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도끼의 비밀을 찾아서 그리스 크레타섬으로
양날도끼의 비밀을 찾아서 그리스 크레타섬으로
  • 박한규
  • 승인 2018.10.27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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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노아문명, 도끼를 도구로 황소를 희생제물 삼아…별자리에도 투영

<연재-별 보는 어른아이>

양날도끼의 비밀을 찾아 그리스 크레타섬을 찾은 박한규.
양날도끼의 비밀을 찾아 그리스 크레타섬을 찾은 박한규.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말했던 포도줏빛 바다에게해를 찾아서, 그리고 에게해를 바라보며 완전한 자유를 노래하던 니코스카잔차키스를 찾아서 크레타섬으로 떠난다. 에게해는 지중해에 속해 있으면서 서쪽과 북쪽은 그리스, 동쪽은 아나톨리아 반도(터키), 남쪽은 크레타섬으로 에워싸인 바다를 특별히 일컫는다.

크레타섬은 크기가 제주도 네 배 정도이고 그리스와 아나톨리아 반도, 이집트를 잇는 문명의 삼각형 한복판에 위치한 섬이다. 아나톨리아와 이집트는 신석기 시대와 초기 청동기 시대부터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자랑하는 지역이다. 이 두 지역에서 발달된 문명을 받아들여 기원전 20세기 초부터 일찍이 미노아 문명이라는 독자적인 문화를 꽃 피우고 그리스 문명을 태동한 곳이 크레타 섬이다.

신석기시대 이후 모든 농경 문화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절기를 예측하는 것이었다. 특히, 새해 첫 날은 농경의 시작인 동시에 신년축제가 열리는 날이었다. 새해를 알아내는 것은 제사장들의 특권이자 의무였다. 고대 크레타 사람들이 새해 첫 날을 알아낼 때 쓰였던 무늬에 양날도끼가 있다. 좁다란 복도 아래 자그마하게 새겨진 양날도끼. 나는 이 도끼의 의미를 찾아서 긴 여정을 떠나야 했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쓰인 부호가 겨우 손톱만한 도끼그림이라니.

크레타 섬의 미노아문명에는 양날도끼로 대표되는 황소 숭배가 성행했다. 황소를 희생제물로 바치는 의식은 최고신-제우스의 부활제를 의미한다. 희생(犧牲)이라는 글자를 보면 두 글자 모두 소 우()’가 부수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황소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하늘이나 최고신에게 제사를 올릴 때 희생시킨 동물이었다. 양날 도끼는 희생 황소를 잡던 도끼로 간접적으로 황소 희생 제사의 상징이었다.

크레타 섬에 남아 있는 유적과 유물을 보면 유독 양날도끼와 황소 그림과 조각이 많다. 미노아 문명의 뒤를 이은 미케네 문명과 그리스에도 양날 도끼와 황소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후대로 갈수록 현저히 줄어듦을 볼 수 있다. 미노아 문명은 왜 이렇게 황소와 양날도끼에 집착했으며 어떤 모습으로 신화 속에 남아 지금까지 전해지는가? 밤하늘의 황소는 크레타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졌을까?

크레타 섬 이라클리온 박물관에 전시된 양날 도끼 조각과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들.
크레타 섬 이라클리온 박물관에 전시된 양날 도끼 조각과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들.

박물관에서 본 도끼는 모두 양날이었고 손잡이가 있거나 손잡이가 없더라도 손잡이 끼움 구멍 흔적이 있다. 양날 도끼는 만든 재료도 다양하며 금박을 입힌 것도 많다.

신화를 살펴보면 크레타는 온통 황소로 도배를 한 집처럼 보인다.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페는 제우스가 변신한 황소에게 납치되어 크레타에 도착하고 아들 미노스를 낳는다. 에우로페는 크레타의 왕 아스테리온과 결혼한다. 미노스는 여러 왕자들과 왕위를 놓고 경쟁을 하는데, 포세이돈이 보낸 하얀 황소를 징표로 내세워 왕좌에 오른다. 왕이 된 미노스는 포세이돈에게 받은 하얀 황소를 돌려보내지 않은 죄로 얼굴은 황소요 몸은 사람의 모습을 한 미노타우루스를 아들로 얻게 된다. 화가 난 미노스 왕은 미노타우루스를 미로에 가두어 버린다. 당시에는 크레타 섬의 지배를 받던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루스를 죽이고 사람들을 구출할 때 까지 만 8(9)마다 소년소녀 각 8명을 바치게 된다.

