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그림자와 초승달로 윤달을 계산한 미노아 문명
빛그림자와 초승달로 윤달을 계산한 미노아 문명
  • 박한규
  • 승인 2018.11.2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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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크레타섬을 찾아서…양날도끼의 비밀, 두 번째 이야기

황소와 양날도끼에 얽힌 미노아 문명과 신화에 대해 지난 호에서 이야기했다. 양날도끼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황소와 부활의식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 양날도끼가 날짜를 가늠하기 위해 고안된 크노소스 궁전의 어두운 복도에도 적용되어 있다. 전혀 실질적 기능을 하지 않는 문양이 왜 벽에 그려져 있었던 것일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크레타에서 가장 큰 도시 이라클리온에는 크노소스 궁전으로 갔다. 미로에 갇힌 미노타우루스 전설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많은 유럽인들이 문명의 고향쯤으로 여기는지 관광버스가 줄을 지어 서 있고 궁전 마당에는 왕의 방을 보려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궁전 마당에서 보면 동쪽으로 아엘리아스 산등성이(Aelias ridge)가 보인다.

산등성이는 3~4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나무가 없고 굴곡이 없어 평평한 지평선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아엘리오스 산등성이는 크노소스 궁전보다 10.4도 높기 때문에 태양이 동쪽 수평선에 올라온 뒤에도 42분이 지나야 일출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왕의 방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미노아 문명에서 시계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복도를 보고자 크노소스 궁전을 밟은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출입금지였다.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는 곳을 애타게 찾았지만 허사였다. 그저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 복도에 서서 미노아 인들은 아엘리아스 산등성이 위로 떠오르는 별들을 관찰했으리라. 이렇게 두 발을 정성껏 모으고 서서. 미노아 인들은 중기 청동기 시대인 기원전 1900년 무렵부터 크레타 섬에 궁전을 짓고 문명을 발전시켰다. 궁전이 무너지면 그 위에 또 궁전을 짓는다. 나중에 세워진 궁전은 처음 궁전보다 기반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복도만은 1m 낮아서 주변 다른 건물들과 높이 차이가 난다. 처음 높이를 고집해야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이 복도 깊숙한 곳에는 우묵한 돌이 있는데 물을 받아서 햇빛을 반사시키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매년 추분이 되면 햇빛이 복도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고인 물에 반사되어 벽에 비치게 설계되었다. 햇빛이 복도 입구에서 물그릇까지 비치자면 양날도끼를 살짝 지나가야 한다. 양날도끼를 지나온 빛이 물그릇에 반사되어 벽에 비친 빛그림자는 밖에서도 똑똑히 볼 수 있었으리라. 이 빛은 추분이 지나서도 11일 동안 보이다 사라진다. 왜 하필 11일을 더 비추고 사라질까?

추분이 되면 복도 입구 윗쪽에서 시작된 빛이 끝에 있는 물그릇에 반사되어 뒷벽에 빛그림자를 만든다. 빛이 지나는 경로에는 양날도끼가 그려져 있다. 다른 문양이 아닌 양날도끼를 굳이 새겨 넣은 것은 빛의 경로를 확인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제의적 성격이 크다. 추분으로부터 11일이 지나면 벽에 비친 물그림자는 사라진다.
추분이 되면 복도 입구 윗쪽에서 시작된 빛이 끝에 있는 물그릇에 반사되어 뒷벽에 빛그림자를 만든다. 빛이 지나는 경로에는 양날도끼가 그려져 있다. 다른 문양이 아닌 양날도끼를 굳이 새겨 넣은 것은 빛의 경로를 확인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제의적 성격이 크다. 추분으로부터 11일이 지나면 벽에 비친 물그림자는 사라진다.

고대에는 달력으로 쓸 만한 것이 별을 관측하는 것 말고는 변변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별을 관측하는 기구가 발명되기 전에는 별을 보아도 오늘이 작년 그 즈음이라고는 알 수 있지만 정확히 바로 그 날이라고 알기는 어려웠다.

농사는 그 즈음만으로도 가능하지만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는 정확한 날짜가 필요했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만으로는 1년을 알 수 없다. 한 달은 평균 29.5일이고 12달은 29.5x12=354일로 일년 365일에 비해 11일이 적기 때문이다.

정확한 날짜 가늠을 위해서는 윤달을 어떻게 넣을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미노아에서는 추분이 지나서 첫 초승달이 뜨는 날을 새해 첫 날로 잡고 성대한 축제를 지냈다. 복도 끝 벽에 비친 햇살이 11일 동안 유지되는 기간에 초승달이 뜨면 윤달을 두었다. 이렇게 하면 8년에 3번의 윤달을 넣게 된다.

