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뭉스러울지언정 음흉하진 않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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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표
  • 승인 2019.01.25 16: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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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를 중심으로 본 충청인의 기질에 대한 충청도스타일 小考

이 글은 2018년 12월, 충북학연구소가 발행한 『충북학』 20집에 실린 원고를 바탕으로 일부 수정한 내용입니다. 전체 원고분량이 1만4300자 정도로 다소 긴 글입니다.

 

전체 희극인(코미디언, 개그맨) 중 약 30%가 충청도 사람이라는 통계가 있다. 사진 위 왼쪽부터 최양락 김학래 임하룡 신동엽 남희석 이영자 정종철 허민 오나미. 사진=뉴시스 편집
전체 희극인(코미디언, 개그맨) 중 약 30%가 충청도 사람이라는 통계가 있다. 사진 위 왼쪽부터 최양락 김학래 임하룡 신동엽 남희석 이영자 정종철 허민 오나미. 사진=뉴시스 편집

휴전선 이북은 모르더라도 면적 10029535ha에 불과한 남한 땅 17개 시도에 과연 지역색(地域色)’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걸까? 여기에서 지역색이라는 것은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기질이나 말투 등의 차이를 일컫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땅덩어리만 좁은 것(면적 세계 107, 인구 27)이 아니라 민족적으로도 비교적 단일민족에 가깝고, 용모도 대개 검은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가졌다. 또 하나의 말과 글을 사용하니 벽안(碧眼)의 외국인들이 볼 때는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아 보인다고 한다.

그러니 남한 내에서 생김새를 가지고 지역을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종학자들에 따르면 남한 주민의 다수(70% 안팎)는 북방계(몽골로이드) 혈통이요, 나머지는 남방계라고 한다.

북방계의 신체적 특징으로 대체로 황색에 가까운 피부와 몽골주름, 뻣뻣하고 검은 모발, 광대뼈가 솟은 넓적한 얼굴, 많지 않은 체모, 몽골반점 등을 든다. 이에 반해 남방계는 눈이 크고 쌍꺼풀이 발달했으며 호리호리한 몸매에 팔과 다리 역시 길다고 한다.

다만 어느 지역에는 북방계가, 어느 지역에는 남방계가 많다는 식으로 분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거나 큰 의미가 없다. 외형으로 구분될 만큼 지역적인 차이가 크지 않다는 얘기다. 이에 반해 말투의 차이는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말투의 차이는 사회정치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지리적 조건에 의해 만들어지고 더욱 공고해졌을 것이다.

전라도와 경상도 사투리는 억양이 강해서 누구나 구분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충청도 사람들은 말과 행동이 느리다는 통설이 있다. 전라도나 경상도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타 지역에 오래 살아도 변함없이 고향 사투리를 사용한다.

반면 충청도 사람인 나는 타 지역 사투리에 내 말투가 쉽게 간섭을 당했던 경험이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대학교 2학년 때 전라남도 함평군이 고향인 후배와 4개월 동안 자취를 했는데, 여름방학 때 집에 돌아와 부모님을 놀라게 했던 적이 있다.

오메~”라는 감탄사와 엄마, 밥은 드셨는가?” 같은 존댓말도 아니고 반말도 아닌 것처럼 들리는 함평 사투리가 입에 밴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대략 50년 전까지만 해도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다른 지역 사람들을 직간접적으로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산촌에서 태어난 사람은 숙명처럼 가족노동에 편입됐고 기껏해야 고개 너머에서 시집 온 여자와 살림을 꾸리고 동네 논밭에서 평생을 일하다가 앞산이 아니면 뒷산에 묻혔다.

엄마, 밥은 드셨는가?”는 우리 식구가 직접 들어본 처음이자 마지막 함평 사투리였을 것이다. ‘서울구경이라는 노래가 있을 정도로 서울도 구경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던 시절이었다. 나 역시 어린 시절에 서울사람들은 눈을 뜨고 있어도 코를 베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서울도 생소한데 전라도 함평은 어땠겠는가.

