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공감
소통과 공감
  • 권희돈 청주대 명예교수
  • 승인 2019.06.07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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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돈 교수의 치유의 인문학

요즘은 어딜 가나 외로운 사람뿐이다. 좀 덜 외롭거나 좀 더 외로운 사람이 있을 뿐 외롭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리고 또 아픈 사람뿐이다. 좀 덜 아프거나 좀 더 아픈 사람이 있을 뿐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 온 나라가 마치 거대한 병동과 같이 모두가 외롭고 아프다.

외로움과 아픔은 사람 사이의 소통(疏通) 단절이 그 원인이다. 세대 간의 단절, 계층 간의 단절, 성별 간의 단절, 가족 간의 단절, 친구 간의 단절. 온통 단절뿐이다. 단절은 필연적으로 스트레스를 가져온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 된다. 육신의 무서운 암도 스트레스에서 비롯되고, 마음의 무서운 우울증도 스트레스에서 비롯된다.

소통과 공감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소통이 양쪽을 연결하는 다리라면, 공감(共感)은 그 다리를 떠받치는 든든한 기둥이다. 소통이 서로 통한다는 단순한 의미를 지닌 반면 공감은 상대의 눈으로 본다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한다는 뜻으로 가장 울림이 큰 말이다.

옛날에 어떤 양반이 고깃간을 찾았다. ‘돌쇠야, 고기 한 근만 주거라.’ 돌쇠는 고기를 썩둑 잘라 주고 돈을 받았다. 그 때 다른 양반이 와서 말했다. ‘돌쇠네, 고기 한 근만 주시게.’ 돌쇠가 고기를 듬뿍 썰어서 주었다. 먼저 온 양반이 화를 냈다. ‘이놈, 왜 고기 한 근이 이렇게도 다르냐?’ 돌쇠가 얼굴을 씰룩거리며 대답하였다. ‘네에, 그것은 입쇼. 나리 것은 돌쇠가 자른 것이옵고, 이분 것은 돌쇠네가 자른 것이기 때문입니다요.’

두 번째 온 양반은 공감능력이 뛰어나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능력이 탁월하다는 뜻이겠다. 이처럼 역지사지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기 때문에, 상대를 감동시키는 힘이 큰 소통법이다. 소원한 관계를 감동으로 연결하는 순간 드라마틱한 반전이 일어난다. 

상대가 강하거나 무심하거나 폭력적일 경우 소통이 일방적으로 막힌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화(禍)를 쌓아두기 때문에 안에 독(毒)이 찬다. 이 때 가장 중요한 소통법은 표현(表現)하기이다.

 

혼자 아파하지 말자.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자.

대나무밭의 이발사처럼 죽기를 각오하고 외치자.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담아놓고 말하지 못할 때가 가장 괴로운 법이다. 이발사처럼 문제해결(問題解決)을 목표로 삼지 않고 표현하기를 목표로 삼으면 장차 문제해결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현실에서 억눌린 내용을 말로 털어내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진다. 꺼내놓은 아픔은 더 이상 아픔이 아닌 까닭이 여기에 있다. 아픔을 꺼내놓으면 타인에게는 기부행위가 된다. 타인의 아픔을 들으면서 자신의 아픔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속내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낭패를 겪고 있는 당신, 이발사의 용기를 내라고 권해본다.)

모든 관계 사이의 소통은 함께하기, 차이인정하기, 차이인정하며 함께하기를 차례로 거치면 안정적이다. 이 때에도 공감하는 태도는 관계를 튼튼하게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부부 사이를 예로 들어보자.

결혼 초기의 부부는 서로의 공통점이나 좋은 점만으로도 함께하기의 소통이 가능하다.

보다 성숙한 부부의 소통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각자의 보이지 않는 수많은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서로의 겉모습이 아닌 본래의 모습을 보게 되고,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되는 소통이다.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이해의 영역을 넓혀주는 소통이라면, 차이를 인정하면서 함께 하기는 각자의 개성을 유지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소통이다. 이런 부부는 서로에 대한 존경심이 깊고 사랑하는 마음도 깊다. 서로 우위를 차지하려고 하지 않고, 상대방을 통제하거나 조종하려 하지 않는다. 평등한 관계로 가정을 이루어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함께 극복해 나간다.

인간은 누구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강력하고 아름다운 힘을 간직하고 있다. 상처받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내가 먼저 소통을 시작할 때, 나는 스스로 참된 인간으로 성장해 간다. 

내가 먼저 역지사지(易地思之), 표현(表現)하기, 소통(疏通)의 3단계를 배우고 익혀 내 것으로 만들어 봄이 어떨까. (尾) 
 

 

권희돈: 청주대 명예교수, 문학테라피스트.
대학에서 은퇴하기 전에는 교사로 교수로 초등학생·중학생·고등학생·대학생을 차례로 가르쳐 왔다. 대학에서 은퇴한 후에는 문학테라피스트로 마음이 아픈 이들과 인문학을 통해서 치유하고 소통한다. 이들이 상처를 훌훌 털고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낼 때마다, 보람찬 노년을 보내고 있다는 긍지를 갖는다고 한다. 이에 관한 그의 저술 『사람을 배우다』는 장안의 화제작으로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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