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청주역은 어딥니까…시청옆-舊MBC-現정봉
당신의 청주역은 어딥니까…시청옆-舊MBC-現정봉
  • 이재표
  • 승인 2019.01.22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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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조치원 노선 개통…1월7일, 첫 ‘역사(驛舍)전시관’ 재현
2022년까지 천안-청주공항역 복선전철화…강호축, 유라시아로?
청주시청 옥상에서 바라다 본 시청 옆 청주역. 1965~1968년 사이로 추정. 철길이 있는 곳이 현 시청 앞 큰길. 건너편에는 우암산 아래 수동과 육군병원이 보인다. 사진=청주시
청주시청 옥상에서 바라다 본 시청 옆 청주역. 1965~1968년 사이로 추정. 철길이 있는 곳이 현 시청 앞 큰길. 건너편에는 우암산 아래 수동성당과 육군병원이 보인다. 사진=청주시

<청주역 이전으로 본 청주도시계획>

전기를 이용해 쏜살같이 달리는 고속철도시대가 열렸지만 기차소리의 의성어는 아직도 증기기관차가 내던 소리 칙칙폭폭이다. 영어 의성어도 추추(choo choo)’니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다.

무겁고 기다란 쇳덩어리가 시커먼 연기와 굉음을 내며 움직이는 모습은 신기하다 못해 충격이었을 것이다. 목소리가 큰 사람을 보고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느냐고 나무라는 것도 여전하다.

청주시가 일제강점기인 1921년 문을 열었다가 1968년 역사(驛舍) 이전과 함께 문을 닫은 첫 청주역을 재현했다. 17일 개관한 청주역사(淸州驛舍)전시관이다. 전시관은 상당구 북문로2113-2 일대 2227의 터에 건축면적 202규모로 지어졌고 역전(驛前)’이라고 부르던 광장도 조성했다.

청주시가 시청 옆에 재현한 첫 번째 청주역사. 사진=이재표 기자
청주시가 시청 옆에 재현한 첫 번째 청주역사. 사진=이재표 기자
1966년 촬영 청주역 실재 청사. 사진=김운기 제공
1966년 촬영 청주역 실재 청사. 사진=김운기 제공

전시관 내부에는 장난감 기차가 움직이는 열차 디오라마, 기록사진, 승무원 물품 등을 전시하고, 외부에는 철길, 기차 모형을 재현했다. 또 광장 주변에는 고 박호건 충북대 임학과 교수가 생전에 가꾸던 조경수를 심었다.

청주역은 현 전시관 자리에서 우암동 옛 청주MBC를 거쳐 과거 정봉역이었던 현재의 청주역까지 두 번 자리를 옮긴다. 첫 청주역은 일제강점기였던 1921111, 중앙철도회사가 경부선 조치원역에서 청주를 연결하는 철도를 놓으면서 보통역으로 문을 열었다. 192491일에는 조선철도주식회사로 편입됐다.

청주역의 정확한 위치는 전시관 북동쪽 도로 위였다. 1958년 문화동에서 청주역을 거쳐 청주중으로 통학했던 강태재 시민재단 이사장. 사진=이재표 기자
청주역의 정확한 위치는 전시관 북동쪽 도로 위였다. 1958년 문화동에서 청주역을 거쳐 청주중으로 통학했던 강태재 시민재단 이사장. 사진=이재표 기자

조치원역으로부터 약 14.1거리였으며, 개통당시 14회 왕복 운행하다가 19236회로 늘었다. 충주역까지 공사를 벌여 1928년에는 충북선이 개통됐다. 1958년 충북 보은에서 청주로 유학(?)을 온 강태재 충북시민재단 이사장은 매일 문화동 친척집에서 청주역을 지나 청주중학교로 통학했다.

강태재 이사장은 청주역의 정확한 위치는 현 전시관 자리가 아니라 전시관에서 북동쪽, 시청 사거리 도로 앞이었다. 주성초 방향으로 난 길이 당시 역전이었고, 지금도 남아있는 청주문구사 건물은 일제강점기부터 운송회사였다. 그 주변은 대부분 창고나 야적장 등이 위치했다고 회고했다.

