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女의병장 윤희순 충북-강원 “우리가 기릴래”
최초 女의병장 윤희순 충북-강원 “우리가 기릴래”
  • 이재표
  • 승인 2019.01.1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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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보훈처 기록에 본적 충북…전국 첫 여성독립운동가 전시실 조성
강원-서울이 고향 춘천으로 출가…1990년 동상건립, 매년 추모사업도
2018년 KBS1 천상의 컬렉션에 소개된 구한말 최초의 여성의병장 윤희순. 강원도 춘천시는 20여년 전부터 윤 의병장을 선양해 왔다. 충북도 윤 의병장릐 본적이 충주인 점을 들어 선양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KBS 화면 갈무리
2018년 KBS1 천상의 컬렉션에 소개된 구한말 최초의 여성의병장 윤희순. 강원도 춘천시는 20여년 전부터 윤 의병장을 선양해 왔다. 충북도 윤 의병장릐 본적이 충주인 점을 들어 선양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KBS 화면 갈무리

<충북의 여성독립운동가-여성의병장 윤희순>

충북과 강원이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최초의 여성 의병장이 자기 지역 출신이라며 선양(宣揚) 경쟁이라도 벌일 기세다. 그 주인공 윤희순(1860~1935)은 영화 <암살> 속 안옥윤이나 TVN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고애신 같은 여자 의병이다.

다른 것은 윤희순이 의병부대의 의병이 아니라 의병장으로서 여성의병대를 이끌었고, 일종의 군가(軍歌)라고 할 수 있는 의병가사집까지 썼다는 점이다.

충북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을 기념해 전국 최초로 여성독립운동가 전시실을 만든다. 815일 광복절에 개관 예정인 이 전시실에는 윤희순 의병장 등 충북연고 여성독립운동가 7명의 흉상과 기록 등을 전시할 계획이다.

1월초 이와 같은 내용이 보도되자 20년 전부터 윤희순 의병장을 기려온 강원도 춘천에서 발끈하고 있다. 강원지역 한 신문은 충북에 주도권을 빼앗길 우려가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윤희순 의병장은 어떤 인물일까? 가부장제가 지배하던 조선에서 총을 들고 나선 진취적 여성상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기에 충분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원과 충북만 선양 경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나서도 모자랄 정도다.

여성독립운동가의 서훈이 남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들여다 봐야한다. 건국훈장 5개 등급 중 3등급인 유관순 열사의 서훈을 더 격상시켜야한다는 국민청원이 시도된 적도 있다. 유관순 열사는 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 중에서 독립장을 받았다.

여성의병장 윤희순에게는 5등급인 애족장이 추서됐다. 아직까지는 우리에게 생소한 윤희순 의병장은 어떤 인물일까?

20181027, KBS1의 역사교양프로그램 <천상의 컬렉션>에서는 뮤지컬배우 최우리가 윤희순 의병가사집을 소개했다.

1895,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선포되자 전국에서 반일감정이 들끓었다. 각지에서 의병이 들고 일어섰고 윤희순의 시아버지 유홍석(의병장 유인석의 사촌동생)도 강원도 춘성군(현 춘천시)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윤희순도 결연히 붓을 들어 강경한 표현으로 일본을 꾸짖었다. 봉건사회 조선에서는 파격적인 행보였다.

19071908년에는 강원도 춘성군(현 춘천시) 가정리 여우천 골짜기에서 안사람 의병단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부르게 했고 30여명의 여성들을 모았다. 이들은 남성과 같이 고된 훈련도 받았고 화약과 총을 직접 제조하눈가 하면 남장을 하고 일본의 기밀을 빼오기도 했다.

현재 강원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의병가사집에는 윤희순이 쓴 안사람 의병가를 포함해 의병군가, 병정가 등이 수록돼 있다.

윤희순의 독립활동은 계속됐다. 1910년 한일합방이 체결되자 19114, 가족들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한 뒤 노학당이라는 학교를 설립해 반일 인재를 양성한다. 이곳에서는 3년 만에 50여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

40여년을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윤희순 의병장은 1935, 만주 봉천성 해성현 묘관둔에서 숨을 거둔다. 일본군에 붙잡힌 아들이 고문으로 숨지자 애통해 하다가 숨을 생을 마감한 것이다.
 

