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님, 이승에 더 붙잡아 두고파…청산도 초분
그리운 님, 이승에 더 붙잡아 두고파…청산도 초분
  • 사진: 송봉화 작가 글: 이재표 기자
  • 승인 2018.09.2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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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1~3년 이엉으로 덮어두고 뼈만 남으면 매장…1994년 촬영

 

세상에 수많은 이별이 있다지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경계를 넘는 것이 죽음이다. 보내는 사람들은 땅을 치며 통곡하지만 사자(死者)’는 고개를 들어 돌아보거나 손 한 번 흔들어주지 못한다. 슬픔은 오롯이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장례는 애끓는 이별의 의식이다. 활활 타오르는 불구덩이 속에 맡겨 한 줌 재가 되도록 태우는 화장(火葬)’이나 사체를 벼랑 아래도 던져 독수리 밥이 되도록 하는 조장(鳥葬)’도 있다. 언뜻 이해할 수 없지만 한 올의 그리움도 견딜 수 없어 불사르거나, 죽은 이의 영혼을 새에 맡겨 창공에 머물게 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그렇다면 초장(草葬)’은 어떤 의미일까. 시신을 평상 위에 놓고 이엉으로 엮은 초가지붕을 씌워 살이 썩도록 1~3년을 둔 뒤 육탈(肉脫)’이 이루어진 고운 뼈만을 추려 땅에 묻는 이른바 복장(復葬)방식이다. 처음에 만드는 풀무덤을 초분(草墳)’이라고 부른다.

 

의미는 분명치 않다. 망자를 땅에 묻기 아쉬워 조금이라도 더 곁에 두려는 의식으로 보기도 한다. 초분 앞에서 행하는 무속이나 제례의식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고대의 장례기록에도 초장이 등장한다.

마을 근처 산 중턱이나 밭에 만들던 초분은 일제강점기 이후 위생법 제정에 이어 화장을 장려하면서 점차 사라졌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말미암아 초분은 육지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다만 2000년대 초반까지도 서남해안 지역 일부 섬에서 초분이 계속 만들어졌다.

1994년 죽음에 따른 의례를 추적하던 중 그렇게 보고 싶었던 초분과 전남 완도 청산도에서 마주쳤다.

▷사진을 찍은 송봉화는사진가이자 한국우리문화연구원장이다. 그는 우리들의 삶결을 순간으로 정지시켜 숨결을 불어넣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언제든지 그의 작품을통해 흘러갔지만 정지된 시간을 호명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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