매년 같은 날을 정확히 맞출 수는 없었지만 8년마다 정확히 같은 날이 반복된다는 것을 관측을 통해 알고 있었다. 지구가 8번 태양을 공전하는 동안 달은 99번 지구를 공전한다. , 8회귀년마다 99번의 삭망월이 반복됨을 미노아 인들은 알고 있었고 오차는 1.5일이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 1.5일이라니, 3000만년에 1초보다 값지다 할 수 있다.

추분날 아엘리아스 산등성이 위로 태양과 함께 떠오르는 별들도 역시 자명종과 같은 역할을 했다. 금성은 8회귀년 동안 5번 태양을 공전하고 처음과 같은 위치에서 관측 된다. 역시 대략 2일의 오차가 있지만 구분이 어려운 정도여서 8년 마다 거의 동일한 위치에서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때 맞춰 떠오르는 처녀자리 스피카와 아크투르스는 포도 수확하고 씨 뿌릴 시기를 알려주는 별자리였다. 기원전 7세기 시인 호머는 아크투루스를 인용했지만 신화를 살펴보면 미노아 사람들은 스피카를 선호했던 것으로 보인다. 관측적 측면에서 보면 태양에 가깝게 보였던 스피카가 어울렸겠지만 시인에게는 태양과 멀어서 더 빛나는 별 아크투르스가 더 매력적이었을 지도 모른다.

저승 신 하데스에게 잡혀간 딸 페르세포네를 찾아 세상을 헤매는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에 대한 신화는 잘 알려져 있다. 제우스의 중재로 8개월은 데메테르와 살고 4개월은 하데스와 살게 된 페르세포네 이야기는 지중해 지역의 한 해 농사 주기를 말해준다. 페르세포네가 저승에 볼모로 잡혀 있는 4개월의 뜨겁고 건조한 여름이 지나면 페르세포네가 지상으로 올라오는 절기, 추분이 된다. 새해 농경의 시작을 알리는 축제가 열린다.

스피카는 처녀 별자리의 으뜸별이고 별자리는 신화 속 페르세포네를 가리킨다. 크레타에서 발견된 문자를 보면 데메테르를 가리키는 다--(da-ma-te)가 또렷이 남아있다. 데메테르와 페스세포네 신화의 원형이 크레타 섬에서 별을 관측하고 날짜를 가늠하던 고대 미노아 사람들에게 있지는 않을까?

호머는 미노스 왕을 미노스 에네오로스(Minos enneoros)’, 9년 동안 다스리는 미노스라고 불렀고 아테네 젊은이들은 9년마다 끌려가 죽임을 당했다. 9년은 8년을 햇수로 말하는 듯하다. 미노스 왕은 8년마다 부활의식을 치르고 새롭게 태어나 강화된 통치권력을 사용했다. 매년 열리는 새해 축제는 8년마다 부활의식으로 성대하게 치러진다. 통치권력과 풍요, 다산을 비는 부활의식이 8년 주기를 갖는 것이 우연이었을까?

이라클리온 박물관에 있는 미노아 문명의 도자기. 문어 그림은 크레타 섬을 넘어서도 발견되며 지금도 미노아 문명의 영향권을 확인하는 이정표로 사용된다.
이라클리온 박물관에 있는 미노아 문명의 도자기. 문어 그림은 크레타 섬을 넘어서도 발견되며 지금도 미노아 문명의 영향권을 확인하는 이정표로 사용된다.

크레타 박물관에 남아 있는 그릇을 보면 문어 그림이 유달리 많다. 문어 다리가 8개이기 때문에 문어 문양이 섬나라 크레타 미노아 문명의 중요한 위치에 오른 것이 아닐까?

황소와 양날도끼는 고대 미노아 사람들이 천체를 관측하고 날짜를 가늠하여 새해 축제를 열고 부활의식을 여는 과정의 매개물이기도 하고 의식과 신화를 잇는 고리가 되기도 한다. 8년에 3번 윤달을 두는 미노아 인들의 뒤를 이어 바빌로니아와 고대 그리스에서는 19년에 7번의 윤달을 두었고 이 방법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었다.

예나지금이나 치윤법(윤달을 넣는 방법)은 정확한 달력을 만드는 시금석과도 같다. 지금은 3000만년에 1초의 오차를 보이는 세슘시계를 사용하지만 4000년 전이라는 시공간에 갇힌 고대인들이 사용했던 방법들은 실로 놀라운 결과물이다. 신화와 역사와 과학이 하나의 용광로에서 끓을 때 우리는 잠시 시간여행을 허락받는다.

청주가 고향인 박한규는 흉부외과 전문의다. 지금은 부산의 한 마을 공동체 주민으로 살면서 공동육아로 40대를 보내고 있다.박한규 원장은 키만큼 커다란 망원경으로 별보기를 좋아하는 어른아이다. 또 신화와 역사 그리고 과학을 넘나들며 엿보는 재미에 빠진 일탈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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