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석·안광무가 진단한 의료계, 그리고 공공보건의료
안치석·안광무가 진단한 의료계, 그리고 공공보건의료
  • 이주현 기자
  • 승인 2018.12.19 1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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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의 의료계 소식통 - 여섯 번째 이야기

2018년 의료계가 맞닥트린 길은 그야말로 험로의 연속이었습니다. 곳곳이 급사면 로프 구간이고 바위지대였지요. 의사 단체의 경우 쏟아지는 의료계 현안에 쉴틈 없는 진료로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한 해 동안 척박한 의료현실을 바꾸어야 한다며 대국민 홍보, 투쟁 등을 펼쳤습니다. 

지난 여름 터진 전북 익산 응급실 의사 폭행 사건 등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 관행과 제도가 바뀌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지만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차가운 시선도 존재했던 게 현실입니다. 충북의사회 수장인 안치석 회장과 안광무 대의원회 의장이 지난해 의료계 현장을 돌며 체감한 이슈들을 갖고 나눈 대화를 축약해 이번 연재에 담아봤습니다.

왼쪽부터 안광무 충북의사회 대의원회 의장, 안치석 충북의사회장. 충북의사회 수장인 이들이 지난해 의료계 현장을 돌며 체감한 이슈들을 갖고 나눈 대화를 축약해 이번 연재에 담아봤다.

 

Q. 지난해 의료계는 다사다난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슈는.

(안치석 회장) 응급실 의사 폭행 사건, 오진 의사 구속 판결, 저출산이다.
(안광무 의장) 두 번째 사안까지는 같고, 마지막 이슈는 제주녹지국제병원 조건부 개설허가를 꼽았다.

 

Q. 응급실 의사 폭행은 그야말로 참극이었다.

(안치석 회장) 의사가 행패를 당하고 살인 협박까지 받는 무방비 상태의 응급실 현장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응급실은 생명이 위급한 순서대로 진료가 이뤄진다. 빨리 안 해준다고, 의료진이 불친절하다고 별의별 이유를 들어 난동을 부리면 안 된다.

원광대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응급실 의료진의 84.4%가 폭언과 폭력 등을 경험했다고 한다. 슬픈 현실이다. 응급실 의사도 폭행을 당하면 그 이후 정상적인 진료를 할 수 없다. 의사의 몸과 마음이 편치 못한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처치도, 수술도, 처방도 불가능하다. 

(안광무 의장) 응급실을 찾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자신이 급하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막상 응급실에는 자신보다 위중한 환자들이 붐빈다. 진료 순서는 접수 순서를 무시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가뜩이나 예민한 상태에서 무시당했다는 주관적 판단이 분노를 유발해 폭행사태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보다 성숙한 시민의식, 의료소비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무엇보다 응급실과 진료실에서의 의료진 폭행은 중범죄라는 사실과 경찰이 항상 의료현장의 폭력사태를 실시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홍보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Q. 응급실 의사 폭행에 대한 처벌 강화 이후에도 폭행 사건이 끊이질 않고 있다.

(안치석 회장) 안타까운 일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응급실 의사와 의료진에 대한 폭행은 안 된다. 응급실 내 폭행은 본인과 다른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간접적인 살인행위다.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진료실 개선과 경비인력 충원, 직원교육, 폴리스콜 활성화, 경찰의 정기순찰 등 시스템적인 구축이 절실해 보인다. 응급실 경비에게 호신진압 장비를 지급하거나 제지권한을 줄 필요도 있다.

충북에서는 3년 전부터 폴리스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아직 자리를 제대로 잡진 못했지만 미비한 점을 보완하면 응급실 안전을 확보하는데 도움이 된다. 안전한 응급실 진료환경만이 환자의 안전과 생명을 지킬 수 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응급실 폭력은 절대 안 된다.

(안광무 의장) 개인적으로 응급실 의료진 폭행사건이 반복되는 가장 큰 원인은 무너진 법치주의, 즉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과 무력화된 공권력으로 본다. 응급실에서의 폭행은 다른 응급환자를 해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운전자 폭행 처벌과 같은 강력한 법개정이 요구된다.

