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자리의 기원, 기원전 2500년 전까지 올라가
별자리의 기원, 기원전 2500년 전까지 올라가
  • 박한규
  • 승인 2019.03.22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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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과 제례에 필요한 달력 만들거나 항해술에 필요해서 탄생
파네스 아틀라스. 기원전 2세기에 그리스에서 만든 작품을 기원후 2세기에 로마에서 복제한 작품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마치 신이 41개의 별자리를 우주 밖에서 별자리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새겨져 있어 우리가 밤하늘에 보는 모습과 반대 방향이다.
파네스 아틀라스. 기원전 2세기에 그리스에서 만든 작품을 기원후 2세기에 로마에서 복제한 작품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마치 신이 41개의 별자리를 우주 밖에서 별자리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새겨져 있어 우리가 밤하늘에 보는 모습과 반대 방향이다.

밤하늘을 바라보면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헤라클레스와 머리가 일곱 달린 히드라의 싸움, 안드로메다와 페르세우스, 길가메시와 황소 이야기, 큰 곰과 작은 곰이 된 엄마와 아들 이야기들이 별자리가 되어 서로 자기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손짓하며 하늘을 돌고 있다.

별자리를 보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누가 언제 별자리를 만들었는지 궁금해진다. 심심해서 만든 것은 아닐 테고 대체 왜 만들었을까? 수천 년 전에도 지금과 같은 별자리들이 밤하늘을 비추고 있었을까? 그때는 지금과 다른 모양의 별자리가 있었을까?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별자리 이야기들은 그리스 신화의 옷을 입고 있다. 그리스가 별자리의 고향일까? 언제부터 그리스 사람들은 별자리 신화를 이야기했을까?

기원전 7~8세기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는 <일리아드> <오디세이> <일과 나날들>에서 큰곰자리, 오리온자리, 플레이아데스, 히아데스, 아르크투루스, 시리우스, 스피카를 언급하고 있지만 우리가 아는 별자리 일부만 포함하고 있을 뿐이다.

문헌으로는 기원전 3세기 최고의 시인 아라토스(Aratos)가 지은 별자리에 대한 시 ‘Phaenomena’가 오늘날의 별자리와 가장 비슷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Phaenamena는 기원전 4세기 후반에 살았던 유독수스(Eudoxus)가 지은 최신 천문학 책의 제목이었다.

마케도니아 왕 앞에서 시를 짓게 된 아라토스는 자신의 천문 지식을 뽐낼 겸 같은 제목의 시를 짓는다. 유독수스는 이집트 유학을 마치고 별자리가 새겨진 천구(celestial globe)를 구해서 돌아온다. 유독수스는 실제 밤하늘을 관측하지 않고 이 천구의 별자리를 보고 ‘Phaenomena’을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책은 실전되었지만 시인 아라토스에 의해 별자리를 노래한 아름다운 시로 태어나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아라토스도 당대 사람이 아닌 옛 사람이 별자리를 만들었다고 노래했듯이 유독수스의 천구에 새겨진 별자리는 언제인지 모를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것이었다. 아라토스의 별자리는 그림이 없기 때문에 내용을 토대로 별의 위치와 별자리 모양을 유추해야 한다. 글이 아닌 그림으로 된 별자리는 전해지지 않는 걸까?

파네스 아틀라스 천구의 별자리 구성. 황도대를 뚜렷이 구분하고 있으며 춘분점이 양자리 앞다리에 위치함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파네스 아틀라스 천구의 별자리 구성. 황도대를 뚜렷이 구분하고 있으며 춘분점이 양자리 앞다리에 위치함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림으로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별자리 지도는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 파네스 아틀라스(Farnese Atlas)’와 기원전 1세기 이집트의 덴데라 황도대(Dendera zodiac)’가 있다. 파네스 아틀라스는 기원전 2세기 그리스 작품을 후대에 로마에서 모방한 것으로 실질적인 최고의 별자리 지도라 할 수 있다.

파네스 아틀라스는 제우스와의 싸움에서 패한 거인 아틀라스가 41개의 별자리가 새겨진 둥근 천구를 짊어진 모습을 하고 있다. 적도와 황도, 춘분점, 추분점, 하지점, 동지점이 별자리에 표시되어 있으며 북극성을 중심으로 지평선 아래로 지지 않는 별자리인 주극성을 알 수 있게 표시해 놓았다. 18세기 항해술의 발달과 함께 남반구에도 별자리가 생겼지만 당시에는 지구 반대편의 별자리는 볼 수 없었는데, 이 보이지 않는 별자리 영역도 잘 표시되어 있다.

기원전 2세기 히파르코스는 당대의 전통을 거부하고 실제 밤하늘을 측정함으로써 세차운동을 처음으로 알아냈고 더불어 춘분점이 양자리 앞다리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파네스 아틀라스 제작자는 고대 세계 최고의 천문학였던 히파르코스의 최신 학문을 충실히 반영하여 춘분점을 양자리 앞다리에 위치하도록 천구에 새겨놓았다.

이것은 파네스 아틀라스의 제작시기를 알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파네스 아틀라스에 새겨진 별자리는 당시 그리스와 이집트에 보편적으로 알려진 모양이었을 것이다. 파네스 아틀라스의 별자리 모양이나 위치를 참고하여 아라토스가 기술한 별자리의 기원을 찾아 간다면 우리가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자리가 언제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아라토스의 시에 나오는 별자리를 고안한 사람들이 살았던 시기와 위도를 추정해 볼 수 있는 단서들을 모아 별자리의 기원을 차근차근 풀어보도록 하자. 수평선 아래로 지지 않고 밤새 보이는 별들인 주극성의 범위를 안다면 북극성의 고도와 관측자의 위도를 알 수 있다. 당시의 주극성으로 기록된 별자리는 큰곰자리, 작은곰자리, 용자리다.