도시에 산업단지의 규모가 커지고 농촌의 처녀총각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기 시작한 1970년대 이전의 한국사회는 농업의 비중이 가장 컸다. 텔레비전이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타 지역에 대한 간접적인 정보접촉도 이때 매스미디어가 대중화되면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북한말을 연상케 하는 강원도 사투리의 특이한 억양을 전 국민의 귀에 익숙하게 만든 것은 TV드라마나 코미디 프로의 영향이 크다. 그런데 충북 단양이나 제천 등 강원도 연접지역의 말투도 강원도 사투리와 비슷하다. 같은 충북이라고 하더라도 예전에는 청주사람이 단양사람을 만날 일이 흔치 않았으니 TV에서 먼저 강원도 사투리를 접하고 나중에 단양 사투리를 직접 듣게 됐다.

201812월 현재, KBS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어멍의 바당>어머니의 바다를 제주어로 표현한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대사의 95%가 제주도 사투리다. 배우들이 제주 사투리로 말하는 대사는 자막으로 처리할 정도니 이라는 지리적 조건이 제주사투리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기질도 말투의 차이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정치나 경제, 사회, 문화적인 이유나 지형, 기후 같은 자연적 요인에 의해 급진적이거나 서서히 지역적 기질이 형성됐을 것이다. 또 시간을 두고 공고화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충청도 사람이다. 부친의 선대는 대대로 충남 천안시 목천면에서 살아왔다. 아버지는 중학교 때 청주로 와서 대학교까지 학업을 마쳤고 청주와 보은, 진천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어머니는 오리지널 청주사람이다.

나 역시 대학시절 5년 간 청주를 벗어났고 결혼과 함께 2년 정도 서울사람이 되어보려 노력했던 것을 빼고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살고 있다. 서울에 살고 싶어 했던 아내도 청주사람이다.

나는 지역감정을 이용한 양당구도가 대한민국 정치를 한동안 삼류로 만들었으며, 지금도 그 폐해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역색을 구분하고 부추기는 것을 경계한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가 대한민국을 후퇴시켰다. 충청도를 대표하는 정치인은 스스로 충청도가 핫바지 취급을 받는다고 비하했다. 모두 정치적으로 지역을 악용한 사례다.

지역감정이 싫어서 사투리로 사람을 예단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런데 요즘 말로 들이대는 사람보다는 느긋한 사람을 대할 때 편안하다. 좋고 싫음이 아니라 같은 지역색에서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조동욱 충북도립대 교수가 2015년 1월21일, 한국통신학회 동계학술대회서
조동욱 충북도립대 교수가 2015년 1월21일, 한국통신학회 동계학술대회서 "말끝을 늘이는 충청도 사람의 느린 말투가 편안한 느낌을 준다"는 연구결괄ㄹ 발표했다. 사진=세종경제뉴스DB

충청도 양반은 경쟁력이 있나?

충청도 사람들의 말투와 기질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살펴보자. 말투는 성격이나 기질을 반영할 테고, 말투를 통해 성격과 기질에 대한 선입견을 갖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라도나 경상도 사투리의 억양이 강한 것처럼 두 지역의 기질 또한 색깔이 분명하고 직선적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말이 빠른 만큼 성격도 급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기준은 내가 늘 겪어보는 충청도 사람들에 비해서.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전라도, 경상도 사람이라고 해서 다 직선적이고 성격이 급하겠는가?

이에 반해 충청도 사투리는 느긋함이 느껴질 정도로 느리다. 이를 희화한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부자(父子)가 산에 올라가는데, 아들이 산 위에서 아버지를 향해 굴러 떨어지는 바윗돌을 보고 피하라는 말 대신 아부지이, 도올 구울러와유~”라고 했다는 것이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느릿한 말투 때문에 봉변을 당하는 웃지 못 할 장면이 그려진다. 충청도 사람들의 굼뜬 언행을 비웃는 얘기다. 어른이 되어서 타 지역 사람들로부터도 이 이야기를 들었지만 사실은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이야기다.

충청도 사람이라고 해서 다 성격이 느긋하고 행동이 굼뜨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느리고 끝이 늘어지는 말투가 그럴 거라는 선입견을 갖게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

이를 입증하는 연구결과가 있다. 충청도 사람을 충청도 양반이라고 부르는 것은 느린 끝말때문이라는 것이다. 소리가 주는 신호를 분석하는 생체신호분석 전문가인 조동욱 충북도립대 교수가 2015121, 한국통신학회 동계학술대회서 발표한 내용이다.

