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금지한 조선민중大집회 ‘줄다리기’
일제가 금지한 조선민중大집회 ‘줄다리기’
  • 사진 송봉화 작가, 글 이재표 기자
  • 승인 2019.02.22 12: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주서도 무심천에 모여 지름 1m, 길이 180m 줄 당기기
경남 창녕군 영산면에서는 삼일절에 ‘영산줄다리기’ 열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 31운동에 놀란 일제는 조선 민중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것조차도 가시눈을 뜨고 감시했다. 하물며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몰려나와서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하는 풍습은 두려움마저 자아내게 했다.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마츠리(축제)’에 빠지는 일본인들의 눈에도 조선의 줄다리기는 그 위용이 대단했다. 청주에도 그런 줄다리기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청주에 거주했던 일본인 大雄春峰(훈독에 따라서 오쿠마 쇼지, 슌포, 온보라고도 함)1923년에 출간한 <청주연혁지>라는 책에 청주줄다리기를 소개하고 있다.

일제는 1919년 삼일만세운동을 기화로 달아오르던 독립의 열기를 차단하려고 시민들의 집회 일체를 강압적으로 금지시켰다. 이 결과 청주의 대표적인 정월대보름 행사였던 줄다리기도 중단됐다. 그러나 1923, 대대적인 시가지 정비와 시장 개설을 추진한 뒤 이를 선전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줄다리기 행사를 열었다.

줄다리기는 사람들이 모여서 줄을 엮는 것부터 시작된다. 집에서 틀과 짚을 가지고 나오거나 시내에 있는 모든 새끼줄을 수집하고 엮어서 점차로 굵고 길게 만들어간다. 시내 한 복판에 하나의 선을 그어 동서로 편을 가른 뒤 경쟁적으로 줄을 꼬았다. 20여일에 걸쳐 완성된 줄은 길이만 약 100(), 180m에 달했고 지름도 1m가 넘어서 커다란 술통만한 두께였다.

줄다리기는 무심천을 사이에 두고 40여개 마을 주민들이 동과 서로 편을 갈라 시합을 벌였다.

수천 명의 장정들이 어기여차소리에 맞춰 본줄에 달린 가닥줄을 당기고, 큰 깃발을 앞세워 징과 북, 장구, 괭가리를 두드리며 응원했다. 무심천 둑에는 수만 명의 군중이 밀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며칠간 계속된 줄다리기 끝에 이긴 쪽은 풍년이 든다고 기뻐했으며 줄은 전리품으로 가져가 팔았다고 한다.

청주줄다리기는 맥이 끊겼지만 경남 창녕군 영산면의 영산줄다리기1969, 중요무형문화재 26호로 지정돼 전승되고 있다. 더구나 경남지역 만세운동이 이 지역에서 시작된 것을 기념해 1986년부터는 삼일민속문화제의 형태로 진행해 오고 있다. 사진은 영산줄다리기 현장을 2013년에 촬영한 것이다.

▷사진을 찍은 송봉화는사진가이자 한국우리문화연구원장이다. 그는 우리들의 삶결을 순간으로 정지시켜 숨결을 불어넣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언제든지 그의 작품을통해 흘러갔지만 정지된 시간을 호명할 수 있게 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