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사회적 합의 필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사회적 합의 필요
  • 이주현 기자
  • 승인 2019.05.15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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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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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가 뜨거운 감자다. 관련 온라인 기사의 댓글을 보면 찬성 입장이 압도적으로 많이 보인다. 그런데 사회적 합의의 한 축인 의료계의 주장을 들어보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일방적으로 직역 이기주의로 몰아간다. 위험한 생각이다. 일부 부도덕한 의료인의 행위가 마치 모든 의료인이 그런 것처럼 일반화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그렇다면 수술실 내 CCTV는 의료진의 불법행위를 감시하는 도구인가, 환자를 보호하는 도구인가. 보는 시각에 따라 해석은 다르지만,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다.

이 문제의 도화선을 당긴 건 이재명 경기도지사다. 수술실은 철저히 외부와 차단돼 있어 인권 침해적인 사건이 발생해도 환자가 인지하기 어렵고, 이 사실을 밝혀내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라 수술실 내 CCTV 설치는 이를 해소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게 지난해 이 지사가 밝힌 소신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경기도는 지난해 9월 27일과 28일 이틀간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 조사를 한 결과(표준오차 95%, 오차범위 ±3.1%p), 응답자의 91%가 수술실 내 CCTV 설치 및 운영을 찬성했다고 발표했다. 대다수의 여론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후 경기도 6곳 도립병원의 수술실에 CCTV가 설치됐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수술실 내 CCTV 촬영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수술실 CCTV 설치는 환자와 보호자의 알 권리 확보와 더불어 의료사고 발생 시 촬영 자료를 이용해 의료분쟁의 신속·공정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사항이라고 안 의원은 입법 취지를 밝혔다.

이 사안에 대해 사회적 합의의 한 축인 대한의사협회와 지역 의사회는 반대 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명분으로 반대하는 것일까.

충북의사회가 지난 14일 기자에게 보내온 반대 이유는 이렇다. 첫 번째는 수술실 내 CCTV 설치는 헌법이 규정한 자유와 권리의 본질을 침해, 즉 과잉 금지의 원칙에 위배 된다는 것이다.

법적인 제재는 목적에 비례해야 하고, 그 유효성을 기대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최소한의 것이어야 하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에 목적과 결과가 좋더라도 수단과 방법에 문제가 있다면 재고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두 번째 주장은 바로 프라이버시 침해와 인권 침해적 요소가 많다는 것이다. 의사와 환자 간 상호 신뢰를 전제로 한 은밀한 사적 공간인 수술실 내에 CCTV를 설치하면, 수술을 받는 환자의 수술 부위는 물론 민감한 부위까지 노출돼 문제가 된다고도 설명했다.

수술실 CCTV 영상 유출에 따른 부작용도 우려했다. 환자의 신체 노출이 빈번한 수술실 CCTV 영상이 자칫 외부로 유출이라도 된다면 사회적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철저한 보안 시스템을 구축한 국방부나 금융권 등에서도 해킹으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발생하는데, 보안 전담 인력조차 꾸리기 힘든 의료기관에서 유지·관리하는 데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목소리도 냈다.

세 번째 주장은 의료인의 직업 수행의 자유를 침해하고 수술 집중도를 떨어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근로자들도 근로 현장을 CCTV로 감시하면 인권 침해라고 적극 반대하는 데 의료인이라고 다를 게 없다. 또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치료행위보다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치료행위가 만연해 환자의 건강과 생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충북의사회의 부연 설명이다.

자칫 의료진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어 불신을 키우고 인격권을 침해받을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성공적인 수술임에도 본인의 주관적인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CCTV 열람을 요청하는 등 의사와 환자 간 불신이 팽배해질 수 있고, 의사 자신의 직업적 자긍심이나 존엄성에 상처를 받을 수 있어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사회적 자본이 붕괴될 수 있다는 게 네 번째 반대 주장이다.

마지막 이유는 비용 문제다. 모든 수술을 녹화하고 동영상을 보관하는데 드는 설비, 설치, 관리, 인력 등 비용 부담은 고스란히 의료기관이 짊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의료계에서는 보다 최소한이면서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문제가 되는 대리수술을 예방하기 위한 대안으로 △외래 진료·수술 진행 일정 등 모두 공개 △수술 참여 의료진 명단 수술실 입구에 설치된 CCTV 앞에 사전 고시 △수술실 출입 기록 등 공개를 제시했다. 이 것만으로도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의 입법 취지를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게 충북의사회의 설명이다.

안광무 충북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은 "CCTV 설치 의무화는 의사를 현대판 노예로 여기는 제도"라며 "수가는 원가 이하로 주면서 의심하고 감시하고 의료 과오가 있으면 책임을 묻겠다는 것으로, 당연히 대중들은 이에 적극 호응하겠지만 뒤집어보면 현대판 노예제를 찬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자신이 싫으면 남에게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은현준 충북의사회 정책이사도 칼럼을 통해 “과잉 금지의 원칙을 적용해 수술실 내에서 이루어질지도 모른다고 여겨지는 불법 요소에 대한 방지책으로서 보다 최소한이면서 효과적인 방법은 없는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며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 어디에도 의료인을 감시하려고 CCTV를 운영하는 곳은 없다. 일부 언론을 통해 의료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이 전달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절대 다수의 의료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점만 봐도 찬성과 반대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찬성과 반대는 누구의 말이 맞고 틀리고를 가리기 위함이 아니다. 요즘 사회는 워낙 다변화, 다양화돼 있어 갈등이 없는 곳이 없다. 오히려 갈등이 없다는 게 더 이상하다. 문제도 복잡하다. 그러나 사회적 갈등은 사회적 대화와 합의를 통해 반드시 해결된다고 믿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방향이 맞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을 때 보다 부드러운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것이다. 이번에도 해낼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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