기원후 2세기 프톨레마이오스가 만든 별 목록을 참고로 아라토스가 노래한 별자리를 재구성 해 보면 고대인들이 볼 수 없었던 밤하늘 영역을 알 수 있다. 아라토스 별자리의 남쪽 경계는 궁수자리, 전갈자리, 남쪽물고기자리, 토끼자리, 아르고호자리, 에리다누스자리들이 위치해 있다. 이 별자리들의 남쪽은 별자리 고안자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영역이었던 것이다. 이 영역의 중심이 남극과 떨어진 정도를 알면 당시의 위도를 얻을 수 있다.

위 두 값으로 계산해 보면 별자리를 만든 사람들은 기원전 2000~2500, 위도 35도 부근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밤하늘 별자리가 보이지 않는 영역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데, 오늘 밤 부산에서 보이지 않는 남십자성을 황산벌에서 삼국 통일 전쟁을 벌이고 있던 계백 장군과 김유신 장군은 또렷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반대편에 있는 에리다누스자리 강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남쪽으로 뻗어있는 강 하류가 더욱 잘 보이게 된다.

사실 별자리 자체의 기원은 훨씬 더 오래 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한 곳에서 한 시기에 모두가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별자리를 만들었던 이유는 농경 달력이 필요해서, 제례에 필요한 시기를 알 기 위해서, 특히, 새해 첫날이 언제인지를 알기 위해서, 또는 항해술에 필요한 방향을 찾기 위해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기원전 2000~2500년 전에 만든 별자리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 없이 전해진다는 것은 그들이 문명을 주도하는 지위를 지니고 있었음을 반증한다. 이 시기 이러한 문명을 일으킨 지역은 지중해 주변의 크레타섬(미노아 문명), 이집트와 근동 지역의 수메르-바빌로니아 정도가 있었다. 다만 위도 35도를 생각해 볼 때, 이집트와 바빌로니아는 별자리가 형성되는 씨앗 역할은 충분히 했겠지만 별자리 완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리스 크레타섬의 미노아 문명이 후보로 남는다. 아쉬운 것은 미노아 문명은 지진, 화산폭발 및 알 수 없는 여러 이유로 파괴 정도가 심해서 별자리를 암시하는 직접적인 유물이 남아 있지 못하다. 다만 크레타섬에 남아 있는 유적을 통해 그들이 상당한 천문 지식을 보유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미노아 문명이 최초로 강력한 해군을 보유하고 지중해의 제해권을 확보했다고 전하고 있다. 바다(지중해)를 항해할 수 있는 배를 처음 보유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곳 역시 크레타섬이다. 고대에 바다를 항해한다는 것은 큰 파도에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선박 건조술의 발달과 함께 고도의 항해술이 필요한 일이었다.

나침반의 이용은 훨씬 후대의 일이므로 방향을 알기 위해 천문 지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문자가 극소수에게 독점되는 시대였기에 천문지식을 쉽게 익히고 전수하기 위해 별자리를 만들지 않았을까? 황도대를 비롯한 22~28개의 별자리는 수메르-바빌로니아에서 발명된 것이 분명해 보인다. 다른 별자리들도 씨앗은 수메르-바빌로니아에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구체화 시킨 곳으로는 미노아 문명이 유력한 후보 가운데 하나다.

고대에 북반구 별자리(좌측)과 남반구 별자리(우측). 우측에는 보이지 않았던 밤하늘 영역에는 별자리가 그려져 있지 않다. 이 지도는 북극성이 용자리 투반(Thuban)에서 현재의 작은곰자리 꼬리로 이동하는 중이다. 기원전 1000~1500년 부근의 하늘일 것으로 여겨진다.
고대에 북반구 별자리(좌측)과 남반구 별자리(우측). 우측에는 보이지 않았던 밤하늘 영역에는 별자리가 그려져 있지 않다. 이 지도는 북극성이 용자리 투반(Thuban)에서 현재의 작은곰자리 꼬리로 이동하는 중이다. 기원전 1000~1500년 부근의 하늘일 것으로 여겨진다.

미노아 문명이 생소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미노아 문명은 기원전 6500년 전 아나톨리아(터키)에서 유럽 최초로 농경문화가 유입된 곳으로 독자적인 문명을 이루었다가 불분명한 이유로 멸망한 고대 문명이다. 미노아 문명이 쇠퇴한 기원전 15세기에는 지중해 유역에서 새로운 강자들이 급부상한다.

그리스에서는 미케네 왕국이, 근동에서는 히타이트 왕국이 전성기를 누리며 이집트와 함께 지중해 문명을 주도해 나간다. 수천 년 동안 미케네와 미노아는 호메로스 이야기에 나오는 신화 속의 나라였다가 19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유적이 발굴되면서 현실의 역사가 되었다. 앞으로 더 많은 발굴이 이루어지고 연구가 이어진다면 별자리의 기원에 대해서도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12살이 되어 사춘기에 접어 든 아이는 더 이상 별자리 이야기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안드로메다은하에도 별자리가 있다면 우리가 보는 별자리와 어떻게 다를까? 미래의 어느 날, 안드로메다은하에 사는 미지의 인류와 만나게 될 때 우리 별자리에 대해 이야기 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때 까지도 별자리의 기원과 이야기들을 궁금해 하는 지구인들이 살고 있으면 좋겠다.

청주가 고향인 박한규는 흉부외과 전문의다. 지금은 부산의 한 마을 공동체 주민으로 살면서 공동육아로 40대를 보내고 있다.박한규 원장은 키만큼 커다란 망원경으로 별보기를 좋아하는 어른아이다. 또 신화와 역사 그리고 과학을 넘나들며 엿보는 재미에 빠진 일탈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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