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범죄 위, 나는 ‘과학수사’
뛰는 범죄 위, 나는 ‘과학수사’
  • 박상철
  • 승인 2019.09.22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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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혈액이라도 묻어있기만 하면 10년, 20년, 100년이 지나도 DNA검출은 가능하다는 거야. 현대의학이 피해자에게 준 선물이지.”
- tvN 드라마 ‘시그널’ 대사 중 일부 -

1986년 경기 화성군 어느 마을. 성폭행 후 살해된 여성이 발견된다. 경찰이 고군분투하지만,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만다. 영화 ‘살인의 추억’이 그려낸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6년 9월 15일부터 91년 4월 3일까지 경기도 화성군 일대에서 여성 10명이 강간 살해됐으나 진범이 잡히지 않은 채 미궁에 빠진 역대 최악의 장기 미제사건이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연쇄살인사건이며 세계 100대 살인사건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범행 수법이 잔인했다.

동원된 경찰 인력만205만여명 단일사건 가운데 최다였다. 수사대상자는 2만1280명, 지문대조 4만116명 등 각종 수사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원시적인 수사기법으로 무고한 남성 3명이 용의자로 몰려 자살하거나 고문 후유증으로 숨지는 등 우리나라 경찰 강력범죄 수사 역사에 뼈아픈 오점을 남겼다. 그 중심에 서 있던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특정됐다.

그는 1994년 1월 13일 자신의 집을 찾아온 처제를 성폭행해 살해한 뒤 유기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현재 부산교도소에서 20년째 복역 중인 이춘재(56)다. 그를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특정할 수 있었던 건 바로 DNA 감식 기술 덕분이었다.

잠자고 있던 증거품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경찰은 범죄 현장에서 나온 증거품에 대한 재감식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맡겼다. 오래된 증거품에서 나온 DNA로 용의자를 특정한 사례가 있었기에 과학의 힘에 다시 기대를 걸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국과수는 5·7·9차 사건 증거품에서 동일인 DNA를 얻었고 이것이 현재 복역 중인 한 수감자 유전정보와 일치하는 것을 밝혀냈다. 검찰은 현재 살인·성폭력 등 재범 위험성이 높은 11개 범죄군 형 확정자 등 23만명 DNA 정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DNA 추출기술은 최근 들어 장비와 시약 등이 발전하면서 증거물 내의 '효소 활성'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됐다. 증거물이 극히 소량이거나 오래됐어도 분석에 필요한 만큼의 충분한 DNA를 추출할 수 있게 됐다. 

DNA 감정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0.1%의 차이를 이용해 개인을 식별하고 개인식별지수를 확률 값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가장 강한 과학적 증거에 해당된다. 특히 DNA의 염기서열은 일정한 반복 구조를 갖고 있는데 이 배열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을 응용하기 때문에 정확도는 99.999% 이상이다.

DNA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직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 268건의 미제사건. 흐르는 세월 켜켜이 쌓인 먼지 속에 잠든 모든 미제사건들의 진실은 언제가 드러날 것이다. DNA 감식 기술이 지속 발전하는 한 미제사건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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