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별자리에는 부엌도, 변소도 있다
동양의 별자리에는 부엌도, 변소도 있다
  • 박한규
  • 승인 2018.05.1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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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인도·중국의 별자리, 다른 듯 닮은 ‘사촌지간’

<별보는 어른아이>

여름 밤, 희미한 은하수를 찾느라 눈을 가늘게 뜨고 밤하늘을 쳐다보다 문득, 우리나라에도 별자리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경이로운 파노라마는 서양, 정확히는 그리스 로마 시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별자리다.

이리저리 뒤지다 보니 조선 개국 즈음에 만들어진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돌에 새긴 천문도가 있다. 고구려 별자리를 바탕으로 14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12세기에 중국에서 돌에 새긴 ‘소주천문도’와 비슷하다. 우리나라, 일본, 중국은 밤하늘을 바라보는 관점이 같았던 듯하다. 두 개의 석각천문도와 일본 기토라 고분에 새겨진 별자리들을 보면 그 이름과 모양이 같음을 알 수 있다.

동양 천문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중국 주나라가 무너지고 어지러운 춘추시대를 거쳐 공자로 대표되는 백가제자들이 활동하던 전국시대(기원전 5세기~기원전 3세기)에 왕성하게 연구되었다.

전국시대를 통일한 한나라 초기, 어지럽던 사상과 학문의 통일을 꾀하게 된다. 이 때, 천문을 담당하던 관직인 태사령 ‘사마천’을 중심으로 천문 분야를 집대성하여 ‘사기, 천관서’에 기록을 남기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양 천문에 대한 줄거리가 대개 이 때 형성된 것이다.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동양 밤하늘에는 3원(자미원, 태미원, 천시원) 28수와 사신도(동방청룡, 서방백호, 남방주작, 북방현무)가 뿌리가 된다. 자미원에는 북극(천황대제)와 북두칠성(행성의 움직임과 날씨, 천문 일체를 주관하는 별자리)가 있고 태미원에는 행정관리들이 모여 있으며 천시원에는 시장과 평민들의 삶이 아기자기하게 빛나고 있다.

동양의 밤하늘 별자리들을 보면 부엌도 있고, 변소도 있고 심지어 똥도 있다. 하늘과 사람이 하나라는 ‘천인합일’ 사상에 의거하여 지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늘에서도 일어난다고 믿는 것이다. 거꾸로 천문을 잘 읽으면 지상의 일들도 알 수 있다고 믿었다. 하늘을 살피고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 남포시 강서대묘의 고구려 사신도 벽화.

적도 언저리에 위치한 28수(동방7수, 서방7수, 남방7수, 북방7수)는 움직임이 없는 별에 비해 움직임이 관찰되는 별들(행성, 달, 태양)의 이동을 관측하고 그 위치를 정확히 알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별이야 움직임이 없으니 만날 쳐다봐도 만날 그 자리 별 볼 일 없다지만, 행성과 달, 해는 수시로 움직이며 별들 사이를 침범하고 별빛을 가리거나 어둡게 하기에 별 볼 일 있게 만든다. 달, 행성, 혜성 따위가 하늘에 있는 지상의 사물들[별자리]을 어떻게 지나는가에 따라 해당하는 지상의 사물에도 변화가 있다고 믿었기에 이들의 동태를 살피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리하여 동양 천문학은 황제의 학문이었다.

천문학의 속살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동양과 서양 사이에 설왕설래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28수 별자리다. 인도에는 ‘낙샤트라’[Nakshatra] 라고 하는 28개 별자리가 있다. 원래는 27개 별자리였다고 한다. 개수만 같은 게 아니다.

동양(잠시 인도는 동양에서 빼자) 별자리 28수의 시작이 동방청룡의 뿔을 나타내는 ‘각(角)’ 별자리에서 시작하고, 인도 역시 ‘Chitra’ 별자리에서 시작하는데 공교롭게도 두 별자리가 서양 별자리 ‘처녀자리’의 으뜸별인 ‘스피카(Spica)’를 가리킨다.

28수와 낙샤트라 별자리 가운데 9개가 완전 일치하며, 6개는 대부분에서 일치하며, 3개는 일부 별들이 겹친다. 전혀 일치하지 않는 별자리는 10개다. 28개 가운데 15개는 같은 별자리인 것이다. 히말라야 산맥이 있어 가깝지만 왕래가 불가능한 지역이다. 그러나 우연이라기엔 너무 우연적이다. 아라비아 별자리를 보면 우연이란 말이 나오지 않는다.

