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마비…가을이면 기마민족이 쳐들어온다
천고마비…가을이면 기마민족이 쳐들어온다
  • 박한규
  • 승인 2019.01.25 1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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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의 침략에 속 썩이던 중국, 하늘에도 그 감정 남겨

<별 보는 어른아이>
오늘은 하늘에 새겨진 한나라와 흉노 사이의 갈등을 이야기 해보려 한다. 중원의 한족과 북방 흉노 사이의 갈등은 춘추전국시대부터 한나라 통일 이후까지도 수 백 년 동안 이어지는 지루한 싸움이었다. 중국의 농경민과 북방 유목민은 비슷한 정치적 격동기를 거친다. 전국시대가 끝나갈 무렵 뭉치지 못하던 흉노족은 묵돌선우라는 특출한 왕이 출현하면서 강력한 기마부대를 앞세워 분열된 중국을 괴롭힌다.

이즈음 중국도 유방에 의해 통일되어 한나라가 성립되지만, 흉노의 침략은 계속 이어졌다. 한나라는 흉노의 기마군대를 이길 수 없어 공주를 흉노의 왕(선우)에게 시집보내고 조공을 바치면서 화친을 유지하지만, 흉노는 잊을만하면 침략하기를 반복한다. 유방이 죽자 황후에게 잠자리를 요구하기까지 했으니 한나라를 얼마나 우습게보았는지 알 수 있다.

한나라 7대 황제 한 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대대적인 흉노정벌에 나선다. 보병으로는 기마병을 상대할 수 없었던 한나라 장군 곽거병은 유목민의 기마전술을 익히고 말을 길들여 흉노와 똑같은 방법으로 흉노정벌에 큰 공을 세운다. 흉노는 서역으로 쫓겨 가고 4세기, 게르만족의 이동을 유발하였으며 마침내 헝가리에 나라를 세운 훈족이란 이름으로 역사에 재등장하게 된다.

서양 별자리. 지금은 늦봄에서 여름철에 보이는 별자리들이지만 한나라 때에는 가을 초입에서 보이는 별자리들이었다. 우리 별자리와 비교 하면서 보자.
서양 별자리. 지금은 늦봄에서 여름철에 보이는 별자리들이지만 한나라 때에는 가을 초입에서 보이는 별자리들이었다. 우리 별자리와 비교 하면서 보자.

중국 민족이 공주들을 볼모로 시집보내고 엄청난 양의 조공을 매년 바치지 않고는 황실의 안위마저도 보장 받을 수 없었으니 한나라 사람들이 흉노에게 가졌을 공포와 분노를 읽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흉노를 물리쳤을 때의 기쁨과 안도감을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패륜아를 보면 하는 말이 흉악한 놈이다. ‘가 미천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임을 감안하면 흉악한 놈=흉노가 되는 것이다. 한나라의 공포가 이웃한 우리에게도 전해진 흔적은 아닐까? 마치 화냥년처럼.

<천문류초>를 보면 북방 민족을 두려워 하는 내용의 별자리들이 종종 보인다. 양문(陽門)은 동방청룡의 항수에 속한 별자리로 변방의 요새를 의미하며, 구국(狗國)은 북방현무의 두수에 속하며 북방 유목민족을 지칭한다. 또한 부월(鈇鉞)부은 동쪽 오랑캐를 죽이는 일을 맡고 있다고 하며, 북락사문(北落師門)은 북쪽 변방을 지키는 관문이다. 중국 별자리 체계가 한나라 때 완성되었음을 감안하면 모두 흉노를 지칭하는 말로 보아도 무방하다.

두려움을 하늘에 새겼다면 승리의 기록 또한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이런 기록들을 사마천의 사기를 통해 생동감있게 전해들을 수 있다. 사기에는 한 무제와 흉노의 전쟁을 치우침 없이 적고 있는데, 이는 흉노와 싸우다 패한 장군 이릉을 보호하다 궁형에 처해진 사마천이 한 무제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어 객관적 시각을 유지한 덕인 듯하다.