조동욱 교수는 음성분석기인 프라트(Pratt)’를 이용해 실험 대상자들의 말끝 길이를 세 가지로 나눠 분석한 뒤 설문조사를 통해 이 세 가지 목소리에 관한 다양한 느낌을 분석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할 때 끝소리인 를 짧게 끊은 경우(0.1초대)와 적절히 끊은 경우(0.2초대), 그리고 길게 끈 경우(0.3초대)로 나눠 진행했다. 이 결과 말끝을 길게 할 경우 전체 문장을 말하는 데 걸린 시간이 0.792424초로 말끝을 짧게 할 때인 0.425280초보다 느려졌다.

말끝을 길게 하면 전체적으로 말의 속도가 느려지고, 말끝의 강세가 떨어져 거부감이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드러움과 정겨움까지 느끼게 한다는 게 조 교수의 설명이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남자대학생 20명을 대상으로 세 가지, 안녕하세요에 대한 반응을 물었다. 20명 가운데 70%14명이 말을 길게 끌 때 가장 듣기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적절히 끊은 경우를 선택한 사람도 6명 있었지만, 짧게 끊은 경우를 선호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설문조사에 참가한 사람들이 말끝을 길게 끄는 것을 선호한 이유는 정이 있어 보이고, 예의 바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꼽았다. 반면 이들은 말끝을 짧게 하면 거칠고 냉정한 느낌이 든다고 답했다.

조동욱 교수는 충청도 말은 느릿느릿하면서 말끝을 길게 끄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강력한 지도자의 힘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정서적이고 친화적인 느낌의 말을 하는 충청도 사람을 이런 이유로 예부터 양반이라고 부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말끝이 짧은 것보다는 길고 느린 것이 편안하고 안정적일 것이라는 상식은 과학으로도 입증된 셈이다. 또 하나, 실험에 응한 복학생 20명도 충북사람이거나 충북에서 대학생활을 해서 느리고 끄는 충청도 말투에 대한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충청도 사람은 말이 느리고 행동도 굼뜨다는 것은 통설이고 어느 정도 과학적인근거가 있어 보인다. 다만 이를 변증(辨證)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니, 그냥 그러려니 웃어넘기며 살아왔던 것 같다. 충청도 사람이어서 그런가?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그냥 웃어보자는 수준이다. 예컨대 충청도 말이 발화(發話) 속도는 느리지만 문장구조가 간결하기 때문에 의사전달구조는 빠르고 간편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 역시 그저 우스갯소리 수준이다.

예컨대 표준어로 너는 보신탕을 먹니?”라는 말을 충청도 사람은 개 혀?”라는 두 음절로 말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따지자면 경상도 남자들은 밤늦게 퇴근해서 아내에게 던지는 (아이)?” “자자!” 이 두 마디가 전부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말은 느려도 성질이 급하고 동작은 빠르다는 얘기도 있는데 이것도 말이 느린 것에 비해 동작은 큰 차이가 없다면 모를까, 충청도가 타 지역 사람들에 비해 성질이 급하고 동작이 빠르다는 말에는 충청도 사람들 스스로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쯤 되면 충청도 양반이라는 표현의 속뜻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조선시대에 서울과 가까운 충청도에 양반이 많이 살았다는 역사적인 사실에서 이 말이 유래했다는데 이 역시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

190941, 민적법(民籍法)이 새로 시행됐고 그 해 829일부터 1910829일까지 전국 호구조사를 실시했다. 이 결과 총 가구 수 2894777호 가운데 양반은 54217호로, 전체 인구의 1.9%에 불과했다고 한다.

1896년부터 조선은 8도에서 13도제가 됐는데 그나마 충청남도가 전체 가구 수의 10.3%로 가장 양반이 많았고, 그 외 양반 비율이 1%가 넘은 지역은 충청북도(4.5%), 경상북도(3.8%), 한성(2.1%) 강원도(1.1%), 전라북도(1%) 순이었다고 한다. 그 뒤로는 경기도(0.8%), 함경북도(0.8%), 전라남도(0.5%), 경상남도(0.4%), 함경남도(0.4%) 순이며 최하위는 황해도(0.3%), 평안북도(0.2%), 평안남도(0.1%)였다.

