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수많은 이별이 있다지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경계를 넘는 것이 죽음이다. 보내는 사람들은 땅을 치며 통곡하지만 ‘사자(死者)’는 고개를 들어 돌아보거나 손 한 번 흔들어주지 못한다. 슬픔은 오롯이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장례는 애끓는 이별의 의식이다. 활활 타오르는 불구덩이 속에 맡겨 한 줌 재가 되도록 태우는 ‘화장(火葬)’이나 사체를 벼랑 아래도 던져 독수리 밥이 되도록 하는 ‘조장(鳥葬)’도 있다. 언뜻 이해할 수 없지만 한 올의 그리움도 견딜 수 없어 불사르거나, 죽은 이의 영혼을 새에 맡겨 창공에 머물게 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그렇다면 ‘초장(草葬)’은 어떤 의미일까. 시신을 평상 위에 놓고 이엉으로 엮은 초가지붕을 씌워 살이 썩도록 1~3년을 둔 뒤 ‘육탈(肉脫)’이 이루어진 고운 뼈만을 추려 땅에 묻는 이른바 복장(復葬)방식이다. 처음에 만드는 풀무덤을 ‘초분(草墳)’이라고 부른다.
의미는 분명치 않다. 망자를 땅에 묻기 아쉬워 조금이라도 더 곁에 두려는 의식으로 보기도 한다. 초분 앞에서 행하는 무속이나 제례의식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고대의 장례기록에도 초장이 등장한다.
마을 근처 산 중턱이나 밭에 만들던 초분은 일제강점기 이후 위생법 제정에 이어 화장을 장려하면서 점차 사라졌다. 또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말미암아 초분은 육지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다만 2000년대 초반까지도 서남해안 지역 일부 섬에서 초분이 계속 만들어졌다.
1994년 죽음에 따른 의례를 추적하던 중 그렇게 보고 싶었던 초분과 전남 완도 청산도에서 마주쳤다.
▷사진을 찍은 송봉화는사진가이자 한국우리문화연구원장이다. 그는 우리들의 삶결을 순간으로 정지시켜 숨결을 불어넣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언제든지 그의 작품을통해 흘러갔지만 정지된 시간을 호명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