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스럽지 않은 좀생이별을 아시나요?
좀스럽지 않은 좀생이별을 아시나요?
  • 박한규
  • 승인 2019.03.0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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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닐곱의 작은 별…달과 거리 관측해 한 해 풍흉 점쳐
플레이아데스. 황소자리에 속한 산개성단으로 생성된 지 1억년이 안되는 젊은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 별들 사이에 파랗게 빛나는 반사성운이 플레이아데스를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앞으로 3억년 뒤에는 우주 공간에 흩어져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운명이다. 촬영: 김정식
플레이아데스. 황소자리에 속한 산개성단으로 생성된 지 1억년이 안되는 젊은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 별들 사이에 파랗게 빛나는 반사성운이 플레이아데스를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앞으로 3억년 뒤에는 우주 공간에 흩어져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운명이다. 촬영: 김정식

지금은 젊은 나이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집 밖 활동이 어려운 장애인이 되었지만, 한때 전국을 주름잡는 청년 천문인이 있었다. 별에 관해서라면 무엇이든 해박했고 망원경 관련한 장비도 척척 고쳐주었던 그 청년이 어느 하늘 맑던 겨울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작고 희미하고 뽀얀 솜털뭉치 안에 반짝이는 보석들이 수줍게 빛나는 별무리가 있었다.

저 별이 자기를 별바보로 이끌어 주었다며 이름은 좀생이별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 이름을 처음 들었다. 중국에서는 묘성(昴星)이라 부르고 서양에서는 플레이아데스(Pleiades)라고 부르며 황도 12궁 가운데 하나인 황소자리에 속하는 별이다.

좀생이별을 맨눈으로 보면 대개는 6~7개 정도의 별이 보인다. 가장 많이 본 사람은 14개까지 별을 확인했다고도 한다. 서양에서는 일곱자매별이라고 불렀고 <천문류초><보천가>에도 일곱 개의 별로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하니, 캄캄한 하늘에서 눈이 좋다면 일곱 개의 별은 헬 수 있다는 말인 듯하나, 빛공해로 인해 하늘이 밝아진 요즘은 다섯을 헤는 사람도 많지 않다.

망원경보다는 쌍안경으로 보면 좀생이별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 좀생이란 말은 작다는 뜻의 에 별 ’()과 조사 가 붙어 생긴 말로 작은 별이란 뜻을 지니고 있지만 이름과는 달리 수 천 개의 별들로 이루어진 산개성단이며 밤하늘에서 가장 크고 밝고 또렷한 별무리다. 좀생이별은 조무시별, 잠생이, 종심이, 송생이, 산토싱이, 종삼이, 좀싱, 비우달, 간성 따위로 부르는 이름도 지방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작지만 사랑받던 별자리였음을 알 수 있다.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되는 음력 초엿새가 되면 조상들은 좀생이별을 보고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곤 했다. 음력 6일이면 초승달에서 상현달(반달)로 나아가는데 살짝 우묵하면서도 토시토실한 밥을 담는 함지박 모양을 닮으면 그때가 바로 음력 초엿새 달이다. 음력 초엿새면 밥함지 모양 반달과 좀생이별이 서쪽 하늘에 나란히 떠오르는데, 달은 밥을 머리에 이고 가는 어머니로 보고 좀생이별은 아이들로 여겼나 보다.

올 해 음력 이월 초엿새 서쪽 하늘이다. 달이 좀생이별과 나란히 앞서 가니 올 해 농사는 대풍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21세기에는 달이 좀생이별을 앞서는 경우가 많아서 굶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올 해 음력 이월 초엿새 서쪽 하늘이다. 달이 좀생이별과 나란히 앞서 가니 올 해 농사는 대풍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21세기에는 달이 좀생이별을 앞서는 경우가 많아서 굶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달과 좀생이별이 너무 가까우면 아이들이 배가 고파 보채는 걸로, 너무 멀면 배가 고파 지쳐 있다고 보아 흉년을 예상했고 촌척(寸尺) 사이를 두고 적당한 거리에 있어야 풍년이 온다고 믿었다. 지방에 따라 해석도 분분했지만 달이 앞서 가면 풍년이요 좀생이별이 앞서서 달을 끌고 가면 흉년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었다.

좀생이별 색깔이 붉으면 가물어서 흉년, 투명하고 밝으면 비가 풍부히 와서 풍년이라고도 했다. 이렇듯 좀생이별과 달과의 위치, 색깔, 밝기에 따라 한 해 농사를 예측하는 좀생이보기(좀생이별로 한 해 농사를 점치는 일)는 전국적으로 널리 유행하고 있던 것으로 짐작된다.

<동국세시기>, <해동죽지>, <농가월령가> 같은 여러 문헌에 좀생이보기를 소개하고 있다. ‘정월 대보름에는 달만 잘 뜨면 되고 이월 초엿새에는 좀생이별만 잘 가면 된다’, ‘좀생이 보고 머슴 다스린다’, ‘조무싱이 보고 그 해 일할 짚신을 삼는다같은 속담이 있는가 하면 묘성(좀생이별)이 달 옆에 붙어서 귀걸이 한 것 같으면 풍년이라는 표현이 <세시풍요>에 전하고 있다. 특히 19세기 말에 김매순이 지은 <열양세시기>에 따르면 좀생이보기 점에 대해 징험해 보니 제법 잘 맞는다는 호평이 달리기도 했다.

좀생이보기가 농사점으로 이용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태초부터 좀생이별은 초엿새 달과 가까이 지냈을까? 왜 하필이면 초엿새 달로 점을 쳤을까?