양반의 숫자가 많은 고을도 경북 경주, 충남 목천, 경북 풍기, 충남 공주 순이었다고 하니 충청도 양반이란 표현은 실제로 충청도의 양반비율이 높았던 데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유래가 아니라 속뜻이다. 충청도 사람을 충청도 양반이라고 부르는 것이 충청도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점잖다는 뜻인지, 아니면 충청도 사람은 말과 행동이 야무지지 못해 다루기 쉽다는 얘기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복합적으로 사용됐을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양반이라는 계층은 예나 지금이나 실용(實用)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양반은 뒷짐만 지고 생산 활동은 하지 않는 계층이었다. 체면과 법도만 따질 뿐 실속은 없는 부류다. 계급적으로는 사라져버린 현대적 의미의 양반 역시 아무래도 부정적이다. “이 양반이라는 호칭은 누가 뭐래도 시비를 걸자는 소리로 들린다.
 

보은 가는 길에 붙어있던 현수막.
보은 가는 길에 붙어있던 현수막.

그렇게 바쁘면 어제 오지 그랬슈

충청도 양반의 의미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여기까지는 들어넘길 수 있다. 적어도 충청도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충청도 사람들이 뒤통수치는 걸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사정이 달라진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 초였던 것 같다. 나는 당시 검찰경찰을 출입(취재)하는 기자였다. 전국구 조폭 두목들을 잡아넣어 명성을 떨치던 검사가 청주지방검찰청에 발령을 받았다. 그는 청주에 와서는 토호세력들의 비리를 색출하는데 몰두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검사와 기자들이 술로 ()싸움을 벌이던 시절이었다. 술기운이 불콰해지면 그가 자주 내뱉던 말 중에 하나가 바로 충청도 들은 뒤통수치는 걸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좋은 얘기도 자주 들으면 짜증이 날판에 원조 충청도 사람이 그런 얘기를 종종 듣자니 부아가 치밀었다.

검사는 임명장에 따라 전국의 검찰청을 떠도는 직업이니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그런 말을 했을 터였다. 하루는 내가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그가 이 기자는 최양락이 수박 판 이야기 알아?”라며 장광설(長廣舌)’을 늘어놓았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숫자는 가물가물하다. 단 스토리는 이렇다.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최양락이 국도변에서 수박을 파는 상황을 설정했단다. 수박더미 앞에는 한 통에 5000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지나가던 타지 사람이 차를 세우고 물었다. “이거 3000원에 주면 안 돼요?” 충청도 사람인 최양락은 무어라고 대답했을까? 고개를 살짝 돌렸단다. 아주 외면한 것도 아니었단다. 그리고는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마치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듯이 냅 둬유, 개나 주게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냥 웃고 말았다. 다른 지역이었다면 그렇게 팔 수 없는 이유를 조곤조곤 설명하거나 버럭 성질을 냈을 것이다. 충청도 사람들은 남 앞에 대놓고 (No)’를 말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의견과 판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걸 밝히는 타이밍이 조금 더딜 뿐이다.

최양락이 수박 판 이야기를 듣고 나니 유사한 상황이 생활 속에서 종종 발생함을 깨닫게 됐다. 여럿이(대략 일고여덟 명이) 식사를 하러 갈 때 메뉴를 정하자고 하면 대개가 아무 거나 먹자고 한다. “점심 한 끼 그냥 대충 때우면 되지라고 말하지만 무엇으로 대충 때울지는 여간해서 특정(特定)하지 않는 편이다.

