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사피엔스, 불안을 하늘에 그리다
호모사피엔스, 불안을 하늘에 그리다
  • 박한규
  • 승인 2018.08.18 06: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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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기가 변하는 별 ‘변광성’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

 

시인의 말처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별들이 우리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줄 것만 같다. 가을 하늘에는 전설이 넘쳐나는 별자리들이 많다. 가을 별자리들의 중심에 페르세우스 별자리가 있다. 매년 8월이 되면 수많은 별똥비(유성우)를 뿌려주기로 유명하다. 올해는 날씨가 좋지 않아 기대하기 어려웠는데 운 좋게도 인생별똥별을 관측하는 호사를 누렸다.

페르세우스는 그리스 문명의 출발점이자 신화의 발상지인 미케네 문명을 세운 최고의 영웅이다. 에티오피아의 왕 케페우스와 왕비 카시오페이아 사이에는 아리따운 공주 안드로메다가 있었다.

허영심이 많았던 왕비 카시오페이아는 안드로메다가 포세이돈의 딸들인 네레이드보다 아름답다고 자랑하다 포세이돈의 분노를 산다. 포세이돈은 바다괴물 케토스를 보내 에티오피아 왕국을 위협하고 왕은 안드로메다를 괴물 케토스에게 제물로 바치게 된다.

메두사를 물리치고 돌아오던 페르세우스는 케토스를 물리치고 안드로메다에게 청혼한다. 그러나 이방인에게 금쪽같은 딸을 주기 싫었던 왕과 왕비는 페르세우스를 내쫓는다. 메두사의 머리를 써서 왕과 왕비를 돌로 만든 다음 안드로메다와 결혼한 페르세우스는 펠레폰네소스로 돌아와 미케네 왕국을 건설한다.

페르세우스, 안드로메다, 케페우스, 카시오페이아, 케토스. 신화 속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가 하늘에 별자리가 되었다.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안드로메다를 죽음으로 내몬 케페우스와 카시오페이아, 게다가 바다괴물 케토스, 페르세우스의 손에 들린 메두사의 머리까지 별이 되었다.

그림 1: 2018년 8월 12일 새벽 페르세우스 자리 알파별, 미르팍(Mirfak)에서 지상으로 떨어지며 폭발하는 별똥별이 강렬한 유성흔을 남기고 있다. 필자가 관측한 유성우를 스케치했음.
페르세우스 주변 별자리들과 변광성을 표시하였다. 신화 속에서 페르세우스에 적대적 인물들의 별자리에는 모두 밝은 변광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페르세우스 자리 변광성 알골(Algol)은 악마의 별로 불리며 신화 속 메두사의 얼굴 또는 눈을 나타낸다.

 

자세히 보면 안드로메다를 제외한 모든 별자리에는 맨눈으로 관측이 가능한 밝은 변광성이 있다. 페르세우스 자리의 베타별(알골), 카시오페이아 자리 감마별, 케페우스 자리 델타별, 케토스 자리 오미크론별(미라).

별이 되기에는 부족한 인물들이 별자리가 된 사연이 변광성과 상관이 있는 걸까? 대체 변광성이 뭐라고 하찮은 신화 속 인물들까지 별자리로 만들었을까? 고대인들에게 별은 영구불멸. 불변한 신의 표상이자 메시지였다.

불멸의 신들처럼 별들도 크기나 색깔, 밝기가 변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러기에 움직이고 소멸하는 혜성, 초신성 따위 별들은 재앙을 몰고 오는 천체로 미움 받았다. 변광성 역시 마찬가지다. 밝기가 변하니 좋은 대접을 받을 리 없다.

페르세우스 신화와 별자리를 비교해 보자. 페르세우스 손에 들린 메두사의 머리(알골), 페르세우스와의 약속을 저버린 케페우스왕의 별자리 델타별과 왕비 카시오페이아 별자리의 감마별, 바다괴물 케토스자리 변광성 미라까지 모두 영웅 페르세우스의 적들에게는 변광성이 있었다.

페르세우스의 아내가 된 안드로메다자리에는 당연히 맨눈으로 쉽게 관측 가능한 밝은 변광성이 없다. 어쩌면 알골을 비롯한 변광성 관측 데이터의 축적이 페르세우스 신화와 어울려 하늘에 별자리를 만든 건 아닐까?