요즘 좀생이보기를 한다면, 풍년은 많고 흉년이 되는 해는 적다. 밥을 굶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기 어려운 이유가 이런 좀생이점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그럼 옛날에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삼국시대로 가면 어떨까? 삼국사기를 보면, 흉년으로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진짜 그런 일이 있었을까마는 삼국시대에는 굶주림에 허덕이는 백성들이 많았음은 짐작하겠다.

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이래 조선 후기에도 여전히 농사일은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산골에 사는 범부들이야 하늘만 보고 농사를 지었을 테니 좀생이보기는 어떻게든 하늘의 뜻을 알고자 하는 간절함이 묻어나는 풍습이라 하겠다. 오늘날에도 88만원 세대니 헬조선이니 하는 말들이 있음은 사람의 먹고사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면서도 고된 일임을 깨닫게 한다.

'기원전 1천년기'의 앗시리아 농부의 모습. 오른쪽 위 일곱개의 동그라미는 플레이아데스를 의미한다. 플레이아데스와 초승달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농경에서 수확과 파종 시기를 알려주는 중요한 표지자 역할을 했다.
'기원전 1천년기'의 앗시리아 농부의 모습. 오른쪽 위 일곱개의 동그라미는 플레이아데스를 의미한다. 플레이아데스와 초승달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농경에서 수확과 파종 시기를 알려주는 중요한 표지자 역할을 했다.

음력 이월 초엿새에 좀생이보기를 하는 이유는 좀생이별의 고도 탓일 게다. 이때 좀생이별의 고도는 대략 40도 안팎을 유지한다.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지고 나서도 대략 한 시간은 지나야 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산악지형이 많은 우리나라는 평야가 아니고서는 10도 아래의 별들을 보기가 힘들다. 달이 태양 곁에서 초승달이 되고 나서 하루에 50(12.5)씩 동쪽으로 움직이니, 음력 이월 초엿새는 좀생이별이나 달이 너무 낮지도 높지도 않게 서산마루를 기준으로 농절기를 가늠하기에 안성맞춤인 높이에 위치하게 된다.

기원전 12세기 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이래 조선 후기에도 여전히 농사일은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산골에 사는 범부들이야 하늘만 보고 농사를 지었을 테니 좀생이보기는 어떻게든 하늘의 뜻을 알고자 하는 간절함이 묻어나는 풍습이라 하겠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도 좀생이별과 달이 농경에 이용됨은 물론이고 달력의 역할도 했다. 달력이 없었기 때문에 매년 정월 초하루를 아는 것이 그들에겐 크나큰 숙제가 아닐 수 없었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초하루 날 일몰 직후 서쪽 하늘에서 초승달과 플레이아데스를 나란히 관측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용했다.

다만 한 달이 29.5일 이기 때문에 12달은 354일로 1365일에 비해 11일이 짧다. 해가 갈수록 차이가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윤달을 두어야 했는데 대체 언제, 얼마나 자주 윤달을 둘 것인가가 숙제였다. 12월 다음에 달과 플레이아데스가 초사흘이 지나 만나면 13(윤달)을 두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사흘달이면 이틀, 나흘달이면 사흘 차이가 생기고 그 거리는 달이 25~37.5도 이동하는 셈이다. 태양이 거의 하루에 1도를 이동하니 13월을 두면 대략 30일 안팎의 날짜를 추가하는 셈이다. 1년에 11일 늦으니 대략 3년이면 33, 3년에 한번 윤달을 넣으면 이 차이를 대략 보정하게 되므로 그 다음 해에는 다시 초승달과 플레이아데스가 만나게 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3000년 전 고대인들의 관찰력에 감탄이 나온다.

그리스 음유시인 헤시오도스는 <일과 나날들>에서 플레이아데스가 아침에 뜨면 수확을 하고, 저녁에 지면 쟁기질하고 씨를 뿌리라고 했다. 플레이아데스가 그믐달과 함께 일출 직전에 뜨는 때는 5월 초순에는 서둘러 보리 수확을 해야 한다. 만약 게으름을 피워 이때를 놓친다면 보리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측으로부터 얻은 지식의 유용함은 사제들에 의해 추상적 관념으로 발전해서 달과 플레이아데스가 가까우면 나라가 평안하고 그렇지 못하면 모반이 일어난다는 믿음이 되었다. 서양 점성술에서는 달이 황소자리에 들어갔을 때 가장 큰 힘을 발휘(exaltation)한다고 하는데, 이는 3,000년도 훨씬 전부터 믿어온 달과 플레이아데스의 관계가 오늘날까지도 흔적을 남기고 있음이다.

시대와 장소가 달라도 하늘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희망이 아니었나 싶다. 척박한 땅 척박한 시절에 소리 없이 빛나는 하늘의 언어는 동서고금에 희망이 되었을 것이기에 사람들은 하늘을 믿고 하늘에 기원을 했던 것이 아닐까?

좀생이별을 따라 별쟁이가 된 청춘이 있는가 하면, 좀생이보기에 한 해 길흉을 걸었던 선조들이 있다. 좀생이별(플레이아데스)로 시작해 오늘날의 황도 12궁이 완성되었는가 하면 일본에는 좀생이별(쓰바루) 자동차가 달리고 있다. 덩칫값을 못하는 사람에게 쓰는 좀생이란 말을 이제 작지만 제 몫을 톡톡히 해내는 사람에게 적용해야 할 듯싶다.

청주가 고향인 박한규는 흉부외과 전문의다. 지금은 부산의 한 마을 공동체 주민으로 살면서 공동육아로 40대를 보내고 있다.박한규 원장은 키만큼 커다란 망원경으로 별보기를 좋아하는 어른아이다. 또 신화와 역사 그리고 과학을 넘나들며 엿보는 재미에 빠진 일탈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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