누군가 짜장면이나 먹자고 말한다. 진짜로 짜장면을 먹겠다는 것이 아니라 일단 중국집으로 가자는 얘기다. 결국 삼삼오오 짝을 지어 중국집으로 이동한다. 앞에 가는 사람들은 진짜 중국요리가 먹고 싶은 모둠이다. 반면 뒤에 가는 모둠은 끌려가는 마음이다. 뒤에 가는 모둠 속에 있던 나는 누군가 아이C, 아침도 안 먹었는데라며 혼자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들으라고 하는 얘기는 아닌 듯했지만 분명히 내 귀에 들렸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중국집에 가서도 막상 짜장면이냐 짬뽕이냐를 놓고 잠시 토론한다. “점심 한 끼를 대충 때우는 거니까 빨리 나오게 메뉴를 통일하자고 한다. 불행하게도 메뉴가 짬뽕으로 통일된 뒤에야 나는 맵고 짠 거 싫어하는데라고 말끝을 흐리는 사람이 있었다. 이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분명한 실화다. 맵고 짠 것을 싫어한다고 말한 사람이 바로 나였으니까.

충청도 사람들을 변론하자면 충청도 사람들은 성격이 유순하고 모질지 않아서대놓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편이다. 뒤통수를 친다고 하는데 앞통수를 치지 못해서 뒤통수를 치는 것일 뿐이다. 이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불쾌함을 느끼는 셈이다.

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충청도가 가장 힘들다고 말하는 것을 수차례 들었다. 아니면 아니라고 빨리 말해주면 좋은데 YesNo가 불분명해서 헛힘을 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들도 충청도가 제일 헷갈린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앞에서는 전부 다 찍어줄 것처럼 말하는데 정작 표는 안 나온다는 얘기다. 노련한 정치인들은 악수의 강도로 상대의 진심을 알아낸다고 한다. 하지만 몇 번은 떨어져봐야 비로소 체득할 수 있는 내공이다.

충청도(충북) 사람들이 뒤통수치는 것을 좋아한다는 가설을 변증하기 위해 기자들이 충북의 무고사범 비율이 타 지역보다 높다거나 무고사범이 해마다 늘고 있다는 식의 기사를 쓰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실제로 2009년의 한 기사는 충북의 무고사범은 2004183, 2005185, 2006243, 2007188, 지난해 199, 올 들어 7월말 현재 137명 등이 적발되는 등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2003년부터 법원의 공판중심주의가 강화되면서 피고인이 검찰조사 당시의 진술을 번복함에 따라 무죄 선고비율이 높아졌고, 무고죄도 따라서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어찌 됐든 충청도 사람들은 대놓고 말하기보다 돌려서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것이 충청도의 독특한 화법(話法)’으로 굳어진 것이다. 직유보다는 은유가 많고 비판보다는 풍자에 능하다. 이는 곧 코미디나 개그 같은 희극(喜劇)’의 핵심요소다.

충청도식 화법은 충청도 사람이 생각해도 기발하다. 올 추석 무렵에 보은을 거쳐 옥천까지 국도로 차를 몰고 다녀올 일이 있었다. 도로 곳곳에 귀성길에 과속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문구는 그러게 비쁘면 어제 오지 그랬슈였다. 충청도가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해학이다.

희극인들 중에, 특히 스타급 희극인 중에 충청도 사람이 유난히 많다는 것은 정설이다. ‘충청도 사단은 실제로 존재한다. 2014411일자, 경향신문의 기획기사 <충청도는 어떻게 대한민국을 웃겼나>는 그 실태와 원인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2004KBS, MBC 희극인실 자체 조사에서 해당 방송사에 출연하는 개그맨 중 한 기수별로 40% 정도가 충청도 출신인 것으로 밝혀졌고, 코미디언협회의 자체 조사에서도 30%가 충청도 출신으로 집계됐다는 것이다. 충청도 인구가 7% 남짓한 것과 비교할 때 이는 분명 유의미한 통계다.

경향신문은 대한민국 코미디사를 수놓은 스타들 가운데 눈에 띄는 인물들은 상당수가 충청도 출신이라며 세대를 구분해 소개한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원로 코미디언 남성남을 비롯해 자니윤, 신소걸, 이상용 등 노장들을 시작으로 김학래, 최양락, 이경래, 배영만, 김명덕, 임하룡, 최병서 등 중견 코미디언들이 있다.

