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돈 교수의 치유의 인문학] 유우머는 치료다
[권희돈 교수의 치유의 인문학] 유우머는 치료다
  • 권희돈 교수
  • 승인 2019.09.0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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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돈 교수

 

산다는 것은 상처를 쌓아가는 것이다. 상처는 쌓이는데 치료하는 방법을 모르니 삶이 고통스럽다. 치료방법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 효험이 특별한 치료 방법은 유우머이다. 멋진 궁수가 과녁을 직선으로 맞추듯, 젠틀맨(숙녀)의 한 마디 유우머는 곧바로 상처를 아물게 한다.

서로 다른 반쪽으로 만났기에 부부 사이의 갈등은 피할 수 없다. 부부 사이에 갈등을 풀지 못하면 상처만 쌓여간다. 갈등의 시초는 말로 비롯되고 말 때문에 커진다. 말로 만든 갈등이니 말로 풀어야 한다. 이때 유우머러스한 한 마디 말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연금술이다. 서먹서먹한 부부간의 관계를 단숨에 정상적인 관계로 회복시킨다. 오히려 싸우기 전보다 부부관계가 근사하게 개선되고 강화된다.

어떤 부부가 심하게 다투던 중 부인이 감정이 격하여 남편보고 나가라고 하였다. 남편이 부리나케 집을 나가 버렸다. 잠시 후에 남편이 들어오자 아이들이 입술에 손을 대었다. 엄마가 아직 화가 안 풀렸으니 입을 열지 말라는 뜻이다. 부인은 아직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소파에 누워 있었다. 이 때 남편의 한 마디 말이 기가 막힌 반전을 가져왔다. ‘야 이눔아, 엄마는 아빠가 나가란 말만 했지 들어오지 말란 말은 안 했잖아!’ 그 말에 아이들도 웃고, 부인도 픽, 하고 웃었다.

이처럼 유우머는 순진한 웃음을 유발시키며 한 순간에 상황을 부드럽게 바꾼다. 남편의 유우머 한 마디에 부부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의 벽이 무너졌다. 부부는 곧바로 연인처럼 친밀감을 갖고 함께 일상으로 돌아갔다. 친밀감은 상대와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척도가 된다. 감정의 찌꺼기를 유우머 한방에 날려 보낸 남편과 이를 못이기는 척 받아주는 아내의 지혜로운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상처가 쌓이면 우울감 때문에 얼굴이 납덩어리처럼 무겁게 보인다. 그럴수록 타인과의 자연스런 관계를 맺어서 억눌린 감정을 자꾸자꾸 퍼내야 한다. 돌덩어리같이 굳어진 감정을 녹이고 퍼내는 데는 그를 계속해서 웃게 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웃게 하는데 유우머의 질이나 종류를 따질 필요는 없다. 그저 나오는 대로 던져보자.

사형장에 끌려가던 사형수가 발이 삐끗하자 하는 말, 
‘아이쿠 죽을 뻔했네.’
초등학교 국어시간에 한 여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비유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우리 담임 선생님은 수지처럼 예쁘다’ 는 바로 비유법이예요.
그러자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선생님, 그건 과장법인데요.”
이 기발한 유우머를 접하는 사람은 아무리 암울한 상황에 있어도 웃음 짓게 되어 있다. 임어당은 타인을 말 한 마디로 웃게 한다는 것은 창조주가 인간에게 내린 가장 특별한 선물이라고 하였다. 웃음은 우울한 감정을 지워버리는 효과가 있다. 웃는 순간 기쁨의 호르몬 엔돌핀이 분비되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 즐겁게 한다.

우리는 얼떨결에 취직하고 얼떨결에 결혼하고 얼떨결에 아이를 낳고 살다가 수많은 상처 때문에 아파하고 외로워하고 무심하게 세월을 낭비한다. 꽃이 펴도 그만, 꽃이 져도 그만, 봄이 와도 그만, 봄이 가도 그만, 죽었는지 살았는지, 까맣게 잊고 산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상처가 그 행복을 가로막고 선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행복에 관한 담론들이 분분하게 펼쳐지는데, 어떤 행복학도 이런 유우머 한 마디를 뛰어넘지 못한다. 
 
산중에서 토끼가 호랑이를 만났다. 토끼는 하느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하고, 호랑이는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하였다. 하느님은 즉각 호랑이의 기도를 들어주었다.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는 토끼의 기도는 듣지 않고,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하는 호랑이의 기도를 들어주는 하느님이라니. 겉으로 보기에는 모순되어 보이지만, 한 번 더 눈을 뜨고 보면 모순 속에 진리가 담겨 있다. 하느님의 말씀은 이렇다.

상처를 씻어내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라.

인류역사상 최초로 무의식을 발견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환자들의 임상실험을 통해 유우머가훌륭한 치유기능을 갖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래서 그는 평생토록 유우머를 수집했다고 한다. 상처투성이인 이 세상을 견뎌내기 위해 이제부터 우리도 늘 유우머를 수집해 봄이 어떨까?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토닥여주고, 더 아픈 사람이 덜 아픈 사람을 토닥여 줄 때 툭툭 유우머 한 마디씩 던져봄이 어떨까? 그 때마다 세상은 한 계단씩 가벼워질 터이니까

 

 

 

권희돈 교수는 청주대 명예교수, 문학테라피스트. 대학에서 은퇴하기 전에는 교사로 교수로 초등학생·중학생·고등학생·대학생을 차례로 가르쳐 왔다. 대학에서 은퇴한 후에는 문학테라피스트로 마음이 아픈 이들과 인문학을 통해서 치유하고 소통한다. 이들이 상처를 훌훌 털고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낼 때마다, 보람찬 노년을 보내고 있다는 긍지를 갖는다고 한다. 이에 관한 그의 저술 『사람을 배우다』는 장안의 화제작으로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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