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요미 막내딸과 쓰는 텃밭농부의 ‘옥상 전원일기’
귀요미 막내딸과 쓰는 텃밭농부의 ‘옥상 전원일기’
  • 이재표
  • 승인 2018.09.28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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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봉명동 다세대 주택 옥상에 6년간 30여종 농사지은 박흠찬 씨
옥상 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박흠찬 씨. 사진=박흠찬 페이스북
옥상 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박흠찬 씨. 사진=박흠찬 페이스북

 

어떤 농부라도 그를 당할 재간이 없다. 생계를 위한 농사라면 수익성을 고려해 돈이 되는 작물에 집중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6년 동안 줄잡아도 30여종이 넘는 작물을 재배했다.

상추·배추·열무·시금치·아욱·근대 같은 엽채는 말할 것도 없고 삼채·당귀·명월초 같은 약초류, 고추·오이·가지·호박 등 반찬거리, 마늘·들깨 같은 양념류, 파프리카·피망·비트 등 서양채소까지 손을 댔다.

여기에 수박·참외·토마토·딸기 등 흔한 과일뿐만 아니라 무화과에 블루베리·초크베리·아로니아 같은 베리 종류도 심었고, 올해는 화분을 이용해 옥수수까지 재배했다. 올여름 태풍 솔릭이 불던 밤에는 옥수수 화분을 끈으로 묶어놓고 바람에 넘어갈까봐 밤새 지켰다.

지난 여름 박 씨의 텃밭은 무성했다.
지난 여름 박 씨의 텃밭은 무성했다.

 

전답을 더해 수백 마지기 대농의 얘기가 아니다. 그의 대지는 청주시 봉명동에 있는 다세대주택 옥상 위 예닐곱 평 텃밭과 화분 40개가 전부다. 그는 마흔 살이 훌쩍 넘어서 얻은 늦둥이 막내딸을 위해서 농사를 짓는다. 대학병원 간호사인 스물여섯인 큰딸에 이어 열여섯 살 터울로 늦둥이를 얻었으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이 흰소리가 아니다.

방송에서 인스턴트식품이 넘쳐난다는 보도를 접했어요. 지금은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재희가 다섯 살 때였어요. 아이에게 농작물이 자라 열매를 맺는 모습도 보여주고, 안전한 먹거리도 제공하려고 시작한 일이에요. 농사요? 농촌에서 태어나 평생 농사를 짓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손에 흙 묻히는 걸 무척이나 싫어했어요.”

페이스북에서 옥상 전원일기로 뜨고 있는 텃밭농부 박흠찬 씨의 이야기다. 박 씨는 20183월부터 페이스북을 시작했는데 불과 6개월 만에 친구 제한선인 5000명에 도달했다. 알콩달콩 쓰는 농사이야기 덕분이다.

아빠와 함께 농사를 짓는 늦둥이 막내딸.
아빠와 함께 농사를 짓는 늦둥이 막내딸.

 

페이스북에서 농사를 짓는 분들 만나면 너무 반갑고, 서로들 배우고 가르쳐 줘요. 처음 시작할 때 상추, 배추 같은 엽채로 시작했는데 뽑아버린 게 더 많았어요. 농약, 화학비료는 일체 쓰지 않으니까 벌레는 손으로 다 잡았죠. 이제는 어떤 퇴비를 써야 열매가 많이 열리고, 병충해에도 강한지 노하우가 생겼습니다.”

씨 뿌리고 돌보고 수확하는 과정에는 늦둥이 딸이 모델로 등장한다. 페이스북에서 박 씨가 딸을 부르는 호칭은 귀요미. 딸을 위해 시작한 농사다 보니 5년 전 딸아이의 어린이집에도 소문이 나서 현장학습을 오기도 했단다.

요즘 귀요미는 틈나는 대로 옥상에 올라가 오이도 따 먹고, 심지어는 당귀 이파리까지 뜯어먹는단다. 사탕이나 과자 같은 주전부리는 거의 입에도 대지 않는다고. 딸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먹이겠다는 박 씨의 꿈은 완벽하게 이루어진 셈이다.

세종경제뉴스를 찾은 박흠찬 씨. 그와는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이 닿았다.
세종경제뉴스를 찾은 박흠찬 씨. 그와는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이 닿았다.

 

반찬거리 걱정이야 덜었죠.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귀요미와 함께 농사를 짓는다는 거예요. 같이 심고 같이 수확합니다. 맛있게 먹어주는 게 가장 큰 행복이죠. 애플수박 세 포기를 심어서 10여 통이 열렸는데 귀요미가 다 따먹고 저는 구경만 했어요.”

박 씨가 덤으로 얻은 것은 건강한 몸과 마음이다. 10년 전 사업실패로 한동안 은둔생활을 했던 박 씨는 농사일기와 함께 세상으로 나왔다. 그리고 건강을 되찾았다.

아침에 1시간 가까이 농사일을 합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아요. 집에 돌아와서도 현관문을 열기 전에 옥상부터 올라갑니다. 혹여 하루 이틀 집을 비우더라도 페트병을 이용해 물을 주는 비법을 터득했어요.”

부동산 개발 컨설팅이 직업인 박 씨는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친한 사람들끼리 같이 땅을 사서 택지를 개발하고 동호인 주택을 짓는 것이다. 함께 과실수를 심고 텃밭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작물만 자라는 게 아니라 꿈도 무럭무럭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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