돌진하는 황소를 뛰어넘는다는 건 목숨을 건 서커스였을 것이다. 스페인의 투우나 콜로세움의 검투사처럼 매우 인기 있는 행사였음에 틀림없다. 황소 뛰어넘기와 동시에 황소를 제물로 바침으로써 풍요와 다산 및 왕권을 다지는 의식을 치렀다.

에우로페가 크레타 섬에 도착했을 때 크레타를 다스리던 왕 아스테리온은 이라는 뜻을 지녔으며 황소탈을 쓰고 통치했다고 한다. 크레타의 왕은 제사장을 겸했을 가능성이 크다. 유적을 보면 왕궁에서 행정과 제사 기능을 동시에 수행했음을 알 수 있다. 왕궁의 한 가운데는 중앙 광장이 있어서 제사 의식이나 신년 축제를 치르는 장소로 쓰였다. 유물을 보면 광대들이 황소를 타고 넘는 그림이 많다. 황소 사냥이나 뛰어넘기라고 불리는 장면은 스페인의 투우와 비슷한 행사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미노아 왕국의 수도였던 크노소스 왕궁은 미로처럼 복잡하다. 대칭이나 규칙을 지닌 건축양식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4층 건물에 수백 개의 방들이 복잡하고 불규칙한 통로로 연결되어 있어 길을 잃기 십상이다. 그리스인들은 이 왕궁을 미로라고 불렀다. 미로 같은 왕궁 한복판에서 투우축제를 벌이다 죽어가는 소년들은 아마도 식민지 아테네에서 잡혀온 젊은이였을 것이다.

미노아 문명을 발굴한 에반스 경이 복원한 황소 뛰어넘기 그림.
미노아 문명을 발굴한 에반스 경이 복원한 황소 뛰어넘기 그림.

미노스는 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왕조를 일컫는 말로 미노스 왕은 8년마다 자리에서 내려와 부활의식을 치렀으며 이 부활의식을 통해 새롭게 거듭날 수 있었다. 부활의식은 제우스의 부활제를 말한다. 그리스의 제우스와 달리 크레타 섬의 제우스는 태어나고 죽기도 한다. 크레타 섬의 제우스는 부활을 통해 풍요와 다산, 그리고 왕권에 새로운 힘을 주는 상징이었기에 황소 축제를 통한 희생의식을 성대하게 치렀다.

황소 도살에 쓰였던 양날 도끼는 성스러운 제사의 상징이었다. 크레타 섬의 중심도시 이라클리온 박물관에 가면 손톱보다 작은 도끼부터 족히 2m가 넘는 거대한 도끼까지 모양도 크기도 다양한 양날 도끼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널려있다. 두께도 종잇장처럼 얇은 것들이 있는가 하면, 나무나 청동으로 만든 것부터 금박을 입힌 것까지 재료도 다양하다. 실제 사용되었다기보다는 장신구나 기념품 또는 의식용품으로 제작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8년 마다 치러지는 부활제와 9년마다 끌려가던 아테네 젊은이들, 황소 뛰어넘기와 황소 희생제의 상징인 양날도끼는 크레타 섬이 황소를 매개로 제우스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미노아 문명의 영향으로 그리스 문명이 태어났으며 제우스가 크로노스의 눈을 피해 태어났다고 하는 동굴도 크레타에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미노타우루스 신화를 통해 문자로 전해지지 못한 역사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최초의 문명 수메르와 바빌로니아 그리고 아나톨리아 반도와 레반트 지역을 포함한 고대 동방이라 불리던 지역 어디에서나 황소를 모티프로 사용한 신화와 미술품들이 많다. 황소는 하늘신, 천둥신, 날씨신의 상징동물이다. 기원전 11세기에 만들어진 뒤 영어 알파벳의 모태가 되어 세계 문자가 된 페니키아 문자의 첫 글짜 ‘A’알레프라고 읽고 황소 머리의 상형문자에서 시작되었다.