의료법에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하고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벌금형 대신 모두 징역형으로 상향 조정돼야 한다. 아울러 공권력은 법질서의 골간이기 때문에 공권력 경시풍조도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 주취자 관리에 대한 새로운 방안도 모색돼야 한다.

의료인들의 바람대로 응급실에 경찰이 상주하면 좋겠지만 경찰 인력의 한계로 이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대안이다. 실효적인 대안으로는 폴리스 콜을 상시화하고 응급실 폭행사건이 발생할 시에 한해 응급실 CCTV 화면을 가까운 경찰서 또는 파출소에서 즉시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Q.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견해를 밝혀달라.

(안치석 회장) 민간 병·의원의 시각에서 공공의료를 진단해본다. 민간 병·의원의 공익적 의료 역할에도 불구하고 국내 공공보건의료의 정책 추진과 지원과정에서 후순위로 밀려 있다.

민간 병·의원 역시 공공보건의료에 참여를 시도하고 있지만 무료 의료봉사 같은 시혜적인 의료서비스 등으로 제한돼 있는 현실이다. 병·의원의 경영여건에 영향을 주는 내·외부적 의료환경의 변화는 민간 병·의원의 공익적 의료 활동을 어렵게 하고 공공보건의료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민간 병·의원도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공보건의료 수행기관의 책임과 의무가 있다. 국·공립병원의 시설확장과 장비 현대화는 공공보건의료의 본류가 돼서는 안 된다.

국·공립병원의 공익 기능을 중심에 두고 민간 병·의원과 연계를 통한 공공보건의료 네트워크 구축이 절실하다. 민간 병·의원이 공익의료를 수행함에 있어 국·공립병원의 시설과 인력 협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안광무 의장) 우리 사회는 아직도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정확한 개념과 인식이 부족해 보인다. 공공보건의료라는 말보다 외국 문헌에도 없는 정체불명의 공공의료, 민간의료가 아무 비판도 없이 선악 이분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흔히 사회통념상 공공의료는 공익을 위해 공공부문에서 제공하는 의료서비스, 민간의료는 사익을 위해 민간부문에서 제공하는 의료서비스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잘못된 개념이다. 차라리 공공의료는 공적의료보험체계를 통해 제공되는 의료서비스로 이해하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2000년 제정된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공공의료기관이 생산하는 의료서비스를 공공보건의료로 정의했다. 그러나 이후 개정 법률안에서는 공공이든 민간이든 보건의료기관이 생산하는 보편적인 의료뿐만 아니라 설립 및 소유 주체를 떠나 기능적인 관점에서 필수적이고 공익적인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공공과 민간이 효율적으로 역할 분담해 국가가 공공보건의료 기능에 대하여 지원·육성 및 평가·감독할 수 있도록 법적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강제지정제 합헌, 단일공적보험, 부족한 공공의료기관, 사회보험의료의 보편화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2015년 1월 개정된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제 2조에서는 ‘공공보건의료란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보건의료기관이 지역·계층·분야에 관계없이 국민의 보편적인 의료 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라고 정의했다.

다시 말해 ‘공공보건의료’란 국민 전체의 건강을 보호·증진시키기 위해 방역, 예방접종과 같이 공중,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보건서비스(public health services)는 말할 것도 없고 개별 의료일지라도 공공성, 즉 형평성(지역·계층·분야에 관계없이)과 보편성(보편적인 의료)이 요구되며 공적 중재가 필요한 의료(medicine)를 기능적인 관점에서 민간과 공공의료기관이 협력해 공급하는 모든 활동으로 정의했다.

의료서비스는 경제학적으로 분명 공공재가 아니다. 배제성과 경합성을 갖는 사적재(가치재)입니다. 그러나 전염병과 같이 외부성(externality)이 크고 수요예측이 어려워 시장진입이 자유롭지 못해 시장기능에 따른 수요와 공급에 의존할 경우 불안정해질 수 있다.

또한 국민건강은 국가나 공동체의 존립에 필수적입니다. 정부개입이 정당화된 것입니다. 결국 의료서비스는 공공재는 아닐지라도 공공재적 성격을 갖는다. 당위적, 규범적인 측면(normative perspective) 에서 공공재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사회보장제도로서의 의료(사회보험의료)는 개인의 권리(privilege)가 아니라 인간의 기본권리(right)로 간주되고 있다. 

