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형 같은 선생님, 제자 시련에 울고웃고
늘 형 같은 선생님, 제자 시련에 울고웃고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8.06.21 1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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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호 장학관, 충남 홍성 결성고 제자들과 30여년 ‘사제의 정’
양계장 화재 친구 위해 중·고 동창들 사흘 만에 5000만원 모아
결성고 시절, 제자들과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간 지선호 장학관.

1987년, 27살에 첫 부임한 총각선생님은 한 달 만에 가정을 꾸렸다. 삼일절에 부임하고 식목일에 결혼식을 올렸다. 선생님과 10살 정도 차이 나는 제자들은 선생님을 큰형, 큰오빠처럼 따랐다. 선생님과 제자들은 같이 등산도 다니고 탁구도 쳤다.

학교에서 가까운 선생님의 신혼집은 아이들의 사랑방이었다. 아이들은 모여서 라면도 끓여먹고 감자도 삶아먹었다. 그해 겨울에는 아기가 태어났다. 손꼽아 계산해 보면 두 달쯤 속도위반이었지만 손만 잡고 자도 아기가 생기는 줄 아는 순박한 시골학생들이었다. 아기는 여학생들의 등에 업히기 일쑤였다. 그런데 선생님은 3년 뒤 시‧도간 교류에 따라 고향인 충북으로 전출됐다.

선생님은 공주사범대(현 공주대)를 졸업한 지선호 현 충북도교육청 장학관이다. 학생들은 충남 홍성군 결성고등학교(현 결성공고) 7회 졸업생들이다. 당시 졸업생은 3개 반, 150여명이었다. 최근 페이스북에서 30년을 이어오고 있는 교사와 학생들의 절절한 사연이 보는 이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만들고 있다.

지선호 장학관은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자의 아픔에 가슴이 미어집니다”라며 결성고 제자인 장재운 씨의 양계장에 불이 나서 닭이 폐사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지선호 장학관은 “십시일반 온정을 하나로 모아주는 오랜 친구들이 고맙고, 오히려 못난 스승 걱정할까봐 애써 밝은 목소리로 위로해주니 너무나 고맙구나. 사랑한다. 힘내라 재운아!”라며 글을 마무리했다.

2017년 4월, 지선호 장학관이 장에인 자활사업장 담쟁이국수의 일일점장을 맡았을 때 청주를 찾아온 제자들.

지 장학관이 이렇게 제자들의 소식에 훤한 것은 ‘결성고 7회 동창밴드’에 유일한 교사회원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 장학관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최충수 동창회장은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는 선생님의 그늘에서 컸다.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형님 같은 분이다. 늘 ‘잘 될 거야’라며 긍정을 불어넣어주셨다. 지금도 2,3년에 한 번은 선생님과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지선호 장학관이 ‘십시일반 온정을 모아주고 있다’고 쓴 부분에 대해서도 물었다. 최충수 회장은 “재운이는 잠깐 직장생활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닭도 키우고 농사도 짓는데,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그냥 못 보는 친구다. 어르신들에게도 깍듯하고 친구 빚보증 때문에 수억원을 갚고 있는 중이다. 그런 친구가 어려움을 당하니 모든 친구들이 뜻을 모아 현재까지 5000만원 정도를 모았다”고 설명했다.

시골 동네에서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이 5000만원이라니 귀를 의심할만한 목돈이다. 그것도 사흘 나절 만에 모인 돈이고, 앞으로도 열흘을 더 모은다니 최종 모금액이 얼마나 될 지도 관심사다.

장재운 씨의 안타까운 사연이 올라온 밴드. 이렇게 모금이 시작됐다.

사연인즉 이렇다. 불이 난 것은 일요일인 17일 밤 11시20분이었고 월요일 새벽 2시에 진화됐다. 닭 1만7000수는 모두 폐사했다. 안타까운 소식이 결성고 7회, 결성중 21회 밴드를 통해 전파됐고 그날 오후부터 자발적인 모금이 시작된 것이다.

최충수 회장은 “누구랄 것도 없이 5만원도 내고 10만원도 내고, 심지어는 100만원을 턱 내놓는 친구도 있었다. 재운이가 처음에는 ‘너무 많이 울어서 눈물도 말랐다’고 했는데, 이제는 ‘친구들 때문에 웃음이 나온다. 희망의 생겼다’고 말한다. 선생님(지선호 장학관)도 위로금을 보내주셨다”고 귀띔했다.

장재운 씨가 졸업한 서부초, 결성중, 결성고 동기들은 밤마다 서로 전화를 하며 모금 현황을 체크하고 있다.

지선호 장학관의 페이스북에는 장재운 씨에 대한 격려와, 친구들의 우정을 칭찬하는 공감과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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