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이 저를 인재로 키웠죠”
“충북이 저를 인재로 키웠죠”
  • 이주현 기자
  • 승인 2019.06.0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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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유학 장학금으로 한·중·일 전문가 된 
최해옥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최해옥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일본 유학생 시절, 충북인재양성재단의 해외유학장학금을 받았습니다. 뭐랄까…. 제가 나고 자란 충북이 저를 인재로 키워준 느낌이랄까. 단순한 돈의 가치를 넘어 고향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 같은 게 생겼어요.” 

최해옥(36)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충북인재양성재단으로부터 해외유학 장학금을 받은 것은 지난 2010년이다. 당시 그는 일본 도쿄대 박사과정 2년차 였다. 그 다음해 동일본대지진을 겪었지만 무사히 박사학위를 마칠 수 있었다.

일본 유학 생활을 마친 최 부연구위원의 다음 행선지는 한국이 아닌 중국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으로 일본에서 공부한 사람은 많았지만 한중일을 경험한 사람은 적었습니다. 앞으로 북한을 연구하기 위해서도 한중일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만이 가지고 있는 무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중국 칭화대 포닥연구원으로 가기로 결정이 된 이후 주변에서는“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왜 하필 중국이냐”며 만류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중국에 가서 그동안 책으로만 배웠던 도시를 계획하고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싶었다. 그렇게 그는 중국 칭화대 건축학부 도시계획학과에서 포닥연구원으로 일하게 된다. 최초 칭화대 한국인 포닥연구원이었다. 

문제는 언어였다. 영어만 하면 될 줄 알았더니 중국어를 배우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새벽부터 칭화대 박사과정 학생에게 일본어를 가르쳐 주고 중국어를 배웠다. 연구원으로서 난징, 하얼빈, 내몽골 등 도시계획 프로젝트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고, 특히 기억에 남는건 세계여성의 날 한국대표로 초청되어 중국 인민대회당에 한복을 입고 참석했던 일이다.  

“한국, 일본, 중국, 미국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북한을 포함한 한·중·일 전문가로서 관련 국가정책을 이끌어나가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여러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은 조금은 과감하게 하고싶은 일을 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여기서 과감하다는 말은 주위상황에 함몰되지 말고 조금은 높은 이상향을 향해 ‘하면된다’는 정신력으로 해나가라는 뜻입니다. 적어도 나중에 ‘~ 때문에’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고가 바뀌면 정신력이 생기고, 어떤 일이든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겸손한 마음으로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하고 싶은 방향을 정하고 정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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