이 뒤를 홍기훈, 서경석, 이영자, 신동엽, 남희석, 김준호 등이 잇고 <개그콘서트>에 등장하는 쌍둥이이상호·이상민 형제와 오나미, 이상구, 류근지, 안소미 그리고 <코미디빅리그> 장동민 등이 다 충청도 출신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전부가 아니다. 언뜻 봐도 경향신문 기사에는 충북에서만 청주 출신의 서세원, 김원구, 이정수, 허민, 제천 출신의 정종철 등이 빠졌다.
경향신문은 이들의 응집력이 예전부터 대단해 1980년대엔 희극인들을 중심으로 충청 연예인단을 결성해 고향의 각종 축제 때마다 지원을 나갔다며 당시 코미디협회장이었던 엄용수의 말을 인용해 부지불식간에 조용히 대세를 장악하는 스타일 역시 충청도의 기질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영원한 2인자, 충청도 핫바지론의 주인공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018년 6월23일 향년 92새로 별세했다. 사진=뉴시스
영원한 2인자, 충청도 핫바지론의 주인공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018년 6월23일 향년 92새로 별세했다. 사진=뉴시스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대라서?

기질과 말투·화법은 상호 작용하면서 지역색을 만든다. 그렇다면 충청도 사람들이 직설화법 대신에 돌려서 말하기, 비판보다는 풍자, 은유보다는 풍자에 능하게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경향신문은 1981년 데뷔한 뒤 KBS에서 <유머 1번지> <한바탕 웃음으로> <개그콘서트> 등의 대본을 썼던 장덕균 작가의 말을 인용해 설명한다. 충청도는 지역적으로 제주도를 제외한 대한민국 전 지역과 맞닿아있는데, 이런 지정학적 요인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장덕균 작가는 여러 지역과 맞닿았다는 것은 교류의 통로이기도 하지만 분쟁의 한가운데에 내몰려 있기도 했다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생존을 위해 자신의 뜻을 직접 드러내는 대신 은유적이고 에두르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발달했다고 설명했다.

직접적인 권유를 하기보다는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편이라는 얘기다. 많이 들어본 얘기다. 적어도 청주는 백제와 신라의 접전지역이었기 때문에 속내를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다. 심지어는 낮에는 백제, 밤에는 신라였다고까지 이야기했다.

삼국시대 청주의 지명이 백제의 상당현(上黨縣), 낭비성(娘臂城), 낭자곡(娘子谷) 등이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서원경(西原京) 또는 서원소경이 되었으니 영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다. 청주시 내수읍 비중리에는 고구려 양식의 불상까지 있으니 청주가 삼국의 접경이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낮과 밤으로 지배하는 국가가 바뀌었다는 것은 분명히 과장스러워 보인다. 함부로 속내를 내비치기 어려운 상황이 없었던 것은 아니겠으나 그것이 충청인의 기질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영향의 강도와 지속성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더구나 국경은 ()’에 가깝기 때문에 충청도라는 ()’ 전체가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6·25를 배경으로도 비슷한 종류의 이야기가 있다. 낮에는 국군, 밤에는 인민군 세상이 되는 상황에서 태극기와 인공기를 다 준비해 두고 상황에 따라 만세를 부르는 상황을 연출한 영화장면도 있다. ‘백제와 신라 국경설은 6·25 당시의 실화를 바탕으로 후세에 창작됐을 수도 있다.

삼국시대 접경지였기 때문에 처세가 곤란했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라 할지라도 1500년 동안 그 영향력이 유지됐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얘기다.

경향신문은 천안 츨신의 코미디언 김학래의 말을 통해 다른 설명을 내놓는다. 자연환경이 긍정적 사고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분석이다. 김학래는 충청도는 예로부터 홍수가 오고 가뭄이 와도 그럭저럭 농사가 됐기 때문에 긍정적인 정서가 깔려 있다면서 게다가 양반 가문이 많아 여유와 낙관적인 마음이 몸에 밴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예전에 방송됐던 <유머 1번지>괜찮아유는 이 같은 충청도의 낙관성을 집약해 보여준 코너다. 당시 이 코너에 출연한 김학래는 그릇이 깨지는 상황에서도 충청도 사람들은 냅둬유~. 깨지니까 그릇이지 튀어오르면 공이지유~’ 라고 대답한다면서 이런 긍정의 기질이 유머로 발현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찌 됐든 충청도는 특유의 기질로 욕을 먹지 않도록 중간에 서고, 승자의 편에 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1987년 직선제가 부활한 이후 30여 년 동안 일곱 차례 대통령선거에서 모두 그랬다.

