려, 조선 모두에서 오로라를 관측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고구려 동명성왕 3년 7월의 기록을 필두로 삼국과 통일신라에서 12번,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1747년)까지 모두 700번이 넘는 오로라 관측 기록이 남아있다. 붉은 기운이라는 의미의 적기(赤氣)라고 오로라를 표현한 기록으로 볼 때 붉은색 오로라 관측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태양 활동이 활발한 경우라야 오로라 관측이 가능했음을 짐작케 한다. 또한 단순한 사실 기록을 넘어 색깔, 강도, 모양, 방향 따위를 세세하게 적어 사료로써 가치가 높다. 오로라뿐만 아니라 태양의 흑점도 삼국시대부터 관측 기록하고 있었다. 서양이 17세기 들어서 제대로 된 흑점 관측이 시작된 점을 상기하면 우리 관측 천문학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시대 기록을 토대로 조사한 결과, 흑점은 10.5년 단주기와 98년의 장주기를, 오로라는 10년 주기를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태양 활동이 11년의 단주기와 60~90년의 장주기를 갖는다는 현대 천문학 이론과 일치함을 보여준다.

지자기 북극의 이동을 보여준다. 오로라 관측이 활발했던 고려 11~15세기에 지자기 북극이 시베리아 고위도 지방을 통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지자기 북극이 캐나다에 있는 오늘날보다 오로라 고리가 한반도에 가까이 있음을 알 게 해 준다. 역사적으로 가장 강력했던 1770년 9월의 오로라 폭풍은 인도네시아 티모르제도(남위 20도)를 지나던 쿡(Cook) 선장의 배에서도 관측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조선시대 이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오로라 관측이 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오로라는 지구자기장의 극지방을 중심으로 20~30도 떨어진 오로라 고리 지역에서 잘 보이는데, 지자기 극지방이 이동하면서 오로라 고리도 따라 이동하게 된다. 2015년의 지자기 북극은 북위 80.37도, 서경 72.62도에 위치하지만, 고려시대에는 북위 70도~80도, 동경 90도~180도 사이에 위치했고 개성의 지자기 위도가 48도~58도였기 때문에 태양활동이 활발하다면 한반도에서도 충분히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었다.

지난 세기 관측을 보면 지자기 북극의 이동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앞으로 50년이 지나면 다시 시베리아 지역으로 지자기 북극이 돌아올 수 도 있다. 비행기표를 끊지 않고도 창문 너머로 초록빛 오로라를 볼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는 말이다.

“얘들아 불 끄고 창문 열어. 오로라 보자~”

오로라가 보고픈 아내가 TV 앞에 앉아 있는 아이들과 다투는 저녁. 마당에는 캐나다에서 오로라 여행을 온 사람들도 있을 테고. 케스트 하우스라도 하나 운영해 볼까? 상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샛노란 오로라 폭풍이 4월 하늘에 리본처럼 너울대리라.

청주가 고향인 박한규는 흉부외과 전문의다. 지금은 부산의 한 마을 공동체 주민으로 살면서 공동육아로 40대를 보내고 있다.박한규 원장은 키만큼 커다란 망원경으로 별보기를 좋아하는 어른아이다. 또 신화와 역사 그리고 과학을 넘나들며 엿보는 재미에 빠진 일탈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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