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방위를 알기 위해 밤하늘에 그린 ‘별자리’
시간과 방위를 알기 위해 밤하늘에 그린 ‘별자리’
  • 박한규
  • 승인 2019.04.19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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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구석기부터 관측…밝은 별 기준으로 목축‧사냥 등 주제 삼아
우리 은하를 지구에서 바라 보았을 때의 모습을 은하수라고 한다. 1등성을 포함한 밝은 별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다. 촬영=염범석
우리 은하를 지구에서 바라 보았을 때의 모습을 은하수라고 한다. 1등성을 포함한 밝은 별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다. 촬영=염범석

요즈음 휴양림에 캠핑을 가면 밤하늘에 빛나는 보석 같은 밝은 별들을 마주할 수 있다. 사자자리와 처녀자리가 머리 위에 펼쳐져 있고 자정이 가까워지면 전갈자리가 남동쪽 하늘에서 머리를 내민다. 고개를 조금만 들면 목동자리가 있고 북쪽에는 큰곰자리, 북두칠성이 머리 위에서 느릿느릿 걷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별자리들은 누구라도 한번쯤 이름을 들어보았음직한 유명한 별자리들로 밝은 별도 많고 크기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거대하다. 별자리는 누가 언제 만들었는가에 대한 답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다만 후기 구석기를 살았던 인류가 별을 관측했다는 증거가 최근 들어 힘을 받고 있다.

이들 호모 사피엔스가 일으킨 인지혁명이 아니었다면 별은 아직도 캄캄한 밤에 빛나는 이름 없는 무엇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늘에 대한 두려움과 숭배가 원시 종교를 만들어 내고 더불어 하늘에서 빛나는 별도 함께 신성을 지니게 되면서 별자리가 태어났다. 원시종교의 제의(祭儀)나 축제일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데다 방향까지 알 수 있는 기능성은 별자리의 탄생을 가속시켰을 것이다.

하늘에 그림을 그릴 때 무엇을 기준으로 별자리를 만들었을까? 오늘밤의 별자리 형태와 구성으로 별자리가 탄생하는 과정을 추적해 보려한다. 북반구 어딘가에서 별자리를 그리던 사람들에게는 남반구 아래쪽 별들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별자리를 그릴 수 없던 영역이 존재한다. 이 별자리 공동 구역의 경계를 살펴보면 오리온자리, 큰개자리, 남십자성, 켄타우루스자리, 전갈자리, 궁수자리 등 180도에 이르는 지역은 은하수가 지나는 영역으로 밝은 별들이 많다.

반대쪽 절반은 밝은 별을 찾기가 어렵다. 당연하게도 르네상스 이후 대항해 시대가 되기 전까지는 1등성을 지니고 있는 남쪽 물고기자리 말고는 이렇다 할 별자리가 전해지지 않았다. 이를 바탕으로 추론해 보건대, 고대인들이 별자리를 만들 당시 기준이 되었던 것 가운데 하나는 밝은 별이다.

오리온자리(9시 방향)부터 궁수자리(3시 방향)까지 아래쪽 영역은 밝은 별들이 많고 오래된 별자리들이 많지만, 반대로 위쪽 영역에는 밝은 별이 거의 없어서 오래된 별자리가 없다.
오리온자리(9시 방향)부터 궁수자리(3시 방향)까지 아래쪽 영역은 밝은 별들이 많고 오래된 별자리들이 많지만, 반대로 위쪽 영역에는 밝은 별이 거의 없어서 오래된 별자리가 없다.

그리스 천문학을 집대성했던 기원후 2세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장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의 48개 별자리 대부분에서 1등성과 2등성을 포함한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머리를 들어 밤하늘의 별자리들을 살펴보면 크기가 다름을 볼 수 있다.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조차 없이 어둡고 작은 별자리들도 많다. 예를 들어, 머리털자리, 화살자리, 돌고래자리, 조랑말자리, 외뿔소자리, 기린자리, 살쾡이자리, 도마뱀자리, 방패자리 따위에는 3등성보다 밝은 별이 하나도 없다.

도마뱀자리, 외뿔소자리, 기린자리, 살쾡이자리, 방패자리는 밝은 별들이 모두 별자리에 포함된 뒤 빈 자리에 만든 별자리다. 머리털자리도 기원전 3세기 그리스의 에라토스테네스와 코논에 의해 언급되었고 17세기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에 의해 현재 위치에 확정되었다. 이 별자리들이 차지한 영역은 사자자리나 처녀자리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것없다. 별자리의 크기도 별자리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다.

별자리의 이름을 살펴보면 또 다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위 두 가지 기준에 합당한 별자리들을 보면 오리온자리, 사자자리, 황소자리, 처녀자리, 전갈자리, 페르세우스자리, 큰곰자리 등으로, 별도 많고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며 이름도 범상치 않다.

이름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지금이 아닌 수천년 전의 봄철에 떠오르는 별자리는 양자리, 황소자리, 마차부자리(아기 염소를 안고 있다)처럼 목축 활동에 중요했던 동물들을 상징하고 있고, 오리온자리나 큰개자리, 작은개자리처럼 사냥을 나타내는 별자리들이 자리하고 있다.