 

Q. 공공보건의료 발전 방향은.

(안광무 의장) 공공보건의료의 발전은 단순히 공공의료기관을 늘리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공공보건의료시스템이 지속 가능하도록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즉 민간의료기관을 지금처럼 강제 동원할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수가 결정 구조를 합리적으로 개선한 연후에 보장성을 높이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원가 이하의 수가는 개선될 기미조차 없다. 보장성도 형편없다. 그저 진주의료원처럼 의미도 없는 공공의료기관 숫자만 늘리는 것이 ‘의료의 공공성 강화’인양 주장해선 안 된다.

현재 공공보건의료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는 곳은 공공의료기관이 아니라 민간의료기관(90%이상)이다. 민간의료기관은 순수 민간재원으로 건물을 설립하고 시설과 장비를 마련했음에도 권리는 말할 것도 없고 이에 대한 인센티브나 특별 보상조차 없다. 오히려 사익만을 추구하는 사악한 의료기관으로 낙인찍는 병적인 사회다. 물적·인적 지원에서도 차별당하고 있다.

요즘의 공공성 개념은 멸사봉공이 아니라 활사개공(活私開公)이어야 한다. 즉 사(私)를 살려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교육과 같은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만 의료영역도 예외는 아니다.

건강하고 건전한 의료 생태계가 조성되기 위해서는 공공보건의료, 민간의료기관, 공공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제주 녹지국제병원은 비록 많은 우려를 낳고 있지만 이런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Q. 저출산에 대해서는 안 회장님이 하실 말씀이 많을 것 같다.

(안치석 회장) 경제가 살고 출산율이 올라가서 산부인과가 함께 잘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올해 상반기 합계 출산율은 0.97이라고 한다.

저출산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급감하고 있다. 통계청의 2017년 출산통계를 보면 2016년 출생아 수는 35만 7800명으로 전년보다 11.9%나 감소했다. 합계 출산율도 1.05로 역대 최저다. 충북도 예외는 아니다. 청주시의 경우 2016년 6941명 태어났는데, 그보다 2년 전 출생아 8526명보다 1600여 명 줄어든 것이다.

산모의 평균 나이가 올라간 것도 원인이다. 2017년 산모의 평균 출산연령은 32.6세이다. 35세 이상 고령산모가 많이 늘었다. 산모가 나이들 수록 고위험산모 및 모성사망의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저출산의 여파로 분만이 가능한 의료기관은 현재 520여개로 10년 전에 비해 반으로 줄었다. 충북은 23개 병의원이 분만을 담당하고 있으며, 단양군, 괴산군, 보은군이 분만 취약지역이다.

분만을 포기하는 산부인과 의사가 계속 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산부인과 전문의 3명 중 1명은 현재 분만을 하지 않고 있다. 출산을 담당하는 산부인과 의사가 줄어들어 조만간 산모에게 재앙이 될까 두렵다.

분만과 출산은 의사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야간 당직의사, 마취과, 소아과 의사의 백업이 안전한 분만을 위해 필수적이다. 분만실, 신생아실, 병동 간호사가 3교대로 필요하고 식당과 청소 등 보조 인력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

저수가로 인한 낮은 분만비도 산부인과를 힘들게 한다. 산부인과는 피를 많이 보는 과이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무과실 또는 불가항력적 분만사고가 제법 많다. 전후사정을 따져 봐야 하는데 나쁜 결과가 생기면 사회와 정부는 손가락질하고 책임을 묻기만 한다.

산부인과 의사에게 분만장을 떠나라고 한다. 현재 고군분투하고 있는 분만 의사에게도 획기적인 지원과 보호를 생각해 보자. 알아서 살아가라고 하면 분만포기를 더 이상 돌이키기 어려울 것이다.

분만 가능한 병의원을 지역별로 배치하고 기존의 분만 전문 병의원에게도 ‘고위험산모 신생아 통합치료센터’ 같은 시설과 장비, 운영과 인력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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