특히 선거에 의해 역사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진 1997, 보수적인 충북의 표심이 돌아서 김대중 후보를 지지하는 반전이 일어난다. 이때부터 특히 충북의 표심이 당선 결과를 적중하게 된다. 결국 충북의 표심이 전국 표심을 읽는 바로미터라거나, 충북의 투표성향이 선거의 향배를 결정한다는 식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지역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게 된다,

현대정치사를 통해 사회정치적으로 중간자,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는 충청인의 기질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자. 1970년대 이후 약 50년 동안 지역감정이라고 부르는 투표심리가 동서대립구도를 형성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양대 축은 영남과 호남,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영남과 호남기반의 정치세력(정당)이다. 호남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았고 그 동서대립의 사이에 충청(충북)이 끼어있었다.

상대적으로 호남기반의 정당은 중도 또는 중도 좌, 영남기반의 정당은 보수성향이 강하지만 이것만 놓고 양 지역의 이념적 성향을 단정할 수는 없다. 지역감정의 뿌리가 집권을 위한 이해관계, 이합집산에 있기 때문이다.

인물을 중심으로 보면 장기집권에 철권통치를 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1980년부터 시작된 양김(兩金)’, 혹은 ‘3(三金)’ 시대가 지역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던 시기였다.

3김 시대의 절정기는 야당지도자였던 김대중(전남 목포) 평화민주당 총재와 김영삼(부산) 통일민주당 총재가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노태우(대구) 후보와 격돌한 19871216, 13대 대통령선거에서 비롯됐다.

이 선거에는 박정희 시대 영원한 2인자였던 김종필(충남 부여)박정희 공화당(만주공화당)’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신민주공화당후보로 출마했으니 이때가 3김의 절정기였다고 보는 게 맞다.

13대 대통령선거는 박종철 고문치사에서부터 이한열 최루탄 피격사망으로 이어지는 ‘610민주항쟁의 연장선상에서 치러졌다. 201611, 100만 촛불이 모여 대통령 탄핵을 외쳤다면 1987년 당시는 호헌철폐, 직선제 개헌을 주장했으니 직선제를 통해 치르는 선거에서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은 뜨거웠다.

야권지지 세력은 영호남의 양김 단일화를 통한 필승을 바랐지만 양김이 서로 승리를 장담하며 출마한 결과는 노태우 36.64%, 김영삼 28.03%, 김대중 27.04%, 김종필 8.06%, 신군부 정권의 연장이었다.

영남은 노태우김영삼 후보로 표가 갈렸지만 광주는 94.41%, 전남은 90.28%가 김대중 후보를 선택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10% 득표에도 실패한 김종필 후보마저도 고향 충남에서는 45.03%1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19921218일에 치른 14대 대통령선거의 결과는 말해 무엇 하랴.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의 민주정의당과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해 ‘3당야합이라는 민주자유당이 탄생한 가운데 김영삼 후보가 여당후보로 나섰으니 말이다.

41.96%로 김영삼 후보가 당선됐고 김대중 후보는 33.82%를 얻었다. 김영삼은 부산에서 73.34%, 경남에서 72.31%, 경북에서 64.72%를 얻었다. 김대중 후보는 광주에서 95.84%, 전남 92.15%, 전북 89.13%로 호남프레임에 갇혔다.

김종필의 영원한 2인자 인생도 다시 이어진다. 이듬해인 1993년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했고 1995년 지방자치 부활 후 첫 단체장 선거에서 녹색바람을 일으킨다. 이어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는 이른바 ‘DJP연대로 대통령선거에서만 세 번 낙선하고 정계를 떠났던 김대중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킨다.

5년 전 이미 3당 야합을 경험했던 터라 충격은 덜했지만 DJJP가 손을 잡고 정권을 창출한 것 역시 정치판에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것을 입증한 사건이었다.