여름철을 상징하는 별자리는 황금 갈기를 휘날리는 사자자리다. 짐승의 뿔이나 갈기는 뜨거운 태양을 상징하는 징표였다. 고대에는 뱀과 용의 구분이 분명치 않았다. 물뱀은 고대의 적도를 따라서 길게 드리워져 있고, 용자리는 당시의 북극성을 포함하고 있으며 황극을 감싸고 있어 물뱀자리와 대조적인 형상을 하고 있다. 이렇게 신성한 의미를 지니는 이름을 중요한 별자리에 먼저 지어 불렀음을 볼 수 있다.

밝은 별이 있다고 무작정 별자리를 만들었던 것은 아니다. 신성 못지않게 기능성 또한 별자리를 만드는데 중요한 요인이었다. 때를 아는 것은 농경에도 중요하지만, 매년 같은 날을 지켜야 하는 제의(祭儀) 날짜를 정확히 아는 것은 더욱 중요했다.

고대인들이 썼던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서양에서는 그노몬(gnomon)이라고 하고 동양에서는 규표라고 하는 지면에 수직으로 꽂은 나무 막대기의 그림자를 이용하여 1년의 길이와 동서남북 방향을 측정했다. 낮에는 그노몬을 이용했다면 밤에는 별과 별자리를 이용하여 절기와 날짜를 파악했다.

춘분, 하지, 추분과 동지 아침에 해 뜨기 전에 동쪽 지평선 위로 오르는 별자리는 때를 알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이렇게 정해진 별자리가 바로 황소자리(춘분), 사자자리(하지), 전갈자리(추분), 물병자리(동지)였으며, 마침 모두가 1등성을 포함하고 있었다.

황소자리-알데바란, 사자자리-레굴루스, 전갈자리-안타레스, 물병자리-포말하우트(아주 오랜 옛날 남쪽 물고기자리는 물병자리의 일원이었을 것이다. 포말하우트는 남쪽 물고기자리의 으뜸별)가 그것이다. 이 별자리들은 황도대에 위치하며 대체로 하늘을 90도로 네 등분한 영역에 있다.

이제까지 살펴 본 네 가지 기준으로 별자리들을 나누어 보면 황소자리-사자자리-전갈자리-물병자리가 쌍을 이루어 특정 시기의 사계절을 나타내고 있다. 세차운동을 고려했을 때, 쌍둥이자리-처녀자리-궁수자리-물고기자리가 또 다른 쌍을 이루어 계절을 가리키는 별자리였을 것이다. 이들 별자리 8개는 1등성 또는 2등성의 밝은 별을 포함하고 있지만, 황도 12궁 가운데 나머지 네 별자리는 위에 살펴 본 여러 기준에 미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양자리-게자리-천칭자리-염소자리는 기원전 2000년부터 춘분-하지-추분-동지를 나타내는 별자리였다. 당시는 후기 구석기부터 발달한 인지혁명이 무르익는 청동기 중기 시대로 문자를 이용한 기록 문화가 본격화한 때이기도 하다. 기원전 2000년 후기에는 별자리와 역법에 대한 개념이 발달하여 밝은 별도 없고 공간도 부족하지만 춘하추동을 가리키는 새로운 별자리를 창조해야 했을 것이다.

인지가 발달하고 지식이 축적되면서 형상이나 막연한 숭배보다는 기능성과 의미를 잘 드러내야 했다. 황소자리 엉덩이를 잘라내고 황소 꼬리 언저리에 양자리를, 쌍둥이자리와 사자자리 사이에 흐릿하지만 게자리를, 처녀자리와 전갈자리 사이에 전갈의 집게를 떼어내 천칭자리를, 물병자리와 물고기자리 사이에 염소자리를 만들었다. 먼저 만들어진 별자리일수록 밝고 크지만 의미는 불분명한 반면, 후대에 만들어진 별자리는 어둡고 작지만 의미는 선명한 경우가 많다.

이렇게 보면 별자리는 한 곳에서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적어도 6000년이라는 기간에 걸쳐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후기 구석기 호모 사피엔스의 인지혁명이 신석기 시대, 최첨단 과학이었던 천문관측으로 이어져 별자리를 탄생시키고, 청동기 시대에 이르러 별자리 형태와 개념이 고착되기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트로이의 멸망으로 시작된 철기시대 이후로는 더 이상 의미 있는 중요한 별자리는 태어나지 않았다.

현대 천문학은 말한다. 무거운 별이 더 밝고 수명이 짧다고. 그러나 유한한 생명의 인류에게는 밝은 별이 더 나이가 많고 의미가 있음을 가리킨다. 호모 사피엔스의 인지혁명은 별을 대하는 태도를 궁극적으로 바꾸고 말았지만, 현대인의 밑바닥에 자리한 윤리, 성격, 성의식이 케케묵은 것이듯 별자리를 바라보는 눈동자 또한 오래되었다고 아름답지 않을 리 없다.

청주가 고향인 박한규는 흉부외과 전문의다. 지금은 부산의 한 마을 공동체 주민으로 살면서 공동육아로 40대를 보내고 있다.박한규 원장은 키만큼 커다란 망원경으로 별보기를 좋아하는 어른아이다. 또 신화와 역사 그리고 과학을 넘나들며 엿보는 재미에 빠진 일탈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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