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을 수 있었던 이주노동자 황화수소 중독 사망, 온 나라가 나서야 한다
막을 수 있었던 이주노동자 황화수소 중독 사망, 온 나라가 나서야 한다
  • 류현철 부센터장
  • 승인 2019.10.23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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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일환경건강센터 부센터장

영화나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어두운 지하실이나 밀폐된 공간은 일종의 클리셰(Cliché)에 가깝다. 이들 공간은 컴컴한 공간 어디엔가 도사리고 있을 미지의 위험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공포 극대화를 위한 전형적 상징으로 등장한다.

작업현장에서도 이러한 위험이 도사린 공간이 존재하며 이것을 법적인 용어로 ‘밀폐공간’이라고 부른다. 밀폐공간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서 산소결핍, 유해가스로 인한 질식·화재·폭발 등의 위험이 있는 장소를 말하며 여기에는 우물, 수직갱, 터널, 잠함, 피트, 정화조, 침전조, 집수조, 탱크, 암거, 맨홀 등등을 포함시키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밀폐공간은 영화 속의 진부한 상징의 수준을 넘어서 일터에서 반복되는 사고와 죽음의 잔혹한 현실태이다. 매년 노동자들의 죽음이 초래된다는 점에서 반복적이고 전형적이나, 어떤 형태로 위험이 나타날지 모르는 영화와는 달리 밀폐 공간 안에 존재하는 직업적 위험과 예방책에 대해서도 대부분 알려져 있음에도 반복된다는 점에서는 더 잔혹한 일이다.

지난 9월 10일 경북 영덕군 소재 오징어 가공업체 오징어 부산물을 폐기하는 지하 집수조 점검을 위해 내려간 노동자가 질식해서 쓰러졌고, 그를 구하려고 내려간 동료 노동자 3명을 포함하여 모두 4명의 노동자가 질식되었고 결국 모두 사망했다. 모두 필리핀과 태국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작업의 위험에 대한 사전 경고나 자신을 호흡을 지켜 생명을 보호할 제대로 된 보호구조차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쓰러진 집수조에는 황화수소로 가득했다. 황화수소는 산업적으로는 석유 및 천연가스 정제, 지하 석탄광산, 의약품제조 공정, 하수관 및 하수처리 시설에서 발생할 수 있으며, 생선이나 기타 단백질 등의 유기 물질의 부패과정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버려진 오징어 부산물은 여름 내내 부패하여 독성 가스를 뿜어내고 있었을 것이다.

황화수소는 세포단위의 생체대사 자체를 중단시켜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질식제다. 낮은 농도(0.2ppm)에서부터 특유의 악취를 풍겨 위험의 전조를 확인할 수 있고 회피하면 건강상의 위험은 낮다. 그러나 농도가 높아지면(30ppm 이상) 점차 후각마비를 일으키고 냄새를 인지할 수 없어 오히려 위험은 높아진다. 더욱 농도가 높아지면(750ppm) 단한번의 호흡만으로도 의식을 잃을 수 있다. 

노동자들이 쓰러진 것은 오후 2시 30분 경, 기상청 자료를 보면 당시의 포항지역의 최고기온은 31.4도였다. 아직 가시지 않은 더위로 더욱 맹렬하게 내뿜어졌을 황화수소로 가득찬 집수조에 먼저 들어섰던 노동자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그를 구하러 들어간 나머지 3명의 노동자들의 호흡과 생명도 그렇게 꺼져갔을 것이다. 황화수소의 작업환경관리를 위한 노출기준은 8시간 기준(시간가중평균노출기준)으로 10ppm이나 사고현장에서는 수십배 이상의 농도의 황화수소가 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안전보건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143건의 질식재해로 258명의 노동자에게 질식사고가 발생했고 181명이 사망했다. 질식재해는 그 결과가 사망에 이르는 비율이 높은 치명적인 사고이다. 2018년 3월 고용노동부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총 107건의 질식재해로 177명의 노동자에게 질식사고가 발생했고 93명이 사망했다. 이전에 비해 그다지 나아진 것이 없다.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노동자들을 쓰러뜨리고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황화수소라는 독성가스였으며, 더불어 부실하고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안전보건 시스템이라고 해야 한다.

일터의 위험 관리에 대한 책임을 ‘알려진 위험’과 ‘알려지지 않은 위험’에 대해 나눠 보는 것이 필요하다. “알려진 위험”에 대해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은 사업주의 역할과 책임영역에 해당하는 것이며, 위험과 관리방법을 알고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경우에 거기에 따른 분명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의 역할은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위험”에 대한 통찰과 연구에 주력하는 한편 가려지고 “은폐된 위험”에 대한 조사와 감독을 수행하고 기업과 사업주의 책임을 지우는 것에 있다.

밀폐공간에서의 사고의 위험물질이나 관리방법은 대부분 잘 밝혀져 있다. 작업 전에 간단한 장비로 산소농도나 화학물질 농도를 측정해보는 것, 충분한 환기를 시키는 것, 적절한 보호구를 착용하는 것, 사고가 발생했을 때 신속한 조치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만 지키면 노동자들의 애달프고 허망한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 제대로 ‘알려져서’ 노동자들과 사업주들이 인지하고 있는가의 문제부터 챙겨야 한다. 위험이 알려지게 만드는 것까지 정부의 책임이다.

안전보건공단의 활동이나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만으로 성취되기는 힘들다. 관할 지자체,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환경부, 보건복지부 등 질식재해의 위험이 존재하는 일터와  관련된 모든 기관이 동원되어야 한다. 밀폐공간작업이라는 이름으로 일반화하기보다는 오징어 부산물 저장소, 분뇨집수조, 폐수 처리장 등 해당 기관과 관련된 구체적 시설과 작업 과정을 호명하고 점검하고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악취를 풍기는 황화수소는 이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곳, 가장 비천한 곳으로 여겨져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하고 싶은 공간에 무겁게 깔려 있다. 그곳에서 일용직 노동자, 고령 노동자, 이주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일하는 자리가 다르다고 생명의 무게가 다를 리 없다.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었다. 이제 온 나라가 나서야 한다.


※ 일환경건강센터는 안전/보건/환경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주)SK하이닉스의 민간지원으로 설립한 비영리법인인 (재)숲과나눔이 지역사회의 일터를 보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설립한 센터입니다. 청주지역을 중심으로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 특수고용 노동자들뿐 아니라 자영업자, 사업주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일터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직업보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배달대행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이동 노동자들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에게 휴게공간과 더불어 건강상담, 근골격계질환 관리, 심리상담, 직업병 및 산재 상담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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