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돈 교수의 치유의 인문학] 가볍게 살자
[권희돈 교수의 치유의 인문학] 가볍게 살자
  • 권희돈 교수
  • 승인 2019.11.1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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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돈 교수

이고 진/저 늙은이/짐 벗어/나를 주오

나는 / 젊었거니 / 돌인들 / 무거울까

늙기도/서러라커든/짐을 조차/ 지실까

 

조선시대 정철의 시조인데 구절구절 귀에 쏙쏙 들어온다. 젊은이에겐 뚱딴지 같은 소리로 들리겠지만, 노년에게는 가슴 벅찬 소리로 들릴 것이다. 요즘은 젊은이들의 목소리는 하늘을 찌르는데, 노년이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마침내 노년의 목소리는 파고다공원이나 중앙공원으로 쫒겨났다. 불행하게도 세대 간의 전쟁에서 일방적으로 젊은이가 승리하고 있는 형국이다.

바라건대, 이제는 세대 간에 전쟁을 하지 말고 서로를 이해하는 단계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노년은 미성숙한 젊은 시절을 거쳐 왔고, 젊은이도 반드시 늙는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중요한 것은 누가 누구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멀고 먼 인생의 도정에서 모두가 무겁게 살지 말고 가볍게 사는 것이다.

시조에서는 젊은이가 늙은이의 짐을 지겠다고 말하고 있으나, 나는 노년의 짐을 노년 스스로 벗는 방법 몇 가지를 말할까 한다.

우선 어떤 일을 맞이했을 때 나의 일인지 타인의 일이지를 구별하는 일이다. 나의 일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고 타인의 일이라면 함부로 침범하지 말 일이다. 둘째는 나의 일이라 할지라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 감당할 수 없는 일인지를 구별할 일이다. 그런 다음 감당할 수 없는 일은 과감히 버리고 감당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셋째는 타인이 해야 할 일을 떠안지 말자는 것이다. 타인 중에서 자식은 가장 강력한 타인이다. 자식이라 해서 자식이 해야 할 일을 떠맡으면, 그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무겁게 짓눌린다. 자식의 일이라 해도 여기까지라는 경계선을 긋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살면 노년의 인생이 가벼워진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황금 같은 맹서는 없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알아차리고 3초만 참아보자.

 

세상의 모든 일은 마음이 지어내는 것(一體唯心造)라고 하지 않던가. 원효 대사와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실천에 옮겨 그 모범을 보여 주었다. 원효 대사는 해골물을 마신 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음을 깨닫고 당나라 유학길을 접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큰 도둑을 당하고 나서, 불행한 마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꾸는 지혜를 얻었다.

 

위로의 편지를 보내줘서 고맙네, 난 아무렇지도 않다네. 도둑이 훔쳐간 것은 내 물건이지 내 목숨이 아니기 때문이고, 도둑이 훔쳐간 것은 내 일부에 불과하지 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며, 물건을 훔친 자는 도둑이지 내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라네.

 

루스벨트 대통령이 친구의 위로 편지를 받고 보낸 회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에 도둑이 들면 재앙이 들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루스벨트 대통령은 마음을 돌이켜 재앙 가운데서 감사할 조건 세 가지를 찾아냈다. 이와 같이 어려운 일을 당해서도 마음을 돌이키면, 무겁고 언짢고 속상한 마음이 가벼운 마음으로 바뀐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라, 는 속담이 있다.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좋은 말이다. 밉고 서운한 사람에게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거친 말 대신, 상대를 인정하고 격려하고 지지하는 말을 해 보자. 그러면 곧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도 갚게 되는 벅찬 감동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누가 했는지 모르지만 돌아다니는 말이 있다. 사람이란 글자의 이 세상의 온갖 풍파에 모서리가 깎여 사랑이란 글자의 이 되었다고 한다. 이는 사람은 노년에 이르러서야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며, 사랑이란 글자의 처럼 둥글둥글해진다는 뜻도 되겠다. 그런데 현실의 노년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마음은 송곳 하나 꽂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좁아지고, 늘 쓸쓸하기만 하여 까닭 없이 서럽고 까닭 없이 밉기만 하다. 처럼 둥글둥글 사랑을 베풀며 살아도 남은 인생이 짧을 터인데 말이다.

개인 심리학자 아들러는 모든 근심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근심이라 하였다. 그러니 마음을 미움의 관계에서 사랑의 관계로 바꿔 보면 어떨까?

어둠은 어둠으로 물리칠 수 없고 빛으로만 물리칠 수 있듯이, 미움은 미움으로 물리칠 수 없고 오직 사랑으로만 물리칠 수 있다. 사랑은 빛이며 언제나 현재에 가능하다. 과거와 미래의 어떤 조건도 필요치 않다. 사랑은 아무 조건 없이 가슴으로 나누어주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의 아름다움이며, 사랑의 자유로움이다.

 

사랑한다면, 사랑하기로 결심한다면 으로 서서히 바뀔 것이다. 그리고 서서히 타인과의 관계가 미움의 관계에서 사랑의 관계로 바뀔 것이다. 그리고 나의 몸은 서서히 솟대 위의 새처럼 가벼워질 것이다. 지상의 영혼을 하늘로 실어올리고 하늘의 별을 지상에 쪼아 오느라고 바쁠 것이다.

 

 

 

 

권희돈 교수는 청주대 명예교수, 문학테라피스트. 대학에서 은퇴하기 전에는 교사로 교수로 초등학생·중학생·고등학생·대학생을 차례로 가르쳐 왔다. 대학에서 은퇴한 후에는 문학테라피스트로 마음이 아픈 이들과 인문학을 통해서 치유하고 소통한다. 이들이 상처를 훌훌 털고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낼 때마다, 보람찬 노년을 보내고 있다는 긍지를 갖는다고 한다. 이에 관한 그의 저술 『사람을 배우다』는 장안의 화제작으로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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