 

첫 청주역의 유일한 잔재는 1921년 설립한 조선운송주식회사다. 건물골격이 그대로 남아있다. 사진=이재표 기자
첫 청주역의 유일한 잔재는 1921년 설립한 조선운송주식회사다. 건물골격이 그대로 남아있다. 사진=이재표 기자

유일한 잔재는 일제 운송회사 건물

조선운수창고주식회사 본점은 당시의 건물골격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19217, 청주에서 5, 조치원에서 2, 경성에서 1인이 발기해 그해 10, 개업했다. 운수창고업과 미곡, 관염의 판매가 주업이었다. 단 건축물 관리대장에는 1930년으로 등재돼 있다.

해방 후인 1949, 상호를 한국운수주식회사 청주지점이라 변경하면서 창고 13, 자동차 16, 우마차 20대의 시설을 보유한 대규모 운수기관으로 변모했다. 1963년 대한통운주식회사 청주지점으로 상호를 바꿨다가 청주역 이전 후에는 일반상가, 주택 등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현 상당공원 방향에서 청주대교 쪽으로 나오는 큰길이 예전에는 철로였다. 홈플러스와 신한은행 충북본부 사이. 1965년. 사진=김운기 제공
현 상당공원 방향에서 청주대교 쪽으로 나오는 큰길이 예전에는 철로였다. 홈플러스와 신한은행 충북본부 사이. 1965년. 사진=김운기 제공

청주역 개통으로 인해 청주의 도시구조는 읍성을 중심으로 한 기존체계에서 크게 변화했다. 역사 주변은 여관업과 운송업 등 새로운 산업과 함께 신시가지가 형성됐고 중앙시장도 개장했다. 청주역은 19506.25전쟁 때 역사가 파괴되는 수난을 겪었으나 전후에 복구됐다. 1958117일에는 충북선이 제천 봉양까지 연장되면서 현재의 노선이 완성됐다.

강태재 이사장은 시청 옆 청주역 뒤로 지나가는 철길이 현재 상당공원 사거리에 못 미쳐서 옛 수아사 쪽으로 비스듬히 꺾이면서 평지보다 높게 철도가 놓여 서문철교로 이어졌다. 철길 양쪽으로 북일여관이나 소명여관 같은 숙박시설이 생기고 통학로 주변에는 국화빵집과 만춘관, 회빈루, 왕산원 같은 중국집들이 즐비했다고 설명했다.

만춘관은 2013년까지 현재 전시관 광장 앞에서 영업을 했고, 왕산원은 지금도 소나무길에서 성업 중이다. 소나무길이 끝나고 성안길이 시작되는 옛 수아사 앞길에는 무심천을 향해 회전하던 옛 철길이 일부 재현돼 있다.

1960419혁명 당시, 청주농고, 청주대에서 궐기했던 시위대는 이 철길을 사이에 두고 경찰과 대치했다고 한다. 시위대의 목적지는 도청이었다.

김현수 충북419혁명기념사업회장은 철길이라 자갈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 돌을 던지니 경찰도 쉽사리 우리를 제압하지 못했다. 청주는 시위규모가 컸음에도 발포는 하지 않아 희생자가 없었다. 그 대신 소방차에 시궁창 물을 넣어 물대포를 쏴대니 냄새가 코를 찔렀다고 회상했다. 당시 420일자 한국일보는 시위대 가운데 150명이 연행됐다가 당일 풀려났으며, 부상자는 4명에 달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1968년 11월17일, 청주시 우암동으로 청주역 이전. 사진=청주시
1968년 11월17일, 청주시 우암동으로 청주역 이전. 사진=청주시

증기기관차가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무렵 새로운 청주역을 짓는다. 청주시는 성안길 도심의 과밀현상과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해 19681117, 상당구 우암동 261-30번지(청암로 73)에 새 역사를 짓고 청주역을 옮긴 것이다.

이보다 3년 앞선 1965년에는 옛 청원군청(현 제2청사) 맞은편에 있던 청주시청을 이미 현재의 시청 자리로 옮겼던 터였다. 토지구획정리사업을 벌여 청주시청에서 옛 청주역 뒤편, 상당공원을 거쳐 육거리, 청남교로 이어지는 큰길을 냈다.

현재의 청소년광장 소나무길 모서리를 돌아 청주대교 자리에 있던 서문철교로 이어지던 철길도 외곽으로 옮기게 된다. 상당공원에서 서쪽으로 시계탑을 거쳐 가로수길, 경부고속도로로 가는 간선도로가 만들어지면서 현재의 ‘T자형청주 중심도로체계가 완성된다.