춘천, 충북은 본적일뿐 서울서 태어나

윤희순 의병장은 의병가사를 지어 부르게 했다. 사진=KBS화면 갈무리
윤희순 의병장은 의병가사를 지어 부르게 했다. 사진=KBS화면 갈무리

대한민국정부는 윤희순 의병장의 공을 기려 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20여 년 전, 윤 의병장 선양사업에 뛰어든 것은 강원도와 춘천시다. 윤 의병장이 16세에 춘천으로 시집을 와서 중국 망명 전까지 춘천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윤 의사는 1990, 춘천시 등의 추천으로 대통령표창에서 건국훈장 애족장으로 상훈이 승격됐으며, 그해 11월에는 춘천에 기념동상이 건립됐다. 애국지사 윤희순의사 기념사업회도 창립돼 매년 10월 춘천에서 추모제도 진행하고 있다.

20089월에는 국가보훈처가 발표하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면서 강원도와 춘천에서는 윤희순 의병장을 아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충북이 윤희순 의병장을 충북의 여성독립운동가라고 주장하고 나서자 강원도의 식자층 여론이 술렁이고 있다.

강원도민일보는 114일자 보도에서 윤희순 의사는 학술문헌상 서울(혹은 경기구리)에서 태어나 16세가 되던 해에 춘천 의병장 유홍석의 장남 유제원과 결혼하며 춘천에 거주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강원도민일보는 또 문헌과 달리 국가보훈처에서 제공하는 국가독립유공 서훈록에 윤 의사의 출생지를 충북으로 표기하고 있어 윤희순 의사 선양사업의 주도권 마저 자칫 충북에 빼앗길 우려까지 낳고 있다고 덧붙였다.

춘천시의회도 윤의순 의병장 선양사업을 충북에 빼앗기지 않겠다며 김지숙 춘천시의회 의원 등이 춘천시 윤희순 의병장 지원 조례(가칭)’를 발의해 2월 중 상정할 예정이다.
 

충북, 국가보훈처 기록은 충주시 엄정면

구가보훈처 독립유공자 서훈록에는 윤의순 의병장의 본적을 중원(충주), 주소를 춘성(춘천)으로 표기하고 있다. 사진=국가보훈처 누리집 갈무리
구가보훈처 독립유공자 서훈록에는 윤의순 의병장의 본적을 중원(충주), 주소를 춘성(춘천)으로 표기하고 있다. 사진=국가보훈처 누리집 갈무리

충북은 충북이 본적이든 고향이든 연고성이 있는 것이 분명한 만큼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실제 국가보훈처 독립운동가 서훈록에는 윤이순 의병장에 대해 본적은 충북 중원군 엄정면 신만리 740’, 주소는 강원 춘성군 남면 발산리로 기록돼있다.

전시시설을 추진하고 있는 충북도 여성정책관실 관계자는 충북연고 7명 독립운동가의 명단은 국가유공자를 관리하고 있는 도 복지정책과에서 받았을 뿐 따로 고증을 거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독립운동사 전문가인 박걸순 충북대 사학과 교수는 국가보훈처에서 윤의순 의병장을 충북의 독립운동가로 분류해 온 것은 맞다면서도 독립운동가로서 활동이 강원도 춘천과 만주지역에서 이뤄진 만큼 강원지역에서 그를 선양해온 것도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박걸순 교수는 다만 역사의 위인을 기리는 사업이 특정지역의 전유물이 돼야할 이유는 없다면서 충북에서 윤희순 의병장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던 만큼 이번 일이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충북도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지역 출신 여성 독립운동가 7명의 흉상과 활동상 등을 알리는 전시실을 청주시 상당구 방서동 미래여성플라자에 조성할 예정이다.

이 사업은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행정안전부 공모 사업에 선정돼 추진되는 것이다. 모두 2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돼 광복 74주년인 오는 815일 개관한다.

이 전시실에는 고 신순호 여사(19222009·청주박재복 여사(19181998·영동어윤희 여사(18801961·충주오건해 여사(18941963·청주이국영 여사(19211956·청주임수명 여사(18941924·진천윤희순 여사(18601935·충주) 등 여성독립운동가들 7명의 흉상이 설치된다.

충북도 관계자는 여성 독립운동가들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독립을 위해 헌신했지만 이들을 알리는 시설은 거의 없다지역 여성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하고 기념하기 위해 이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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