황소 별자리(위)와 오리온 별자리(아래).
황소 별자리(위)와 오리온 별자리(아래).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알타미라와 라스코 동굴 벽화를 보면 유난히 황소 그림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기원전 13000년 무렵 그려진 라스코 동굴벽화에는 황소뿔과 황소 얼굴을 황소 별자리와 겹쳐 그린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늘을 관측하여 방향을 잡고, 시기를 예측하던 고대인들이 관측의 편리함과 신화적 숭배가 겹치면서 만든 것이 별자리였다. 특히 고대인들은 한 해의 시작점인 춘분날 별자리를 중요하게 여겼는데, 기원전 4000년부터 기원전 2000년 무렵까지 한 해의 시작점이었던 춘분점이 황소자리에 있었다.

이 시기는 도시 문명이 일어나고 청동기가 사용되었고 문자가 발명되던 시대로 인류 역사의 가장 위대한 분수령이었다. 문자로 고착화된 황소자리 춘분점은 춘분점이 양자리로 옮아간 뒤에도 1000년이 넘도록 불변의 진리로 고착되었고 최고신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에우로페의 남편이자 미노스의 부왕인 아스테리온이 별이라는 뜻을 지녔고 황소 탈을 쓰고 통치했다는 사실은 고대 크레타 섬에서도 황소 별자리와 연관된 황소 숭배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리스와 소아시아 및 인도에 많이 분포했던 황소는 뿔이 긴 종이었던 ‘aurochs’였다. 긴 뿔을 자랑하는 황소 별자리 아래 양날 도끼 모양의 별자리가 보인다. 오리온자리와 큰개자리 으뜸별 시리우스가 손잡이 달린 도끼 모양을 하고 있다.

황소 별자리 바로 아래에는 오리온자리가 있다. 오리온자리는 흔히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지역에 따라 다양한 신화가 존재하고 그만큼 다양한 모습으로 불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리온을 장구별이라고 불렀다. 모양이 장구를 닮았기 때문이다. 고대 크레타 사람들이 보았던 오리온은 어떠했을까? 양날도끼로 보았던 것은 아닐까? 오리온자리 허리에 해당하는 별 셋을 따라 내려가면 시리우스가 나온다. 오리온자리와 시리우스를 이으면 손잡이(시리우스)가 달린 양날도끼가 된다.

양날도끼 앞에는 황소가 머리를 내밀고 있다. 신년 축제가 열리는 추분날이 되면 해가 진 뒤 동편 밤하늘에 오리온자리가 선연히 떠오른다. 오리온자리가 떠오르면 축제의 밤이 시작된다. 양귀비를 피워놓은 제단 앞 광장에서 밤을 새워가며 황소 뛰어넘기 놀이가 열린다. 식민지 젊은이들과 황소가 엉켜 희생과 부활 의식이 끝나면 왕은 더욱 강한 권력을 지닌 모습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더불어 모든 크레타 사람들은 부활한 제우스로부터 한해 농사와 고기잡이의 풍요로운 수확 및 다산을 약속 받는 것이다.

크레타 섬에는 내가 가장 좋하하는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카잔차키스 무덤이 있다. 유언대로 에게해를 바라보고 있는 아름답고 따뜻한 기운의 소박한 돌무덤이었다. 그의 무덤에서 바라본 에게해는 분명 짙은 적자색 포도줏빛 바다였다. 언젠가는 저 아름다운 에게해 바닷가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해 본다.

청주가 고향인 박한규는 흉부외과 전문의다. 지금은 부산의 한 마을 공동체 주민으로 살면서 공동육아로 40대를 보내고 있다.박한규 원장은 키만큼 커다란 망원경으로 별보기를 좋아하는 어른아이다. 또 신화와 역사 그리고 과학을 넘나들며 엿보는 재미에 빠진 일탈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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