 

1980년 청주역이 우암동에서 정봉동으로 옮겨가고 우암동 역사는 청주MBC사옥으로 사용됐다. 사진=MBC충북 제공
1980년 청주역이 우암동에서 정봉동으로 옮겨가고 우암동 역사는 청주MBC사옥으로 사용됐다. 사진=MBC충북 제공

대합실이 공개홀 된 옛 MBC

1980101, 본심철도 이설계획에 따라 세 번째 청주역은 흥덕구 정봉동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역을 옮겼다기보다 도심에 있던 철도를 아예 외곽으로 들어낸 셈이다. 기존 노선은 주변이 시가지화 되면서 복선화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따라서 정봉~오근장 구간을 외곽으로 이설하고 정봉역 자리에 지금의 청주역을 지어 옮기게 된 것이다.

청주역이 정봉동으로 옮겨가고 나서 우암동 역사는 1983년부터 TV시대를 연 청주MBC(MBC충북) 사옥으로 쓰였다. 성안길 청주약국 옆(남문로167-1)에 있던 MBC는 청주역의 외장과 내부구조만 변경해 그대로 사용했다. 20061023, 흥덕구 가경동에 신사옥을 준공하면서 구MBC(두 번째 청주역)는 완전히 철거됐다. 한동안 공터로 방치되던 그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1980년 정봉역으로 이전한 현재의 청주역. 전국체전 출전선수환송식등 단체 승객 운송시에만 임시열차가 운행됐지만 지금은 시멘트를 운송하는 산업철도역이 됐다. 사진=김운기 제공
1980년 정봉역으로 이전한 현재의 청주역. 전국체전 출전선수환송식등 단체 승객 운송시에만 임시열차가 운행됐지만 지금은 시멘트를 운송하는 산업철도역이 됐다. 사진=김운기 제공

MBC기자 출신의 박민순 전 MBC충북 상무는 우암동 청주역과 구 MBC사옥의 모든 것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다. 박 전 상무는 우암동 청주역에서 기차를 타고 수학여행을 갔고, TV방송을 시작하던 그해 MBC에 입사했다.

박민순 전 상무는 대성중 1학년이던 1971년 충주 탄금대로 소풍을 갈 때나,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던 2학년 때도 모두 우암동 청주역에서 기차를 탔다. 청주고 재학시절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는데 그때 조치원을 거쳐 목포까지는 기차로 이동했다고 밝혔다.

박 전 상무는 또 “MBC가 우암동 시대를 열었던 1983년 말에 입사시험을 치르고 1984년부터 기자로 근무했다. 대합실이 공개홀이 되고 건물 뼈대도 그대로였다. 몇 년간은 플랫폼이나 석탄야적장, 대한통운 창고 등이 그대로 남아있었다고 말했다.

현재의 청주역은 경부선에서 파생된 충북선이 중앙선으로 연결되는 한산한 철도다. 여객열차는 하루 18(주말 20), 시멘트 등을 실어 나르는 화물열차가 하루 78회 운행할 뿐이다.

하지만 미래의 청주역은 장밋빛 청사진이다. 천안~청주공항을 잇는 59구간의 복선전철화사업이 2011, 2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8216억원을 들여 천안~서창간 경부선 32.22복선으로 신설하고, 오송~청주공항 간 충북선 26.83.6를 개량한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이 사업이 마무리 되면 수도권에서 전철을 통해 천안을 거쳐 청주공항까지 기존 1시간50분대에서 30분을 단축할 수 있다.

강호축과 실크레일 개념도. 그래픽=충북도
강호축과 실크레일 개념도. 그래픽=충북도

하지만 청주역의 진짜 빅픽처는 강호축 개발과 남북철도 연결을 통해 유라시아 실크레일로 진출하는 것이다. 강호축은 국가균형발전을 통한 대한민국의 도약과 충북의 100년 먹거리 창출을 위해 추진하고 있다. 이름 그대로 강원~충청~호남을 잇는 새로운 성장축으로 2014, 충북이 처음 제안했다. 이후 전국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충북선 철도 고속화는 강호축의 핵심사업이다. 이 철도가 고속화돼야 호남과 강원을 잇는 고속교통망이 완성된다. 충북선이 고속화되면 목포~강릉 소요시간이 5시간32분에서 3시간으로 단축된다. 충북선 고속화는 또 목포~오송강릉원산~시베리아를 잇는 실크레일의 기초가 된다.

경제성(B/C)을 확보하지 못해 예비타당성조사 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국가균형발전 기반 구축을 위한 예타 면제사업으로 신청한 상태다. 따라서 조만간 이 사업의 운명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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