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각은 중국집이 아닙니다’에 밀렸어요”
“‘홍성각은 중국집이 아닙니다’에 밀렸어요”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8.06.22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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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청주시 교통체계만 연구하고도 시의원 낙선한 문무창 정의당 후보
세종경제뉴스에 찾아와 자신이 연구한 청주시 교통체계에 대해 설명하는 문무창 정의당 후보. 그는 교통정리 등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6명 중 5등으로 낙선했다. 사진=박상철 기자

“청주시의회에도 교통전문 시의원이 한 명쯤은 필요하다”고 호소한 이가 있었다. 그는 청주시내 열일곱 개 교차로에서 교통정리를 했다. 처음부터 그러자고 작정한 것이 아니라 거리유세를 하다 보니 차량이 밀리는 게 답답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테트리스 게임처럼 차량이 한 대 한 대 쌓이는 데는 3초, 빠져나가는 데는 1.7초에서 2초가 걸린다. 교통흐름이 머릿속에 뻔히 그려지는 상황에서 잘못된 신호체계를 그대로 지켜보자니 속에서 천불이 났다. 가경주공 4단지 앞 삼거리에서 처음 교통정리를 시작했다. 주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다른 정당 선거운동원들도 ‘찍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당선될 줄 철석같이 믿었다. ‘1등일까, 2등일까’ 그것만 궁금했다. 그런데 결과는 낙선이었다. 세 명을 뽑는 청주시의회 ‘바’선거구에 출마해 여섯 명 중 5등으로 낙선한 정의당 문무창 후보의 이야기다. 3등 홍성각 후보는 4754(16.88%)표를 얻었고 문 후보는 2172(7.71%)를 얻었다. “홍성각(후보이름)은 중국집이 아닙니다”라는 구호에 “교통전문 시의원을 뽑아달라”는 구호가 밀린 것이다.

“허탈하고 배신감마저 느껴집니다. 제가 가진 능력을 발휘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문 후보가 자신을 ‘교통전문가’로 자처하는 근거는 무얼까? 제주도 서귀포가 고향인 문 후보는 한양대에서 토목공학과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교통공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석사학위 논문이 ‘과속방지턱 설치기준에 관한 연구’였는데 수안보 문산사거리에 과속방지턱을 만들어 놓고 교통사고와 연관관계를 실험했단다.

당시로서는 전국에서도 드문 교통전문가였기에 1987년, 경찰청 산하기관인 ‘도로교통공단(구 도로교통안전협회) 충북지부에 취업하면서 청주와 인연을 맺었다.

승승장구했다.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면서 교통체증을 개선하지 못하고 오히려 교통사고를 유발하는 고가도로와 지하차도 건설을 막아냈다. 그런데 과장이던 1999년, 뜻하지 않은 어려움이 찾아왔다. 관내출장을 나갔다 와보니 부서 직원이 봉투를 건넸다. 민원인이 놓고 간 10만원 짜리 돈봉투였다.

후회스럽지만 그때는 관행이었다고 했다.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모자란 돈은 더 보탰다. 그런데 퇴직경찰관들이 다수인 내부에서 투서가 접수됐고 결과는 파면이었다. 행정소송에서 이겨 복귀했지만 책상 하나만 있는 빈 사무실을 지켜야 했고, 결국 2000년 사표를 썼다.

그 뒤로 사업에도 실패했고 택시 운전대를 잡기도 했다. 2017년에는 휴대폰 수리 배달기사로 일하다가 부당한 해고를 당했다. 3단계 아웃소싱이라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청주노동인권센터의 도움으로 두 달 치 월급을 더 받아낸 것에 감사해야 했다.

사진=박상철 기자

정의당원이 된 것은 2017년 대선 직후다. 심상정 후보의 당당하고 거침없는 토론을 보며 자진해서 당원이 됐다. 지방선거에 교통정책을 제안하러 갔다가 출마를 제안 받고 직접 나서게 됐던 것이다.

문 후보는 2000년 교통공단을 떠났지만 ‘◯◯ 눈에는 ◯만 보인다’고 청주시의 교통체계, 교통흐름만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충대병원 오거리에 고가도로를 만든다고 할 때 청주시청 국장실로 쫓아갔어요. 고가도로를 만들려면 주도로의 교통량이 전체도로 교통량의 80%가 넘을 정도로 보조도로와 현격한 차이가 나야하고, 다음 교차로와 1km 이상 떨어져 있어야 효과가 있다는 점을 설명했습니다. 담당 국장이 ‘봐 달라고 이미 예산이 결정돼 변경할 수 없다’고 쩔쩔 매더라고요. 그때 제가 택시운전을 할 때였습니다.”

충대병원 오거리 고가도로는 지금이라도 해체하고 신호체계만 개선하면 지금보다 흐름이 나아질 수 있다고 단언했다. 주변의 상권도 살려야하고 소음도 문제인데다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시급하단다. 실제로 고가도로 밑에서는 사고 17% 증가했고 충대 후문 사거리는 50%나 급증했다고 했다.

2004년 환경친화적으로 도로법이 개정된 이후 서울시는 100개가 넘는 고가도로 중에 60개만 남기고 폐쇄하거나 철거했는데, 충대병원 앞 고가도로는 2008년에 공사에 들어가 2011년에 준공한 것이다. 공사비가 무려 231억원이나 들어갔다.

그는 직접 손으로 그린 청주시내 곳곳의 교통체계 개선 도면을 보여줬다.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놓인 것들이다. 그가 탄식하듯 말했다.

“시의원을 해서 꼭 정책에 반영하고 싶었는데,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동안 가정도 잃었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커서 정치는 이걸로 접어야할 것 같습니다. 당도 탈당했고요. 의회가 아니더라도 저의 정책들이 반영될 수 있는 통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제 청주에 남아야할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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