페르세우스 주변 별자리들과 변광성을 표시하였다. 신화 속에서 페르세우스에 적대적 인물들의 별자리에는 모두 밝은 변광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페르세우스 자리 변광성 알골(Algol)은 악마의 별로 불리며 신화 속 메두사의 얼굴 또는 눈을 나타낸다.
2018년 8월 12일 새벽 페르세우스 자리 알파별, 미르팍(Mirfak)에서 지상으로 떨어지며 폭발하는 별똥별이 강렬한 유성흔을 남기고 있다. 필자가 관측한 유성우를 스케치했음.

 

공식적으로는 17세기에 처음으로 케토스자리에서 변광성 미라를 처음 발견했다고 하지만 고대 중국, 바빌로니아, 이집트, 아메리카, 그리스에서도 변광성에 대한 기록들이 있다. 페르세우스 신화와 별자리처럼 신화를 빗대어 은유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공식적 기록에는 포함되지 않을 뿐이다. 천문현상을 신화로 전달하는 것이 고대인들의 문화로는 당연한 것이었다.

알골은 아랍어 라스 알 굴(Ras al Ghoul); 악마의 얼굴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리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신화적 존재인 고르곤(메두사)의 머리라고 표현한 뒤 아랍을 거쳐 르네상스로 천문학이 유랑하면서도 의미가 크게 변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집트에서 알골은 호루스의 눈(Wedjat)이라고 불렸다. 밝을 때는 호루스의 눈으로 불리고 보름달과 함께 있을 때는 Wedjat, 어두울 때는 전쟁의 여신 Sakhmet으로 불렸다.

겨울철의 대표적인 별자리 오리온자리에도 변광성이 있다. 거인의 어깨라는 의미의 베델쥬스(Betelgeus)는 불규칙한 주기를 갖는 변광성으로 상실과 연관된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이 신화는 펠로폰네소스 제도의 건설자 펠롭스의 이야기다. 의심이 많았던 펠롭스의 아버지 탄탈루스는 올림포스 신들의 전지전능함을 의심한다.

신들을 초대하고 아들 펠롭스를 스프로 만든 음식을 내놓는다. 제우스를 비롯한 신들은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딸 페르세포네를 잃은 데메테르만이 슬픔에 쌓여 이성을 잃고 스프를 한 숟가락 먹고 만다. 탄탈루스 왕은 무저갱 감옥에 갇히고 제우스는 펠롭스를 되살린다.

그러나 펠롭스의 어깨 한쪽이 없었다. 데메테르가 먹어버린 것이다. 제우스는 대장장이 아들 헤파이스토스에게 부탁하여 상아로 어깨를 만들어 준다. 최초의 사이보그 인간쯤 될 것이다. 이후 펠롭스는 피사의 왕 오에노마우스를 전차경주에서 물리치고 딸 히포다메이아와 결혼하였고 그리스 남쪽 펠레폰네소스 지역에 나라를 세웠다.

펠레폰네소스는 펠롭스의 섬들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하늘에 펠롭스를 기리는 별자리 오리온 별자리를 만들었다. 베델쥬스는 바로 잃어버린 펠롭스의 어깨별이기 때문에 불완전하여 밝기가 변하는 변광성이 된 것이다.

이 밖에도 베델쥬스는 이집트에서 오시리스의 잃어버린 성기로, 브라질에서는 잘린 다리로, 북아메리카에서는 뜯겨진 팔로, 남미에서는 잘려진 엄지손가락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모두가 부정적인 상실의 이미지와 맞닿아 있다.

호모 사피엔스의 불완전함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인간은 완전무결함과 신성을 추구하는지도 모르겠다. 균형, 불멸, 불변, 조화에 기대는 존재가 변화하고 움직이는 별에 대한 두려움을 표출하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페르세우스 신화는 신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전해지는 변광성에 대한 고대인들의 경외심을 드러내고 있다. 다음 시간에는 변광성을 어떻게 인간의 삶에 녹여냈는지, 과학을 통해 어떻게 이 두려움을 극복했는지 알아보자.

청주가 고향인 박한규는 흉부외과 전문의다. 지금은 부산의 한 마을 공동체 주민으로 살면서 공동육아로 40대를 보내고 있다.박한규 원장은 키만큼 커다란 망원경으로 별보기를 좋아하는 어른아이다. 또 신화와 역사 그리고 과학을 넘나들며 엿보는 재미에 빠진 일탈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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