사마천은 태사령 집안이었다. 태사령이란 역사 편찬과 천문을 맡아 행하던 직책이었다. 한 무제 때 20여 명의 천문관들과 함께 혼천설이라는 새로운 우주관과 새로 발명된 관측기구 혼천의로 천문관측을 하고 전국시대의 흩어진 천문지식을 통합한다. 사마천이 정립한 천문기록은 한나라 기간 내내 수정 보완이 이루어져 오늘에 이른다. 한나라에서는 동중서의 천인감응 사상과 음양오행 사상이 득세했다. 땅에서 실행되는 일들은 하늘의 뜻을 반영하는 것이라 여겼기에 한나라의 중요한 일들을 하늘에 새기는 것 또한 당연한 책무라고 여겼을 것이다.

푸른색 별자리는 동방청룡 7수이고 노란색 별자리가 본문에서 나오는 한나라가 흉노와 싸우는 동안 새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여겨지는 별자리들이다.
푸른색 별자리는 동방청룡 7수이고 노란색 별자리가 본문에서 나오는 한나라가 흉노와 싸우는 동안 새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여겨지는 별자리들이다.

서양의 전갈자리에 해당하는 동양 별자리는 동방청룡이다. 한나라 시기에 이 별자리는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넘어가는 계절의 저녁에 남중하는 별자리였다. 이 가운데 항수, 저수, 방수, 심수 별자리들 위로는 천창, 현과, 경하 그리고 초요 같은 무기와 군기(軍旗)를 상징하는 별자리가 많고, 아래에는 적졸(積卒, 군대), 기관(騎官, 기마부대), 진거(陣車, 전차), 양문(陽門, 변방 수비 요새), 거기(車騎, 전차와 기마부대의 총지휘자), 기진장군(騎陣將軍, 기병부대 장수)처럼 기마부대와 연관된 이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 무제는 대장군 위청과 표기장군 곽거병을 앞세워 대대적인 흉노정벌을 계획한다. 보병으로는 흉노를 이길 수 없었던 곽거병은 똑같이 유목민족의 기마전술을 배운 뒤 기마부대를 창설한다. 마침내 기원전 119년 흉노를 고비사막 이북으로 몰아낼 수 있었다. 수 백 년 동안 중국 민족을 괴롭혔던 흉노를 몰아낸 2년 뒤 곽거병은 23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머지않아 한 무제도 죽고 만다.

이 별자리들이 한 무제 이전부터 있었던 별자리라면 당시에 편찬된 천문서적에서도 기록을 찾을 수 있어야 하지만, 이 별자리들은 기원전 1세기의 천문 서적인 <사기 천관서><석씨성경>에는 보이지 않는 별자리들이다. , 전한 초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별자리였다. 후세인들이 한 무제와 곽거병을 기리기 위해 하늘에 새긴 것은 아닐까? 이 별자리들을 보노라면 천인감응 사상을 굳이 들추지 않아도 흉악한 놈들을 물리친 한나라 사람들의 기쁨과 다시 겪고 싶지 않다는 바람을 하늘에 새겨서 후대에 남기고픈 간절한 마음이 전해져 온다.

가을을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흉노와 연관되어 있다. 두보의 할아버지 두심언이 흉노 정벌을 위해 출정하는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유래한 말로,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이 되면 말이 살찌게 되니 흉노가 쳐들어온다는 경고성 문구였다.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현대인들이야 알 수도 없는 먼 이야기니 본뜻을 새길 필요야 없지만 잠시 높푸른 하늘마저 두려워했던 옛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참고문헌]

The Chinese sky during the Han, Sun Xiaochun and Jacob Kistemaker, Brill

사기 천관서, 사마천, 김원중 옮김, 민음사

천문류초, 김수길 윤상철, 대유학당

Skysafari pro5

https://www.youtube.com/watch?v=YL=Bq-w18pxM

청주가 고향인 박한규는 흉부외과 전문의다. 지금은 부산의 한 마을 공동체 주민으로 살면서 공동육아로 40대를 보내고 있다.박한규 원장은 키만큼 커다란 망원경으로 별보기를 좋아하는 어른아이다. 또 신화와 역사 그리고 과학을 넘나들며 엿보는 재미에 빠진 일탈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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