아라비아 별자리 ‘만질’(Manzil al’-qamar) 또한 28개의 별자리로 구성되며 인도 ‘낙샤트라’와 대부분에서 동일한 별자리를 공유하고 있다. 이들 별자리는 모두 달이 지나가는 ‘백도(달이 지구를 공전하는 길)’ 주변에 있다. 태양을 비롯한 행성들이 모두 달의 길 근처를 움직이기 때문에 달의 길 근처를 지나는 별자리들을 정하고 행성들의 움직임을 알고자 했을 것이다.

가만히 지도를 들여다보니, 히말라야 서쪽으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키르키즈스탄, 타지키스탄),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돌아 인도 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되었음을 알게 된다. 득수가 완벽한 형태로 남아있는 최초의 유물은 기원전 433년경의 ‘증후을묘’의 칠기상자다. 즉, 중국에서 28수는 기원전 5세기 이전에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원전 6세기~기원전 4세기에는 페르시아(이란) 제국과 알렉산더 제국이 이 지역을 지배하면서 남동으로 인도, 북동으로 위구르 자치구와 접하고 있지 않았던가. 중국 학문, 천문의 황금시대인 전국시대가 기원전 5세기~기원전 3세기, 인도와 페르시아, 알렉산더 제국이 접해있던 시기가 기원전 6세기~기원전 4세기, 인도에서 중국으로 불교가 전파된 시기가 기원전 2세기였다. 불교의 전파는 인도와 중국, 서양 사이에 문화, 교역 통로가 이미 존재했음을 역설해 준다.

동양 28수, 인도 낙샤트라, 아라비아 만질. 어느 누가 가장 앞서 있느냐에 대한 논쟁이 뜨거울 것은 자명하다. 아라비아의 만질은 인도에서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이 경쟁에서 바빌로니아가 아라비아가 빠진 자리를 대신한다. 고(古) 바빌로니아는 기원전 18세기까지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며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꽃을 피운 문명이다.

수메르에서 시작된 천문학을 계승했으니 따지기 힘들 만큼 오래된 천문 기원을 가지고 있다. 바빌로니아에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1세기까지 기록된 ‘천문학 일기(Astronomical diaries)’가 전해온다. 32개의 기준별[Normal star]을 정하고 기준별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가를 기록하여 행성들의 움직임을 관측하였다.

이 32개의 기준별과 28수 사이에 일치하는 별자리가 9개나 있다. 교역이 있었다고는 하나 상거래가 중심이었을 것이기에 학문적인 부분은 일부 지식인들이나 탐험가들에 의해 개념이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비슷한 사고 수준에 있던 인류는 유사한 고민을 하였을 것이고, 천문 분야에서도 행성을 보며 어떻게 측정을 할 것인지에 대해 지역에 상관없이 고민을 했을 것이다. 유사한 내용이 유입되면 중심 개념을 남기고 부족한 부분을 기존 개념과 융합시키면서 발전시키고 후대에 전했을 것이다.

바빌로니아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과 인도로 전파되었든, 중국에서 인도를 거쳐 아랍으로 전파되었든, 인도에서 중국과 아랍 지역으로 전파 되었든 밤하늘을 보며 별자리 무늬가 다른 것에 너무 아쉬워 할 일이 아니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모두가 사촌지간인 것이다. 이제 곧 봄이 가고 여름이 다가온다.

오랜 옛날, 28수 가운데 봄(입춘)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던 ‘각’수 별(처녀자리, 스피카)와 ‘대각’ 별자리(목동 자리, 아크투르스)를 대신해 양자리와 오리온자리가 봄이 왔음을 알린다. 하늘에 있는 별들도 시대에 따라 처지가 바뀌듯, 과거 바빌로니아 시절과 지금 중동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처지도 바뀌고 말았다. 이 밤, 시리아에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중년의 사내는 별점 대신 전쟁이 끝나고 옛 영광을 되찾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청주가 고향인 박한규는 흉부외과 전문의다. 지금은 부산의 한 마을 공동체 주민으로 살면서 공동육아로 40대를 보내고 있다.박한규 원장은 키만큼 커다란 망원경으로 별보기를 좋아하는 어른아이다. 또 신화와 역사 그리고 과학을 넘나들며 엿보는 재미에 빠진 일탈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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