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공권력의 미온적 대처와 불법행위
[칼럼]공권력의 미온적 대처와 불법행위
  • 법무법인 주성 김한근 변호사
  • 승인 2018.08.18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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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주성 김한근 변호사

의사인 갑은 병원 건물을 신축하기로 하고 을과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을이 공사를 진행하던 중 일부 문제가 있었지만 일단 공사가 완료됐고, 갑은 건물의 사용승인 후 을로부터 건물을 인도받아 영업에 필요한 절차와 시설을 갖춰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사대금의 지급과 관련해 지체상금과 하자 등으로 다툼이 있게 되자, 을은 갑이 운영하고 있는 병원에 자신의 직원과 용역을 동원해 병원을 점거하며 공사대금을 지급할 때까지 유치권을 행사하겠다고 주장했다. 갑은 경찰에 을이 영업을 방해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문제는 을이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게 유치권을 행사하기 위해 점거한 것이라고 주장하자, 민사 분쟁에 관여할 수 없다면서 을과 그의 직원, 용역을 그대로 방치한 것이다. 그 후 갑은 정식으로 불법점거의 현행범에 대해 고소장까지 제출했으나 경찰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과연 위와 같은 사례에서 경찰이 유치권 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타당한 것인가?

법무법인 주성 김한근 변호사.
법무법인 주성 김한근 변호사

실제 건설공사와 관련해 공사업자들이 공사대금을 받기 위해 현실적으로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가 유치권을 행사하면서 현장을 점유하는 것이고 많은 경우 적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명백히 유치권이 인정되지 않는 사례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유치권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해당 목적물에 관한 채권이 존재해야 하고(이 사건의 경우 건물에 대한 공사대금채권이 존재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목적물을 적법하게 점유하고 있어야 하며, 채권자가 유치권을 포기한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어야 한다.

이 사건 사례의 경우 갑이 건물을 인도받아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을이 건물을 점유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정은 객관적으로 명백하다. 따라서 경찰은 을과 그의 직원들을 주거침입과 업무방해의 현행범으로 체포하거나 적어도 범죄행위(불법점거)가 계속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을은 갑이 병 은행으로부터 공사대금 대출을 받을 때 유치권을 포기하겠다고 특약을 했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유치권을 포기하는 특약은 유효하고, 채권자가 유치권의 소멸 후 그 목적물을 계속해 점유한다고 해 여기에 적법한 유치의 의사나 효력이 있다고 인정할 수 없고 다른 법률상 권원이 없는 한 무단점유에 지나지 않는다. 유치권 포기로 한한 유치권의 소멸은 유치권 포기의 의사표시의 상대방뿐만 아니라 그 이외의 사람도 주장할 수 있다(대법원 2011. 5. 13. 자 2010마1544 결정, 대법원 2016. 5. 12. 선고 2014다52087 판결 등 참고)”고 일관되게 판시한바 있다.

따라서 을은 유치권을 포기했기 때문에 유치권을 행사하겠다는 것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자다. 갑은 고소장에서 을이 유치권을 포기했다는 사정을 소명했음에도 여전히 경찰은 을의 행동을 방치했고 결국 갑은 이 상태를 더 이상 방치하다가 오히려 병원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을 거라는 걱정(을은 사실과 다른 악의적 내용의 현수막을 걸고, 병원 내에서 악취가 풍기는 음식을 섭취하며, 스피커를 통해 소음을 야기하는 방법으로 신축건물 바로 옆의 기존건물에서 이루어지는 병원의 영업까지 방해했다)과 누적되는 막대한 손해로 인해 부득이 합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결국 공권력의 적절한 행사가 필요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적법한 권리행사를 방치함으로써 을의 불법행위를 도와준 모양이 된 것이다.

위와 같은 사례는 경찰이 문제해결을 위해 좀 더 정확하고 전문적인 판단능력, 즉 공사대금으로 인한 유치권 분쟁이 주로 민사 분쟁이라고 하더라도 사안에 따라서는 명백히 범죄행위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에 대해 일선에서 미리 알고 대응할 수 있도록 내부기준 등을 마련해 두고, 적절한 교육을 통해 대응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욱이 현 정부에서 그 동안 지속적으로 요구해오던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경찰의 전문적인 판단능력 제고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과제라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수사권 조정으로 인해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는 것은 그에 비례한 고도의 능력과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김한근 변호사는
‘법무법인 주성(청주시 서원구 산남로 70번길)’에서 건설분야 대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건설 설비관련 업종에 종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각종 건설관련 분쟁(공사대금, 입찰, 하자, 인테리어 설비, 분양광고, 하도급)과 공정거래(약관, 공동행위, 불공정거래행위, 가맹사업) 사건 등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과 체계적이고 심도있는 분석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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