전말은 이렇다. 1993년 대선 패배 뒤 정계를 떠났던 DJ1995년 정계에 복귀했고 1996411일에 실시된 15대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를 이끌지만 79석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한다. 이대로라면 1년 뒤 대선결과도 보나마나였다.

1996년 중반기부터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정책 공조가 시작되고 1997년 대선정국에서는 민정당 대표위원을 역임한 박태준까지 끌어들여 DJP(DJ+JP)연대를 DJT(DJ+JP+TJ)연대로 확장시킨다. 대선 전 약조는 공동정권의 국무총리를 김종필이 맡고 내각구성에도 일부 지분을 나눠 갖는 것이었다.

결국 김대중 후보는 40.27%, 38.74%를 얻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간발의 차로 따돌리고 당선된다. 또 박정희 시대에도 영원한 2인자였던 JPDJ정권에서 다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인 국무총리에 임명된다. 무려 27년만이었다.

주목할 것은 충북표심의 이동이다. 이전까지 충북은 DJ에 대해 레드콤플렉스에 갇혀있었다. 13대 대선에서 DJ는 전국 평균 27.04%를 득표했지만 충북은 10.97%만 지지했다. 14대 대선에서도 DJ는 전국 평균 33.82%를 얻었지만 충북은 26.04%를 줬다. 하지만 15대 대선에서는 DJ에게 전국 평균 40.27%가 쏠렸고 충북도 이에 근접한 37.43%를 몰아줬다.

급기야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킨 16대선에서는 충북의 노무현 득표율이 50.41%로 전국 평균 48.91%를 앞질렀다.

대통령을 역임했던 양김의 시대가 가고 영원한 2인자였던 김종필을 포함해 3김의 시대도 역사의 뒤란으로 사라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 각각 2009년과 2015년 작고하고, 김종필 전 총리도 올 623,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정치라는 게 무섭다. 적어도 ‘3김시대에는 대표 정치인 3인의 성향을 따라 지역색이 정해졌으니 말이다. 김대중에 대한 핍박과 동시에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었던 호남과 박정희 군부와 전두환, 노태우 신군부 정권의 지도자를 배출했던 영남은 이념의 토양이 달라졌으니 말이다. 사실은 그 이념의 뿌리가 깊지 않은데도 말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박정희 사후 충청도의 정치적 선택은 불과 30년 동안만이라도 김종필이 선택한 대로 움직였다. 그 김종필이 2018년 6월23일, 향년 92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숱한 말의 성찬 가운데 그 유명한 자의반 타의반이 있다.

5·16쿠데타 세력 내부의 알력으로 4대 의혹사건이 터지자 외유에 나서면서 남긴 말이다. 참 충청도스러운 말이다. 자의면 자의고, 타의면 타의지 자의반 타의반은 뭔가. 양념반, 프라이드반도 아니고!

충청도 기질이 모호한 것은 맞다. 혹자는 이런 충청도 사람들을 보고 음흉(陰凶)하다고 한다. 음흉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이나 속으로는 엉큼하고 흉악하다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흉악하다는 표현은 과하다.

이와 비슷한 말로 의뭉하다’, ‘의뭉스럽다가 있다. 의뭉스럽다는 혹시 음흉스럽다가 변한 말이 아닌가 싶었는데 의뭉은 한자어가 아닌 고유어란다. 의뭉스럽다의 뜻은 겉으로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면서 속으로는 엉큼하다이다. 음흉하다와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많이 다르다. 내 생각에는 의뭉스러운 것이 충청인의 기질이다.

충청도 사람들이 의뭉스러울지언정 음흉하진 않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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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더칠드런 2023-05-04 03:07:56
전라도 뒤통수는 자기들이 필요할때 곧바로 후려치지만 충청도 뒤통수는 때릴듯 말듯 때릴듯 말듯 하다가 상대가 완전히 방심했을때 후려칩니다. 전라도 뒤통수는 *99프로가 내가 뒤통수를 맞았다는것을 바로 알지만 충청도 뒤통수는 **"너 전에도 내가 너 때렸다고 의심했지???? 라고 주장하며 자신이 뒤통수때린것을 끝가지 거부해서*상대가 정말로 뒤통수맞았다고 확신하는데 1개월에서 1년까지 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